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쿡터뷰] ‘미스틱’ 진성준의 자신감

[쿡터뷰] ‘미스틱’ 진성준의 자신감

기사승인 2020-01-22 12:4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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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경기도 일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아프리카 프릭스의 원거리 딜러 ‘미스틱’ 진성준(25)의 답변에는 힘이 있었다.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챔피언을 꼽아 달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저는 다 잘해요”라며 웃었다. 그의 기분 좋은 자신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진성준은 2013년 진에어 스텔스 유니폼을 입고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당시에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 프로게이머라는 개념이 없었다”며 “처음에 배치를 봤을 땐 티어가 높지 않았다. 재미있어서 계속 하다보니까 점수가 많이 올랐다. 그러다가 프로리그의 형태가 갖춰졌고 스스로 해볼 만 하다고 생각해서 도전했다”고 밝혔다. 

과거의 진성준은 솔로 랭크에서 보여주는 개인 기량과는 반대로 프로 무대에선 아쉬운 활약을 펼쳤다. 경기 후반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에 진성준은 “그 땐 게임을 바보처럼 했다. 젊어서 무서울 게 없었다. 상대가 때리면 참지 못해서 두 대 때리려다 죽었다(웃음). 지금은 게임도 오래했고 나이도 차서 똑똑한 플레이를 하게 된 것 같다. 그 때는 바보였다”고 털어놨다.

진성준은 2015년 돌연 중국 리그(LPL)로 건너갔다. 그는 “성적이 잘 안 나오기도 했고 당시엔 프로게이머 연봉이 너무 낮아서 은퇴하고 방송이나 해볼까 했다”며 “팀을 나간 이후에도 점수가 되게 높았다. 여러 팀에서 연락이 왔다. 지인 중 한 명이 해외에서 해보는 건 어떻겠냐고 제의했다. 지금과 달리 당시엔 해외로 나간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Team WE’ 유니폼을 입고 치른 데뷔 시즌은 녹록치 않았다. 

그는 “처음에는 원거리 딜러라고 해서 간 건데 정글 포지션에 공백이 생겨서 정글을 잠깐 했었다”며 “(원거리 딜러로선) 나름 당시에 잘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초기에는 중국어를 잘 못하다보니까 소통이 잘 안 됐다. 각자 솔로랭크 하는 느낌으로 했다”고 전했다.

2016시즌엔 그야말로 기량이 만개해 팀의 에이스로 거듭났다. 

진성준은 “팀적으로 소통이 잘 됐다.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팀원들끼리도 친밀감이 많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까 게임하기가 조금 더 편해졌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진성준에게나 WE에게나 2017시즌은 최고의 한 해였다. 스프링 시즌 ‘우지’ 지안즈하오가 버티는 RNG를 3-0으로 꺾고 LPL 우승을 차지했다.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에서는 SK 텔레콤 T1을 꺾는 등 4강에 올랐고, ‘리프트 라이벌즈에’선 우승을 차지했다. ‘롤 월드챔피언십(롤드컵)’에서도 준결승까지 올랐다. 이에 진성준은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는데 아쉽다. 지는 경기는 항상 그렇다. 준비를 많이 못했던 것 같아서 아쉽다”고 말끝을 흐렸다. 

2017시즌 보여준 퍼포먼스 덕분에 진성준은 ‘중국 최고 원딜(중체원)’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기자의 입에서 ‘중체원’이라는 얘기가 나오자 진성준은 자세를 낮췄다. 

그는 “그렇게들 불러주셔서 감사하다. 17년도는 원딜에게 유리한 향로 메타였다. 우리 팀이 이전부터 미드-바텀 위주로 플레이를 해준 편이어서 내가 더 돋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득 진성준이 생각하는 최고의 원거리 딜러는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진성준은 “개인적으로 인정하는 선수는 두 명이다. 우지와 데프트 선수”라며 “둘 다 공격적인 성향이다. 그런데 우지 선수의 경우엔 팀의 시팅을 많이 받는 편이다. 데프트 선수도 때에 따라선 시팅을 많이 받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어쨌든 두 선수 모두 팀이 지원을 해주면 제 몫 이상을 충분히 해낸다”고 전했다.

2018, 2019시즌에도 최고의 기량을 펼친 진성준은 2020시즌을 앞두고 ‘롤 챔피언스 코리아(LCK)’로의 복귀를 선언해 화제를 낳았다. LPL과 LCK는 연봉 규모에서 큰 차이가 있다. 이에 따른 고민이 분명 깊었을 터. 하지만 진성준은 아내와 아기를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그는 “고민을 많이 했다. 중국 이외의 해외리그에서도 높은 수준의 연봉을 제시했다”며 “돈보다는 중요한 게 있다. 아기가 태어난 뒤에 계속 해외에 있었다. 아내에게나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컸다. (아이가) 크는 걸 지켜보고 싶은데 그렇지 못하면 스스로도 많이 힘들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한국행을 결정했을 때 아내의 반응은 어땠을까. 

