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가 된 얼리 엔트리, 농구계는 어떻게 볼까

기사승인 2021-10-01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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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가 된 얼리 엔트리, 농구계는 어떻게 볼까
올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된 연세대 2학년 이원석(오른쪽).   프로농구연맹
[쿠키뉴스] 김찬홍 기자 = KBL에 프로 조기 진출 열풍이 불고 있다.

KBL은 28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2020 KBL 국내 신인선수 드래프트’를 진행했다. 지난 8일 지명식 추첨 결과에 따라 서울 삼성, 수원 KT, 고양 오리온, 울산 현대모비스, 창원 LG, 서울 SK, 원주 DB, 대구 한국가스공사, 전주 KCC, 안양 KGC 순으로 선수를 지명했다.

이번 드래프트에서 가장 큰 화두는 ‘얼리 엔트리(고등학교 졸업이나 대학교 4학년 졸업 이전 프로에 진출하는 선수)’였다.

올해 초에는 이전과 달리 얼리 엔트리에 대한 소식이 잠잠했다. 그러나 막상 KBL이 드래프트 인원 모집을 하자 프로 조기 진출을 선언한 유망주들이 속출했다. 37명의 드래프트 참가자 중 ‘얼리 엔트리’는 총 6명이었고, 1순위 이원석(서울 삼성)을 필두로 이승우(창원 LG·5순위), 선상혁(서울 SK·6순위), 김동현(전주 KCC·9순위)까지 총 4명이 프로에 합류했다.

대세가 된 얼리 엔트리, 농구계는 어떻게 볼까
2020 정규리그 MVP에 선정된 송교창, 그는 고교 졸업 후 프로 무대에 직행했다.   프로농구연맹
◇ “조금이라도 빠르게 성장하고 싶다면 프로의 길을”

야구나 축구와 달리, 유독 농구만큼은 유망주 선수들이 고교 졸업 후 대학을 거치는 것이 정석적인 루트로 여겨져 왔다. 프로농구에 가장 많은 선수들을 공급하는 대학농구계의 영향력은 여전히 업계 내에서 상당하다. 

얼리 엔트리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15년부터다. 삼일상고를 졸업한 송교창(KCC)이 데뷔 2시즌 만에 프로 무대에 연착륙에 성공하자 대형 유망주들이 쏟아졌다. 2017년 2순위 양홍석(KT) 3순위 유현준(KCC), 2018년 3순위 서명진(현대모비스), 2019년 3순위 김진영(삼성) 5순위 김형빈(SK) 등 어린 선수들이 이른 순위에 지명되기 시작했다.

2020 드래프트는 얼리 엔트리가 가장 많이 나온 해였다. 역대 최다인 10명이 서류를 제출했고, 제물포고 출신 빅맨 차민석이 고등학생 졸업 신분으로는 최초로 1순위로 지명되는 역사를 썼다. 차민석을 비롯한 총 7명이 프로의 지명을 받으면서 얼리 엔트리를 바라보는 프로 구단의 바뀐 시선을 모두가 체감했다.

얼리 엔트리가 대세로 자리를 잡은 이유 중 하나는 프로와 대학간의 벌어진 수준 차이 때문이다. 최근 프로 관계자들은 대졸 선수라고 해도 프로 농구계에서 재차 적응 시간이 필요해, 조금이라도 어릴 때 체계적인 구단 육성 프로그램을 통해 성장하는 게 낫다고 보고 있다.

또한 관계자들은 대학에서 선수들이 제대로 된 성장을 하지 못한다고 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농구 관계자는 “3순위로 오리온에 지명된 이정현이 대표적인 예시다. 물론 이정현은 지금도 잘하는 선수고, 프로에서 통할 자질을 가지고 있다. 충분히 1순위 지명도 가능했을 선수”라면서 “하지만 신입생 당시의 이정현과 지금 이정현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냉정히 말해 4년을 날렸다고 본다. 프로에 조금이라도 일찍 왔다면 더 성장했을 거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어 “이름값 있던 고교생 유망주들이 대학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다. 청소년 대표도 했던 선수들이 이제 신인 드래프트에서 미지명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대학에서 성장하는 게 한계가 있다지만 이전에 비해 선수들의 수준도 정말 떨어졌다”라고 비판했다.

