‘싱글 인 서울’ 임수정의 위대한 발견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11-28 16:33:10
- + 인쇄
‘싱글 인 서울’ 임수정의 위대한 발견 [쿠키인터뷰]
배우 임수정. 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 임수정은 몇 년 전 심장이 뛰지 않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너무도 사랑하던 일에 몰입이 잘 되지 않는 자신을 느껴서다. 열정이 사라진 건 아닐지 걱정하던 그는 일과 자신을 분리하기로 했다. 다시 가슴 뛰는 기쁨을 만끽한 계기는 2019년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이듬해 임수정은 영화 ‘싱글 인 서울’(감독 박범수)과 ‘거미집’(감독 김지운)을 차례로 만나며 영화의 맛을 다시 알았다고 한다.

지난 17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임수정은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설렘 그래프가 올라왔다”고 했다. ‘싱글 인 서울’은 그가 오랜만에 찍은 상업영화다. 독립영화 등을 거치며 제 안의 열정을 끌어모으던 그에게 현실감이 살아있는 로맨스 장르는 더없이 새롭게 다가왔다. 사랑에 관한 가치관이 다른 두 사람이 마음을 여는 이야기에 임수정의 마음도 덩달아 열렸다. 자신의 영화로 설렌 것도 오랜만이란다.

로맨스 상대로 함께한 이동욱과는 구면이다.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에서 이동욱이 특별출연해 잠시 호흡을 맞췄다. 단 한 장면뿐이었음에도 그의 저력을 느꼈다던 임수정은 ‘싱글 인 서울’로 더욱 확신을 얻었다. “현실적인 캐릭터와 어울리는 유연한 연기”로 함께 몰입할 수 있어서다. 두 사람은 말맛을 살린 대사로 상영시간 내내 잔웃음을 짓게 한다. 극 중 영호(이동욱)와 현진(임수정)의 로맨스에는 현실감이 가득하다. 임수정은 “각자 마음이 켜켜이 쌓인 걸 인지하지 못해도 사랑은 발화한다”면서 “계획적으로 마음을 키우는 게 아닌, 자연스럽게 감정이 올라오는 로맨스라 좋았다”고 했다.

‘싱글 인 서울’ 임수정의 위대한 발견 [쿠키인터뷰]
영화 ‘싱글 인 서울’ 스틸컷. 롯데엔터테인먼트

돌아보면 임수정이 맡은 로맨스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성숙하고 희생적이었다. 책임감과 자책감에 시달리던 은채(KBS2 ‘미안하다 사랑한다’)나 폐질환을 앓으면서도 상대의 아픔을 보듬던 은희(영화 ‘행복’)가 그랬다. 그래서 그는 ‘싱글 인 서울’ 속 현진이 마음에 쏙 들었단다. 주체적이고 제 일을 사랑하는 모습이 저와 닮아서다. 현진은 일상생활에선 다소 허술하고 엉뚱하지만 일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프로다. 임수정은 현진을 연기하며 로맨스 장르 속 여성 캐릭터들의 변화를 몸소 체감했다. 그는 “부족하거나 미성숙한 면을 그대로 드러내고 그 자체로 사랑받을 수 있는 지금 시대가 좋다”고 미소 지었다. 

20대부터 3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임수정은 배우로서 필모그래피를 쌓는 것에 몰두했다. 대부분의 대표작이 이때 나왔다. 현진처럼 일에만 푹 빠져 살던 그는 40대 초중반이 돼서야 자신의 삶이 비어있다는 걸 깨달았다. “인간 임수정이 어떤 걸 좋아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찾기 위해 휴식을 택했다. 그제야 자신이 제쳐뒀던 열정이 보였다. ‘거미집’도 그의 열정 찾기에 일조했다. 민자 역을 맡은 그는 강렬하고 극적인 연기로 존재감을 떨친다. 뒤풀이 자리에서 만난 봉준호 감독이 ‘임수정의 눈으로 시작해 임수정의 눈으로 끝나는 영화’라는 찬사를 보냈을 정도다. 올해 ‘거미집’과 ‘싱글 인 서울’로 상반된 캐릭터를 선보이는 임수정은 “‘거미집’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을 재확인했다면, ‘싱글 인 서울’로는 죽은 줄만 알던 연애세포가 아직 건재하다는 위대한 발견을 해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헤어질 결심’이나 ‘만추’처럼 성숙한 로맨스와 멋진 명장면을 만들어나가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김예슬 기자 ye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