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닻 올린 김인호 의장단, 시작부터 ‘삐그덕’... “00을 뽑아주세요” 논란

닻 올린 김인호 의장단, 시작부터 ‘삐그덕’... “00을 뽑아주세요” 논란

기사승인 2020-08-05 05: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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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닻 올린 김인호 의장단, 시작부터 ‘삐그덕’... “00을 뽑아주세요” 논란
[쿠키뉴스] 조현지 기자 =초등학교 반장선거 날. 학생들은 자진해서 반장 후보로 나서기도, 친구의 추천을 받아 후보가 되기도 한다. 혹시나 친한 친구가 많은 후보가 경쟁상대여서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재치있는 출마 연설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움직일 결정적 한 수가 될 수 있기 때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반장선거 레전드’로 회자된 일화가 이를 뒷받침한다. 반장선거에 출마한 한 학생은 “여러분 저를 봐주세요. 이제 저쪽을 바라봐주세요. 다시 이쪽을 바라봐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유권자인 학생들이 연설에 따라 시선을 옮겼다. 이후 학생은 “여러분 방금처럼 저는 이렇게 리더십이 뛰어납니다”며 연설을 마쳤고 압도적 지지를 받아 반장으로 선출됐다.

투표 과정에서도 대통령 선거 못지않은 긴장감이 흐른다. 책상에 엎드려 어떤 후보를 뽑을지 숨기기도 하고 ‘누구 뽑았어?’라는 질문에 “비밀투표야”라는 답이 오가기도 한다. 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 A씨는 “학급 임원 선거도 ‘민주 시민 교육’의 일환으로 생각해 공정선거를 교육하기 위해 노력한다”며 “공약 보고 투표하기, 친한 친구라고 뽑지 않기, 사탕 같은 뇌물 주지 않기 등 규칙을 정해서 미리 공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어른들의 사회에선 사정이 다른 모양이다. 최근 서울시의회 의장단 선거에서 특정 후보 밀어주기 ‘관행’이 일어났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 기표소 내 특정 의원 이름이 강조 처리되거나 기표 진행 중 모 의원의 선거 유세 행위가 이어지는 등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권수정 시의원은 의장단 선출 무효를 주장했지만 서울시의회는 문제 될 게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서울시의회는 그동안의 ‘관례’에 따라 교섭단체에서 선출된 후보자를 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8대, 9대 의회 때도 편의상 후보자들을 표기해둔 점을 들며 되레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또 지방자치법에 관련 사항이 규정돼있고 ‘공직선거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같은 해명은 ‘법의 빈틈’을 악용한 ‘꾀’라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새치기’를 법으로 규정해두지 않은 이유는 으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인식이 공공연하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만약 21대 총선에서 비슷한 행위가 일어났다면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을 것이다.

말 그대로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법한 선거’가 일어났다. ‘민주 시민 교육’이라는 말이 무색한 어른들의 부끄러운 행동이다. 서울시의회 10대 후반기 김인호 의장단과 서울시의회는 개선을 약속하고 민주적 선거의 본질을 되찾아야 한다. 김인호 의장은 서울시의회를 “전국 243개의 지방의회 중 맏형격”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제 막 닻을 올린 ‘김인호 의장단’의 이후 행보가 ‘맏형’다운 책임감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hyeonzi@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