선수들 사이에서도 전성기 때 자유계약선수(FA) 기회를 노릴 수 있는 얼리 엔트리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자리잡았다. 대다수의 농구 선수들은 30대 초반에 처음으로 FA 신분을 획득하게 된다. 전성기 막바지에 FA가 되다보니 많은 연봉을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얼리 엔트리로 빠르게 프로 무대에 데뷔한다면 병역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20대 중반에 FA 신분을 획득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송교창이다. 2014년 고교 졸업 후 프로 무대에 바로 직행한 그는 지난 시즌이 끝나고 KCC와 5년 7억5000만원의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반면 대학을 졸업하고 온 선수들은 2019년이 되어서야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이제 프로 데뷔 3년차인 이들은 대다수가 병역 문제도 해결하지 않아 FA를 획득하려면 3~4년은 더 필요한 상황이다. 억대 연봉을 기록한 선수는 아직 한 명도 없다.

대세가 된 얼리 엔트리, 농구계는 어떻게 볼까
2020 대학농구 3차 대회에서 우승한 고려대.   대학농구연맹(KUBF) 홈페이지
◇ 프로는 반기지만, 대학은 꺼리는 ‘얼리 엔트리’

다만 대학농구계는 얼리 엔트리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갖고 있다. 대학 관계자와 지도자들은 고교 때부터 스카우팅을 통해 진학시킨 핵심 선수들이 이탈해 대학리그 성적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대학 팀에선 가용할 수 있는 인원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와 선수 간에 시즌 초부터 얼리 엔트리를 두고 합의를 한다면 상관이 없지만, 아직까지 대다수의 선수가 드래프트를 앞두고 일방적인 선언을 한다. 이로 인해 대다수의 선수와 학교측이 갈등을 남긴 채 이별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기존 선수의 자리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신입생 입학 밖에 없는데, 입학 인원이 이미 제한되어 있어 대학 측은 이탈한 선수의 빈자리를 채울 수 없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학농구 관계자는 “일찍부터 약속이 된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갑작스러운 프로 진출은 대학팀에게는 정말 치명적이다”라며 “4년을 보고 리쿠르팅을 하는데 선수가 갑작스럽게 떠난다면 미래가 무너지기 마련이다. 또한 선수가 얼리 엔트리를 선언해 팀을 나가면 대회를 치르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신입생 TO는 이미 정해졌는데, 프로에 진출한 선수의 자리를 하루 이틀 사이에 만들수도 없다”고 한탄했다.

이어 “물론 대학보다 프로에서 성장하기 좋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선수들을 그냥 방치시키는 게 절대 아니라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면서 “앞으로 선수들과 대학, 각 연맹에 있어 ‘얼리 엔트리’에 대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일방적 선언으로 인해 선수와 대학 사이에 감정의 골이 생긴다면 모두에게 좋을 게 없다”고 덧붙였다.

대세가 된 얼리 엔트리, 농구계는 어떻게 볼까
2021 신인 드래프트 최종 결과가 적힌 보드판.   프로농구연맹
◇ “무작정 ‘얼리 엔트리’를 선언하지 마라”

얼리 엔트리 선언은 장미빛 미래만을 보장하지 않는다. 얼리 엔트리를 선언한 선수가 만일 드래프트에 지명되지 못하면 학교에 돌아가도 선수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는 게 대다수다. 학교가 문제 없이 받아주는 경우도 존재하지만, 학교와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드래프트에 참여한 선수는 학교에서 선수를 받아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학교 팀의 인원 제한으로 선수가 차기 시즌에 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못하기도 한다.

프로 관계자들도 마냥 얼리 엔트리만을 선호하지 않는다. 대형 유망주들이야 신입생이나 저학년 때부터 기회를 받지만, 보통의 학생 선수들은 고학년 때부터 기회를 받는다. 아무리 선수의 포텐셜이 좋다고 해도 기록이나 성적이 저조하다면 지명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수도권 팀의 관계자는 “선수들의 대다수가 어렸을 때부터 이름을 날리던 선수들이다. 그 중 걸려지고 걸려지는게 대학과 프로에서 살아남은 선수들이다. 프로에 일찍 나온다면 프로에선 반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라면서 “하지만 성적이나 결과가 없는데 무작정 얼리 엔트리를 선언했다고 해서 뽑지 않는다. 스카우터들이 일일이 경기장을 찾아가고, 연습 경기를 하는 데 이유가 있다. 얼리 엔트리를 선언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보기 바란다”고 충고했다.

kch0949@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