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척 불편해요”… 무인 상점 찾는 청년들

무인 상점 급증… 비대면으로도 불편하지 않은 하루

기사승인 2023-05-06 06:05:02
- + 인쇄
“아는 척 불편해요”… 무인 상점 찾는 청년들
서울 신촌의 한 무인 점포는 셀프 세탁소를 운영하면서 아이스크림, 밀키트 등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임지혜 기자

소통의 불편함보다 단절의 편안함을 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SNS가 일상화되며 얼굴을 보지 않고 이야기하는 것에 익숙하다. 다양한 무인 상점이 나타나는 등 세상도 비대면 생활이 가능해지고 있다. 20~30대는 물론 10대 청소년들도 사람을 마주하지 않는 무인 상점을 선호하는 분위기다.

비대면으로 보낸 하루

마음만 먹으면 온종일 사람과 만나지 않고도 불편함 없이 일상생활이 가능해졌다. 무인 업종이 다양해지면서다. 쿠키뉴스가 지난 2일 서울 신촌과 홍대 상권을 돌아보니 무인 상점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이날 오전 9시 무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전 11시 무인으로 책 대여나 구매가 가능한 서점에 들렀다. 오후 12시에는 무인 상점으로 운영 중인 롯데리아 홍대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키오스크 네 곳 모두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매장 테이블 대부분 젊은 청년들이었다. 주문한 음식은 무인 픽업존에서 받았다. 직원과 말 한마디하지 않고 매장 입장부터 퇴장까지 모든 과정이 비대면이었다. 이날 홀로 매장을 찾은 A씨는 “편해서 종종 온다”고 말했다.

오후 2시에는 세탁소와 간식 매장이 합쳐진 형태의 무인 상점을 찾았다. 20대로 보이는 한 청년은 간식을 먹으며 세탁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또 다른 청년은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아 온 세탁물을 무인 세탁기에 넣고 있었다. 인근 무인 프린트 가게에도 청년들이 가득했다.  오후 4시 무인 반려동물용품 매장에 들렸다가, 오후 6시 무인 밀키트 가게에서 저녁 반찬을 샀다. 고객이 술과 즉석식품 등 안주를 냉장고에서 직접 꺼내 키오스크에서 계산하는 무인 주점도 있었다.

식당, 카페, 관공서, 병원 등 곳곳에 키오스크가 늘어나면서 비대면 환경이 일상 깊이 들어왔다. 지난해 11월 한국소비자원의 ‘키오스크 이용실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기준 국내 민간분야에 설치된 키오스크 수는 2만6574대로, 2019년(8587대)보다 3배 이상 크게 늘었다. 요식업 및 생활편의 분야는 4.1배 증가했다.

“아는 척 불편해요”… 무인 상점 찾는 청년들
롯데리아 홍대점은 무인 키오스크와 무인 픽업존을 운영해 매장 입장부터 퇴장까지 비대면으로 가능하다.   사진=임지혜 기자

“일부러 무인 상점 찾아가요”


청년 상당수가 무인 상점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한국소비자원의 ‘키오스크 이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성인 10명 중 6명(57.6%)이 키오스크를 이용한 비대면 거래를 직원을 통해 직접 주문하는 대면 거래보다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특히 20대는 비대면 선호도가 75%에 달했고, 30~40대는 60% 이상이 비대면을 선호했다.

청년들은 무인 매장이 있으면 무인 매장으로 간다. 굳이 직원이 있는 매장을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직장인 이지영(34)씨는 “일부러 무인카페를 찾아다닌다”며 “요즘은 무인 상점이 많고 참 잘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혼자 카페에 앉아 일하면서 음료를 마시고 싶을 때 직원이 있는 개인 카페에 가면 눈치 보일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화장품 매장에서도 직원이 다가오거나 말을 걸면 너무 불편하다. 무인 과일가게도 종종 찾는다”고 덧붙였다.

류연지(20대·회사원)씨는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을 자주 간다”며 “근처에 슈퍼마켓도 있지만 아이스크림 종류가 더 많고, 오래 고민하며 골라도 눈치 볼 필요 없어서 좋다”고 했다. 무인 밀키트 매장을 자주 이용한다는 박재은(38)씨도 “직원이 따라다니지 않아서 좋다”며 “천천히 물건을 고를 수 있고 누가 말 걸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B씨(20대·미용사)는 “젊은 고객들에게는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편이다. 대화를 시작하면 불편하다는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며 “일할 때는 고객에게 먼저 말을 걸지만, 평소엔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무인 매장을 주로 이용한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모바일 메신저와 키오스크에 익숙한 청소년들도 대면이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중학교 1학년 김유희양은 “무인 상점을 일부러 찾아다니지는 않지만, 키오스크가 있는 곳이 더 좋다”며 “내가 무엇을 사는지, 뭘 좋아하는지 (직원 포함) 다른 사람이 아는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학부모 C씨는 “고등학생인 자녀는 매장에서 물건을 살 때 주인이 인사를 하거나 말을 걸면 불편하다고 하더라. 그럼 다른 매장에 간다고 한다”고 했다.

“아는 척 불편해요”… 무인 상점 찾는 청년들
최근에는 무인 카페, 음식점, 주점, 서점, 옷가게 등 무인 점포가 다양화됐다. 사진은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 한 무인 반려동물용품점.   사진=임지혜 기자

“타인과 비접촉이 습관 되면”


전문가들은 청년들의 무인 상점 선호를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본다. 서경현 삼육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겸 한국 문화 및 사회 문제 심리학회장은 “청소년기 후반부터 초기 성인기는 사교적인 활동을 하거나 대화 등을 통해 사람과 관계 맺기를 좋아하는 시기이다. 또 타인에게 자신의 사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는 시기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매장은 청년들에게 친교 목적의 대화가 필요하지 않은 곳이다. 이런 공간에서 타인과의 만남은 불편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매장을 온전히 즐기고 싶은 청년들의 욕구가 무인 상점 급증, 디지털·비대면 확산과 잘 맞아떨어진 셈이다.

부작용이 나타날 위험도 있다. 서 교수는 “사회 불안에 대한 취약성을 가진 이들이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는 것을 습관화하면 회피성 성격 장애나 사회 불안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아는 척 불편해요”… 무인 상점 찾는 청년들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