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셰르파는 길을 막지 않는다

기사승인 2020-11-06 06: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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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셰르파는 길을 막지 않는다
[쿠키뉴스] 송금종 기자 = 히말라야에 오르려면 반드시 ‘셰르파’를 동원해야 한다. 고지 적응력이 뛰어난 셰르파는 정상으로 가는 최적의 길을 안내한다. 산악인은 셰르파를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간다.

이를 스타트업계에 비유해보자. 히말라야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이다. 산악인은 스타트업이다. 산악인을 돕는 셰르파는 정부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최근 스타트업 행사에서 한 격려사가 인상적이다.  

은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IF 2020 강남’ 행사에서 “정부는 긴 오르막을 오르는 등반가를 돕고 길을 안내하는 셰르파 역할을 하겠다”며 “다만 셰르파보다 중요한 건 등반가가 포기하지 않고 걸어가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공감한다. 고지를 달성하는 건 기업이다. 하지만 조력자 없이 가능한 지는 따져볼 일이다. 

한국은 스타트업 불모지다. 글로벌 스타트업 분석기관 ‘스타트업 게놈’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에서 이뤄진 스타트업 초기 투자금 총 규모는 8500만달러로 전 세계 평균의 10분의 1 수준이다. 서울은 글로벌 도시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상황을 따지는 순위에서도 20위안에도 들지 못했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본지에 ‘기업 제휴, 정부기관 협력, 생산 라인 연결, 법률, 재무, 회계 등 기본적인 조직 운영을 위한 인프라지원이 있다면 좋겠다’며 바람을 전했다.

업계 발목을 잡는 규제도 문제다. 블라인드 조사에 의하면 직장인들은 한국을 스타트업 불모지로 보는 가장 큰 이유로 ‘정책적 규제’를 꼽았다. 규제에 막혀 좌절하고 마는 기업들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아이러니한 건 ‘규제강국’ 한국에서 스타트업 축제는 계속해서 열린다는 점이다. IF에 이어 중기부 주관 스타트업 축제 ‘컴업 2020’이 오는 19일 개막한다. 인지도 제고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정부가 외치는 ‘혁신’을 위한 우선과제는 아니라고 본다. 

국내 스타트업들이 유니콘이라는 험준한 산줄기를 오르고 있다. 정부가 그들의 길동무가 돼주길 바란다. 셰르파는 정상을 향해 앞장서는 길잡이다. 결코 길을 막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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