진성준은 “의외로 처음엔 별로 안 좋아했다. 내가 해외에 오래 나가 있었지 않나. 1년 더 프로게이머 생활을 하게 된다면 자기는 얼굴 볼 생각 않고 참고 기다릴 생각이었다더라. 힘들게 각오를 다졌는데 한국행이 결정되니 허탈했다고 그랬다”며 웃었다.

그의 연애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2018년 돌연 결혼‧출산 소식을 동시에 밝힌 진성준이다.

진성준은 “아내를 만난 건 정말 오래 전의 일이다. 스무 살 처음 프로게이머를 시작했을 때 아내가 내 팬이었다.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가 몇 년 뒤에 내가 먼저 만나 달라고 했다(웃음). 연애 기간은 얼마 안 됐다”고 밝혔다. 

진성준은 ‘사랑꾼’이다. WE, 아프리카 프릭스를 선택한 이유 중 하나도 아내에게 있다. 그는 “내가 중국에서 많은 돈을 벌었을 거라고 생각들 하시는데, WE에서 많은 돈을 받고 뛰지는 않았다. 출퇴근을 허락해준다는 말에 오랫동안 몸을 담았다”라고 말했다. 

아프리카 역시 출퇴근을 흔쾌히 허락했다. 진성준은 스크림 등 훈련이 전부 끝난 새벽 2시, 연습실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자택으로 택시를 타고 퇴근한다. 그는 “집에 도착하면 대부분 아기가 자고 있다. 어제는 보고 싶어서 내가 깨웠다”며 웃었다.

물론 아프리카 유니폼을 입은 결정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진성준은 “한국행 의사를 밝혔을 때 국내에서 세 팀 정도가 접촉했다”며 “사무국장님, 코치님과 대화를 나눴는데 너무 좋으셨다. (이)다윤이 등 아는 선수가 많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인’ 선수가 있지 않나. 나도 나이가 많아서 마무리를 이젠 잘 해야 한다. 믿고 왔다”라고 밝혔다.

[쿡터뷰] ‘미스틱’ 진성준의 자신감

시작이 좋다. 아프리카는 이 달 초에 마무리 된 ‘케스파컵’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진성준은 “우승 할 거라고 사실 예상은 못했다. 그래도 좋은 성적은 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베테랑 선수들이 많아서 그런지 합이 좀 빨리 맞춰지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진성준은 케스파컵에서 초반 안정적으로 성장을 도모하다가 후반에 캐리력을 뽐내는 장면을 수차례 보여줬다. LPL에서 보여준 스타일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스타일이 많이 변한 건 맞다. LPL에서 뛸 땐 대부분의 상황에서 내가 정글을 썼다. 그런데 지금은 기인이나 (송)용준이 둘 다 잘하는 선수라서 그 선수들이 정글이 필요하거나, 정글러에게 시간이 필요할 땐 거기에 맞춰서 내가 사리는 편”이라며 “굳이 바텀이 안 싸워도 되면 부를 필요가 없다. 중국에선 억지로 정글을 불러 싸움을 보곤 했다”고 말했다.

이어 “LPL과 다르게 LCK는 대부분의 팀이 게임을 조금 안정적으로 하려고 하는 편이다. 중국은 즉흥적인 게 많다. 아프리카도 안정적인 플레이를 선호한다. 그런데 사실 안정적인 게 정석이다. 정석부터 잘하자고 감독님이 말하셔서 그렇게 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존의 스타일을 하루아침에 바꾸기 힘들었을 터. 하지만 진성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나는 항상 적응을 잘 한다. 어디를 가던지”라며 웃었다.

진성준은 이번 케스파컵에서 ‘젤리’ 손호경과 주로 바텀 듀오를 이뤘다. 중국 리그에서부터 진성준과 호흡을 맞춰 왔던 ‘벤’ 남동현과는 합을 맞출 기회가 적었다.

두 선수가 가진 강점을 말해 달라는 요청에 진성준은 “동현이는 공격적인 성향이 좋은 선수다. 그런데 아직 한국에 온 지 얼마 안돼서 팀에 적응이 덜 된 상태다. 적응 중이라고 봐야 한다”며 “반면 젤리 선수는 공격적이진 않지만 안정적으로 잘 하는 선수”라고 말했다.

올 시즌은 유독 바텀의 영향력이 줄었다는 평가가 많다. 진성준은 케스파컵 당시 인터뷰에서 게임에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원거리 딜러는 ‘미스포츈’이 유일하다고 꼽기도 했다. 하지만 진성준은 “경험치를 주는 게 적어져서 레벨이 밀리는 게 크다”면서도 원딜은 아이템으로 딜을 하는 것이다. 초중반에 영향력이 없어도 한타 페이즈에 가서 잘하면 된다”며 개의치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스프링 시즌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다. 궁극적인 목표는 ‘미스틱의 스킨’을 갖는 것이다. 라이엇 게임즈는 매년 롤드컵이 끝난 뒤 우승팀 멤버들의 개성을 살린 챔피언 스킨을 제작하고 있다. 진성준은 “우승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우승할 수 있다. 2017년엔 내가 우승할 줄 알았지만(웃음). 이번엔 기필코 롤드컵에서 우승해서 스킨 만들고, 연금 받으면서 살고 싶다”고 웃었다.

문대찬 기자 mdc0504@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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