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니까 참아야”… 두 번 멍드는 교사들

대안학교라며 무조건적 이해 바라는 학부모
학교 이미지·평판 이유로 교권침해 공론화 어려워

기사승인 2023-08-04 0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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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니까 참아야”… 두 번 멍드는 교사들
서울교사노동조합과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달 20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울교육청 앞에서 ‘신규 교사 사망 사건 추모 및 사실 확인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박효상 기자

# 대안학교 교사 A(50대)씨는 한 학부모에게 “아동학대죄로 신고하겠다”, “아동학대죄인지도 몰랐다면 무식한 거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 “교사 자격이 없다”, “대학이나 나왔냐”는 말도 들었다. 이 같은 대화가 한 번 통화하면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이어졌다. 지난달 3~6일 4일 동안 무려 열 차례 이상 전화를 받았다. 자녀가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며 피해보상을 요구받기도 했다. 해당 학부모는 이미 입학 전에 자녀가 어려움을 겪어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고 교사들에게 알린 바 있다.

최근 교권 보호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대안학교 교사들도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대안학교는 정규 초·중·고등학교와 방향성이 다르고, 제도권 울타리에 포함되지 않아 교육부가 대책을 내놔도 보호받기 힘든 점이 문제다.


“대안학교인데 뭘 그렇게까지”

학부모 민원에 고통 받는 현실은 대안학교도 일반 학교와 다르지 않다. 악성 민원에 시달린 A씨는 현재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 A씨가 재직 중인 대안학교 교장 B(59)씨는 “(A씨가)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라며 “이러려고 대안학교에서 일하나 싶다고 한다. 경제적 보상을 포기하고 일하고 있는데 이렇게까지 힘들면 차라리 아르바이트하며 사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A씨가) 잠자려고 누우면 악성 민원을 넣은 학부모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해 백색 소음을 틀고 생활한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한 대안학교에서 10년째 체육 교사로 일하고 있는 이모(46)씨 역시 “아이들이 힘든 상황이나 상태에서 오다 보니 쉬는 시간, 퇴근 시간 가릴 것 없이 학부모들로부터 연락이 많이 온다”고 이야기했다. 이씨는 “학교에 여러 일이 많이 생긴다”며 “아이들이 욕하거나 폭력 행위를 할 때, 당혹스럽지만 ‘아이들이 힘들고 아파서 이렇구나’라고 생각하고 넘긴다”고 설명했다.

일반 학교가 아닌 대안학교라서 일어나는 일들도 있다. ‘대안학교니까’라는 생각으로 참는 교사들도 많다. 한 공립 대안학교에서 교감으로 근무하고 있는 교사 경력 30여 년의 C(57)씨는 학생과 실랑이하다 맞아 입술 밑이 찢어진 한 선생님 사례를 소개했다. 그는 “그 선생님 옷이 피로 물들 정도였지만,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를 열지 않았다”며 “‘다친 건 다친 것’이라며 ‘아이를 위해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그 교사가 말렸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에 적응 못 하거나 심리적 어려움 등을 겪는 학생들이 많아서 그냥 감수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자녀들이 어려움을 겪고 문제가 있어 대안학교에 왔다며 문제 행동이 당연하다고 주장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비인가 대안학교 교장인 D(49)씨는 “(일부 학부모들이) ‘아이들이 이러니까 공교육에서 나왔죠’라며 교권을 침해하는 말·행동을 무조건적으로 이해해달라고 요구하는 일도 있다”고 말했다.

“대안학교니까 참아야”… 두 번 멍드는 교사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진 가운데 20일 오후 서울시 교육청 앞에 추모 화환이 가득하다.   사진=박효상 기자

“대안학교, 법·제도 지원 절실”

대안학교 중 인가를 받은 곳은 대안교육기관에 관한 법률을 적용받는다. 해당 법에 없는 내용은 상위법인 초·중등교육법을 적용받아 교보위 설치와 운영이 가능하다. 반면 비인가 대안학교는 법·제도 울타리 밖에 있어 자율성이 높은 장점이 있는 대신, 부당한 상황에서 대응책이 마땅치 않다. 교보위 운영이 학교의 재량에 달려있으며, 교보위와 비슷한 운영위를 만들어도 행정적·법적 지위와 권한이 없다. 대안학교에서 18년째 근무 중인 체육교사 E(39)씨는 “대안학교는 규모부터 학교 유형, 지향점 등이 굉장히 다양하다”라며 “소규모·비인가 대안학교는 학부모가 악성 민원을 넣어도 혼자 떠안고 풀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대안학교에선 교권 침해 사례가 발생해도 이를 문제라고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어떤 학생이든 무조건 받아줄 거란 대안학교 이미지 때문이다. 학부모가 자녀를 대안학교에 입학시킬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학교 평판이다. 대안학교 교장 B씨는 “악성 민원이 들어오는 등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 교내 분위기가 안 좋아진다”라며 “교사들이 위축되기도 하고, 학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어서다”라고 설명했다.

정부에서 교권 보호를 위해 발표한 대책이 대안학교에도 보호 울타리가 될지는 의문이다. 비인가 대안학교는 생활기록부(생기부)를 작성하지 않고, 이와 비슷한 학생 평가서 등이 있어도 입시에 반영되지 않아 영향력이 없다. 인가 대안학교도 비슷하다. 학교 적응을 위해 대안학교에 일정한 기간 동안 머무는 경우, 원래 학교로 돌아갈 학생 장래를 걱정해 문제 상황을 기재하지 않는다. 또 해당 교사가 대안학교서 다른 학교로 발령 나, 문제 학생을 다시 만날 가능성도 있다.

공립 대안학교 교감 C씨는 “문제 상황을 생기부에 기입하거나 교보위를 의무화해도, 실제로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학생인권조례 같은 제도 변화 이전에 교사, 학부모, 학생들이 서로 맞춰나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으면 한다”라며 “지금 상황을 보며 속상함을 많이 느낀다”고 덧붙였다.

대안학교를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안학교 교감, 교장을 거쳐 대학에서 관련 분야를 가르치는 한 교수는 “대안학교를 위한 법·제도 지원이 절실하다”라며 “대안등록기관법이 생기자마자 200여 개 넘는 학교들이 등록한 게 단적인 예”라고 지적했다. 이어 “다양한 유형의 대안학교를 지원하고 보호해주는 폭넓은 대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유채리 기자 cyu@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