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학과 창설 TF 발족…기사회생 묘수 될까

대한바둑협회, 바둑학과 TF 만들고 심장섭 위원장 선임
심장섭 TF 위원장, 교수·교사·협회 관계자 위원으로 발탁

기사승인 2024-04-06 15: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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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학과 창설 TF 발족…기사회생 묘수 될까
정봉수 대한바둑협회 회장(왼쪽)과 심장섭 바둑학과 TF 위원장이 5일 경기도 파주에서 쿠키뉴스와 만났다. 사진=이영재 기자

지난 3월27일 쿠키뉴스 단독 보도로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폐과 소식이 전해진 이후 대한바둑협회에서 발 빠르게 ‘바둑학과 TF’를 만들고 대응에 나섰다. ‘바둑계 미투’ 사건 당시 피해자 측 대표를 맡았던 심장섭 바둑교실 원장이 TF 위원장으로 선임됐고, 심 위원장은 총 7명으로 구성된 TF를 빠르게 구성했다.

6일 쿠키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바둑협회 산하 ‘바둑학과 TF’가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TF는 심장섭 위원장을 필두로 운영위원 5명, 협력위원1명 등 총 7명으로 편성됐다.

TF 면면을 살펴보면, 1997년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초대 교수를 역임했던 정수현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명예교수, 남치형 명지대 바둑학과 교수 등 프로기사 출신 바둑학과 전⋅현직 교수 2명이 포함됐고 한국바둑중⋅고등학교의 이강지 바둑부장, 경기도바둑협회의 박종오 사무국장 등이 운영위원을 맡았다. 여기에 한국기원에서 보급팀장을 역임하면서 대한바둑협회와 교류해왔던 김윤식 경영기획팀 팀장이 협력위원으로 힘을 보탠다.

지난 3월25일 명지대학교 교무회의에서 바둑학과 폐지가 사실상 확정된 이후 바둑계는 실의에 빠졌다. 27년 역사를 자랑했던 바둑학과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위기 순간에 대한바둑협회가 가장 먼저 나서 대응을 시작했고, 그 중심에 정봉수 회장이 있었다.

바둑학과 창설 TF 발족…기사회생 묘수 될까
정봉수 대한바둑협회 회장. 사진=이영재 기자

지난 5일 경기도 파주에서 쿠키뉴스와 만난 정봉수 대한바둑협회 회장은 “바둑학과는 바둑 역사와 전통의 한 축”이라고 설명하면서 “바둑학과가 폐과되는 것은 바둑계의 큰 자산, 어떻게 보면 대들보가 무너졌다고 생각한다”고 진한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정 회장은 “대한바둑협회 차원에서 대학교 내 바둑학과를 다시 만드는 것은 바둑계 대들보를 세우는 일이고 바둑인들의 내일을 위한 핵심 과제”라면서 “절실한 마음으로 바둑학과를 다시 만들기 위해 TF를 발족했다”고 강조했다.

세상 모든 일은 ‘인사가 만사’인데, 첫 번째 화두가 바로 TF 위원장을 선임하는 일. 정 회장은 지난해까진 일면식도 없던 심장섭 바둑교실 원장에게 곧장 찾아가 중책을 맡아달라고 청했다. 정봉수 회장과 심장섭 원장은 올해 1월4일, 역시 쿠키뉴스 단독 보도로 드러났던 ‘대한바둑협회 예산 전액 삭감’ 사태 당시 기재부 앞 시위를 하면서 만난 사이였다.

