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의사국시 문제, 전문성보다 ‘상명하복’이라니 

기사승인 2020-10-16 04: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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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의사국시 문제, 전문성보다 ‘상명하복’이라니 

[쿠키뉴스] 전미옥 기자 = "복지부 장관과 많은 여당 국회 지도부들이 국민 동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서 재응시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내고 있다. 그런데 복지부 산하단체장을 맡고 있는 국시원장이 다른 의견을 내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태도다."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5일 국회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현장에서 이윤성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장을 향해 지적한 발언이다.

앞서 이윤성 국시원장이 지난 7일 국민권익위원회를 찾아 '의사국가고시의 시급함과 필요성'에 대한 의견을 전달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다. 당시 이 원장은 권익위에 "올해 의사국가고시가 치러지지 않을 경우 내년에 본과 4학년들이 후배들인 3학년들과 함께 시험을 치르게 되면서 의료인력 수급체계 등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단지 한해의 의료공백이 아닌 순차적으로 수년간에 걸친 의료시스템의 연쇄적 붕괴가 예상된다"며 의사국시 문제 해결의 시급함을 알린 바 있다. 

이날 국정감사 현장에서 여당 의원들은 이 원장의 행보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을 쏟아냈다. 고 의원은 "아무리 소신과 의견이 있어도 복지부 장관에게 먼저 피력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같은 당 서영석 의원도 "전직 국시원장이었거나 개인 신분이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면서 "기관장이 정부 정책에 반해서 의료시스템이 붕괴할 것처럼 표현하거나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 원장은 대한의학회장, 한국의학교육학회장, 대한의료법의학회장 등을 지낸 의료계 석학이자 전문가다. 보건의료인을 양성하는 기관장으로서 전문성도 갖췄을 것이다.

그런데 이날 국회는 내부 전문가의 '핵심 메시지'에 귀 기울이지 않고 '태도'에만 집중해 문제삼았다. 마치 정부와 여당 국회 지도부의 모든 사람은 만장일치여야 한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러나 만장일치가 가능한 곳은 북한 같은 전체주의 사회 밖에 없다.

국시 거부 운동을 벌였던 의대생들에게 다시 국시에 응시할 기회 부여할지 말지에 대한 결정은 국민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당장 내년 의료현장에 있는 환자의 생명과 안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또 그 과정에서 공정성이 지켜져야 한다는 점도 우리 사회의 기본 가치라는 면에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결정을 쥐고 있는 지도층이 더 다양한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고, 소신을 말한 내부 전문가를 질타하는 태도를 보인 것은 대단히 우려스럽다. 사회의 변화는 점차 빨라지고 다양성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는 높아지고 있는데 지도자들은 여전히 '다른 의견'을 배격하고 '상명하복' 같은 경직된 잣대를 내세우고 있으니 말이다. 

국어사전은 정치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고 정의한다. '찬성·반대' 딱 두 가지 국민 의견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문제와 상처가 녹아있는지 살피고, 갈등을 통합하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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