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0년·탄소제로·73조원’ 숫자만 가득한 K-그린뉴딜에 없는 한가지  

한성주 / 기사승인 : 2021-04-18 06: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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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 저항하는 녹색의 탈환을 위해

<편집자주> 한살짜리 아기부터 대기업 회장님까지, 우리는 모두 지난해 8월22일부터 적자다. 이날은 지구가 제공하는 1년 치 자원을 다 써 버린 시점 '생태용량 초과의 날'. 나머지 4개월은 다음해 살림살이를 당겨 쓴 셈이다. 만성 적자의 대가는 재난과 불평등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공공예술 프로젝트 ‘제로의 예술’과 함께 평등, 비거니즘,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기후위기 세상을 톺아본다. 제로의 예술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공예술사업에 선정된 프로젝트 팀이다. 기후위기 문제를 의논하는 시민참여 강연·워크숍 프로그램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를 기획했다.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친환경 자동차, 친환경 에너지, 친환경 도시. 한국형 그린뉴딜이 내세운 세가지 목표다. 선한 의도를 담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마법의 수식어 ‘친환경’에 시민사회의 호응도 높다. 하지만 친환경은 장식일 뿐, 방점이 다른 곳에 찍혀있다면 정책은 의도와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진다. 그린뉴딜이 자동차, 에너지, 건설 대기업 자본가의 기득권 유지 수단으로 돌변하게 된다.

17일 서울 청계천로 세운561 메이커스 교육장에서 채효정 작가를 만나 그린뉴딜 정책의 이면을 들춰봤다. 채 작가는 한국형 그린뉴딜 정책이 시민을 소외시킨다고 분석했다. 정치학자인 그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해고강사로 ‘대학은 누구의 것인가’, ‘능력주의와 불평등’ 등 저서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착취를 지적했다.

사진=17일 서울 청계천로 세운561 메이커스 교육장에서 채효정 작가가 한국형 그린뉴딜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한성주 기자

“그린뉴딜은 텅 빈 상태로 수입해온 단어예요.”

채 작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린뉴딜의 의미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꼬집었다. 국가의 핵심 정책이자 기업들의 목표로 등극한 그린뉴딜의 정체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채 작가는 그린뉴딜이 민중의 공론장에서 떠오른 말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부에서 아래로 던져준 엘리트의 언어는 보통 시민들에게 소화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뉴딜은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고안한 국가 주도 경기 부양 정책이다. 대규모 토건 사업을 통한 고용 창출과 노동자 보호법으로 요약된다. 미국인들은 대공황을 직접 겪은 세대가 아니라도 뉴딜이라는 단어로부터 고용, 부흥, 노동권 등을 연상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에게 뉴딜 특별할 것 없는 영어단어다. 미국인이 ‘뉴타운 무브먼트’로 번역한 새마을 운동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다.

비어있는 단어 뉴딜에 누가 어떤 의미를 채워 넣을지가 관건이다. 채 작가는 한국형 그린뉴딜의 주도권을 정치가와 기업이 잡았다고 진단했다. 산업화 이후 기후위기를 앞당긴 대기업들이 ‘RE100’같은 녹색 전환을 외치면서 그린뉴딜 정책을 통해 정부의 지원을 받고 사업을 확장한다는 것이다.

RE100은 기업이 생산에 사용하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캠페인이다. LG에너지솔루션, SK그룹 등 대기업이 RE100 참여를 선언했다. 지난해 산업통상자원부는 그린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RE100 이행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발표했는데, 여기에 ‘제3자 PPA’가 포함됐다. 이는 한국전력의 중개로 발전사업자와 소비자의 전력거래를 허용하는 제도로, 전력시장 민영화의 서막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정치적 사회적 이해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것이 화근입니다”

채 작가는 정부가 그린뉴딜을 국내에 들여온 과정을 ‘배달 사고’라고 묘사했다. 그린뉴딜은 우리 사회가 가진 역사적 배경, 정치적 물음, 구성원들의 계급 구조와 전혀 관련이 없는 가치중립적 개념으로 등장했다. 때문에 탄소 배출량, 신에너지 개발, 에너지 효율화 건축 등 숫자와 기술에 관련된 의제가 주를 이룬다. 정책 결정자와 전문가들은 기계적으로 ‘2050년’, ‘탄소배출량 0’, ‘예산 73조원’ 등 시간과 비용을 계산해낸다.

산업과 시장의 대규모 전환을 겪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린뉴딜 시대에 대표적인 ‘좌초산업’으로 꼽히는 석탄·화력발전·석유화학 기업 노동자 수천 명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다. 새로운 친환경 산업을 개척해 고용을 창출한들, 그 자리가 좌초산업 노동자들에게 돌아간다고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채 작가의 설명이다. 지난 1970년대 산업화 시기 노동자가 겪은 낙오와 착취가 기후위기와 그린뉴딜을 계기로 재연되는 것이다.

그린뉴딜은 정치와 사회의 역학관계 속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 채 작가의 견해다. 평범한 사람들이 모르는 사이에 관료와 대기업이 선호하는 그린뉴딜 모델이 들어서는 비극을 막기 위해서다. 시민과 노동자가 제안하는 지역형·자치형·자급형 ‘대안생산체계’ 그린뉴딜이 대안으로 꼽힌다. 기후위기 대응에 필요한 정책과 지원은 각 지역 주민들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안생산체계는 구성원들의 협의로 운영되는 경영체계다. 소수의 책임자가 모든 결정권을 행사하는 권위적 경영체계의 반대 개념이다. 

채 작가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바우엔(Bauen) 호텔을 참고 사례로 제시했다. 바우엔 호텔은 아르헨티나가 국가부도 위기를 맞았던 2001년 파산했다. 실업자가 된 호텔 노동자들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대신, 호텔을 점거했다. 약 120명의 노동자가 조합을 만들었고 정부에게 지원을 요구했다. 정부는 이들의 요구를 수용해 호텔을 국영화하고 노동자 조합에 운영을 맡겼다. 조합은 최고책임자부터 청소노동자까지 모두에게 동일임금 체계를 적용하며 성공적으로 영업을 재개했다. 위기를 맞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지속 가능한 대응 방식을 만들어낸 것이다. 

채 작가는 “현미경과 망원경을 함께 들고 걸어가자”고 제안했다. 현재의 정책은 자세히 관찰하고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해야 한다. 동시에 정책의 결과를 예측하면서 공존과 지속가능성을 모색해야 한다. 그는 “정치가와 기업가들이 주도하는 한국형 그린뉴딜은 폭력적이고, 기존의 사회를 개선 없이 재배치하는 기만에 불과하다”며 “진정성 있는 기후위기 대응 방안은 숫자 계산이 아닌, 시민과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고 말했다.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