정 회장은 영하권으로 기온이 떨어지고 칼바람이 불었던 당시 “협회 관계자들도 날이 어둑어둑 해지면 ‘이제 들어가시지요’ 하는 상황에서 심장섭 원장님은 끝까지 시위 현장에 남아 퇴근하는 기재부 직원들을 보고 가겠다며 자리를 지켰다”고 회상했다. 이어 정 회장은 “심 원장님은 바둑교육 일선에서 오랫동안 현업에 계시면서 교육적인 부분의 경륜은 물론,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인맥을 갖고 계신 분”이라면서 “협회가 뜻하는 바에 큰 도움을 주실 분이셔서 모셨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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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섭 바둑학과 TF 위원장. 사진=이영재 기자

심장섭 원장 또한 바둑학과 TF 위원장직을 흔쾌히 수락한 데 대해 “정봉수 회장이 사심 없이 바둑계를 위해 발로 뛰는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미투 사건이 일단락 된 이후에는 일선에서 물러나 있었는데, 다른 사람의 요청이었다면 다시 전면에 나서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정 회장의 요청을 받고, 바둑학과 문제를 가장 잘 해결할 수 있는 사람들로 위원들을 구성했다”고 강조했다.

바둑학과 TF 심장섭 위원장은 이어 “바둑학과 폐과 얘기가 나온 지 벌써 1년이 넘었다. 그동안 폐과 되면 안 된다는 뜻을 여러 단체에서 피력해왔다”면서 “사실 폐과를 막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적어도 명지대와 비슷하거나 그 이상 수준의 대학에 바둑학과를 만들려고 하면, 넘어야 할 고비들이 굉장히 많다”고 짚었다.

심 위원장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지난 2024학년도 신입생 모집에 명지대 바둑학과를 지망했던 심 위원장의 제자들이 모두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 심 위원장은 “제자들이 굉장히 우수한 실력과 인성을 갖춘 재원인데 바둑학과 모집에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프던 차에,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이었다는 뉴스를 접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어 “아무도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정 회장님과 대화를 하면서 어쩔 수 없다고 할까, 내가 적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둑계의 적임자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중심으로 TF 팀을 꾸려 길잡이 역할을 하자는 마음으로 위원장을 맡았다”고 설명했다.

심 위원장은 “중책을 맡고 나서 보니, 두려운 고비들이 이젠 내가 반드시 넘어야 할 장애물이 됐다”면서 “반드시 장애물을 뛰어 넘어 결과물을 만들어내겠다”고 다짐했다.

바둑학과 창설 TF 발족…기사회생 묘수 될까
대한바둑협회 예산 전액 삭감에 반대하는 시위가 올해 1월 세종시 기재부 앞에서 열렸다. 가운데가 정봉수 대한바둑협회 회장,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심장섭 원장이다. 쿠키뉴스 자료사진

대한바둑협회 바둑학과 TF는 현재 명지대학교 측에는 수신자를 총장으로 한 폐과 철회 면담 요청을 해둔 상태고, 경기대⋅용인대⋅한양대 등에 바둑학과 개설 제안서를 보내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해당 제안서에는 대한바둑협회가 대한체육회 정가맹 단체고, 소년체전 4개 부문, 전국체전 4개 부문에 걸쳐 바둑 종목 경기가 개최되고 있다는 사실 등이 담겼다. 특히 최근 열린 두 차례 아시안게임에서 무려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고, 장애인아시안게임 바둑 종목에서는 금메달 2개를 획득했다는 점도 강하게 어필했다. 장애인아시안게임 바둑 종목은 명지대 바둑학과 남치형 교수가 감독을 맡았고, 학부 졸업생인 김동한 선수가 출전해 2관왕에 오른 바 있다.

심장섭 위원장은 일부 대학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해보겠다”는 회신을 받았다면서 시일이 촉박한 만큼 빠르게 추진해나가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현재 제일 급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다. 4월 말에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정원이 결정되고 이를 통해 입시 전형이 확정되는데, 각 대학은 늦어도 4월 중순 무렵에는 학과별 정원을 확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봉수 회장은 “바둑학과를 창립하는 데 있어 필요한 행정적인 모든 지원은 물론 학과생 모집과 바둑을 통한 부가가치 창출 등 다방면으로 대한바둑협회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면서 많은 관심과 참여를 독려했다.

이영재 기자 youngja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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