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정동길서 일왕·헌병 옷 대여 논란…서울시 “업체 계약 위반”

을사늑약 아픔 서린 정동에서 일제강점기 의상 대여
서울시, 대행업체에 법적 책임 예고

기사승인 2022-09-26 07:3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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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정동길서 일왕·헌병 옷 대여 논란…서울시 “업체 계약 위반”
23∼24일 열린 서울시 정동야행 행사의 정동환복소에 전시된 일본 천왕(일왕)·헌병 의상.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캡처.

서울시가 덕수궁 돌담길 등 중구 정동 일대에서 개최한 ‘정동야행’ 행사에서 일본 천황(일왕)·헌병 의상 등을 빌려주는 프로그램이 운영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은 가운데 서울시가 “대행업체의 계약 위반 사항에 대해 법적 책임을 강력하게 묻겠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25일 “2022 정동야행은 업체를 선정해 행사를 실시했으며 의상 체험을 위해 ‘정동환복소’를 운영했다”며 “행사 대행용역사가 정동환복소 운영업체에 사전 협의 승인된 체험 의상을 대여하도록 했으나 시 승인없이 현장에서 운영업체가 일본 천황복과 헌병복을 비치했다. 실제 일본 천황복은 1회 대여한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 23~24일 정동야행 행사를 열었다. 이 행사에서는 개화기의 여러 의상을 유료빌려 입고 정동을 돌아보게 하는 정동환복소가 설치됐는데 대여 의상에 일왕과 일제 강점기 때 일본 헌병의 옷이 포함돼 논란이 일었다. 특히 대여 안내문에 ‘일왕’ 대신 ‘일본 천황’이라는 명칭을 사용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덕수궁은 일본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장소다. 민족의 아픔이 있던 장소인만큼 일왕 등의 복장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은 받은 것이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대부분 네티즌은 “시에서 주최한 행사에서 일왕과 일본 순사 복장을 대여하다니 말도 안된다” “심지어 천황이라니” “덕수궁하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가 많은데 왜 저런 의상을”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오세훈 시장은 친일잔치로 서울의 역사에 일본의 색깔을 입히려는 것이냐”고 질타했다. 

오 대변인은 “광화문광장의 변천과정을 담은 포스터에 조선총독부 건물과 일장기가 연상되는 붉은 원이 포함돼 논란이 된 것이 불과 한 달 전”이라며 “일본 순사와 헌병대 복장이 우리의 역사인가? 오세훈 시장의 역사관에 깊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사전협의돼 승인된 체험의상은 대한제국 황제복과 군복, 한복, 남녀교복 춘추복, 여자 드레스, 남자셔츠·바지·보타이 등이다. 

시는 “행사장 내 관리 감독을 통해 부적정한 부분은 조치했어야 했으나 일부 소홀한 부분이 있었다”며 “이번 행사를 대행한 업체의 계약 위반 사항에 대해 법적 책임을 강력하게 물을 계획이며 향후에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했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달 재개장한 광화문광장 버스 정류장에 조선총독부 사진과 일장기를 연장시키는 포스터를 전시했다가 논란이 일자 철거한 바 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