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에너지는 달리는데 우린 또 제자리걸음 [기자수첩]

기사승인 2024-04-19 06: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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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에너지는 달리는데 우린 또 제자리걸음 [기자수첩]

“정치적으로 접근해 싸울 시간이 없어요. 재생에너지 분야가 글로벌 평균에 뒤처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사안인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재생에너지업계 관계자로부터 들은 말이다. 한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 아니다. 

현재 정부는 RE100(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을 넘어 원전·수소 등을 포함한 CFE(무탄소에너지) 정책을 설파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도 원자력이 청정에너지 전환의 필수 요소로 인정받는 데다, 원자력 발전이 대한민국 전력 수요의 약 30%를 담당하고 있기에 충분히 이해 가능한 정책의 방향이라고 본다.

다만 한국의 에너지 정책은 태양광·풍력과 원전이 대립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원전에 힘을 싣는 사이 태양광 등의 지원 및 비중 목표는 점차 줄고 있다. 해외에서 태양광 설비를 늘리고 있는 것과 상반된다.

해상풍력산업은 사실상 시작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반도’라는 좋은 조건을 갖고 있음에도 말이다.

비교적 신사업에 속해 초석이자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법안 마련이 매우 시급하지만, 관련 법안은 국회 문턱에 몇 년째 머물러 있다.

풍력업계는 한마음으로 21대 국회에서 기적적으로 ‘해상풍력특별법(풍특법)’이 통과되기를 바라고 있다. 풍특법은 해상풍력 발전 입지를 국가가 선정하고, 정부 주도로 창구를 단일화해 현재 10여 년이 걸리는 입찰·주민수용 등 복잡한 인허가 절차를 평균 34개월로 단축하는 법안이다. 최초 법안이 2021년에 발의됐지만 아직도 제자리다.

물론 이 법안이 통과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이 법안은 하나의 ‘틀’에 불과하며 하위법령 등 다듬어야 할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국회에선 이러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관련 법안을 발의했던 한 의원실 관계자는 “법안이 옳고 그른 것을 논하기에 앞서, 일단 국회의원들 정족수 자체가 채워지지 않고 있다고 들었다”면서 “기후위기엔 여야가 없다면서 실제로는 첫 걸음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국회를 넘겨 22대 국회에서 해당 법안이 논의되려면 다시 입법 착수 과정을 거쳐 최소 2~3년이 무의미하게 흘러간다. 다른 국가가 해상풍력 보급이 본격화되는 시기를 2030년 안팎으로 잡고 속도를 내는 사이, 우리는 사실상 멈춰있는 것이다.

21대 국회가 마무리되면 ‘거야(巨野)’가 형성된 22대 국회는 또다시 지리멸렬한 정치적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정치적 갈등으로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 동남아 시장 역시 재생에너지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친환경이라는 대전제 하에 재생에너지와 원전은 ‘맞다·틀리다’의 개념이 아니며, ‘진보·보수’의 개념도 될 수 없다. 서로를 보완재로 여기고 함께 성장시켜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다. 

김재민 기자 jaemin@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