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vs“유지” 팽팽…다시 헌재로 간 ‘태아 성감별 금지법’

기사승인 2023-08-11 06: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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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vs“유지” 팽팽…다시 헌재로 간 ‘태아 성감별 금지법’
게티이미지뱅크

‘폐지’냐 ‘유지’냐. 헌법재판소가 다시 고민에 빠졌다. ‘태아 성감별 금지법’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인공임신 중지(낙태)가 의학적으로 어려운 임신 후반기(33주 이후)까지 태아의 성감별을 금지하는 건 위헌이라는 결정이 나온 직후 2009년 법이 개정됐지만, 15년 만에 태아 성감별 금지법이 다시 헌법재판 도마에 오르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의료계와 여성계 등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히며 팽팽한 논쟁이 예상된다.

10일 의료계 등에 따르면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3월과 올해 2월 접수된 ‘의료법 제20조 제2항 위헌 확인’ 사건 2건을 병합해 심리 중이다. 태아 성감별 금지법을 담은 이 조항은 의료인이 임신 32주 이전에 태아의 성별을 임산부와 그 가족을 포함한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본래 태아 성감별 금지법은 남아 선호에 따른 성선별 출산으로 성비 불균형이 초래돼 이를 막기 위해 지난 1987년 제정됐다. 2009년 개정을 거쳐 임신 후반기인 33주 뒤부터 태아 성별 고지가 허용되면서 3년 이하 징역에 1000만원 이하 벌금이었던 기존 처벌 수위가 완화됐다. 32주 이전에 태아 성별을 알려주면 의사면허 자격정지 1년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적용됐다.

이어 2019년 4월 “낙태죄가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국회에 관련 법을 개정하도록 주문했으나, 2021년 1월1일부로 낙태죄의 효력이 상실됐음에도 지금까지 대체 입법이나 법률 개정에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태아를 낙태해도 형법상 처벌할 수 없는 상태에서 성감별 후 낙태를 결정하더라도 제재를 가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산부인과 전문의들은 “낙태죄가 헌법불합치 판결이 난 상황에서 성감별 금지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모순”이라며 어느 방향이든 정리가 필요하단 입장이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입법 목적이 상실되고 낙태죄가 사라진 마당에 금지법의 처벌 조항만 남아 있어 성감별을 막는 것은 정당성이 부족하단 주장이다.

양신호 중앙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성감별 금지법은 기본적으로 아이의 성별을 확인하면 낙태로 이어진다는 가정이 깔려 있는데, 낙태죄가 위헌 판결이 난 상황에서 금지법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모순”이라며 “다만 현재 낙태에 대한 입법이 정립돼 있지 않은 상태이기에 낙태에 대한 법률적 정리와 함께 태아 성감별에 대한 법률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감별을 원하는 것은 임부와 보호자인데 감별에 응했다는 이유로 의료인만 처벌받는 구조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 교수는 “엄연히 따지면 범법 행위를 하도록 요구하는 대상자도 당연히 함께 처벌받아야 한다. 임부나 보호자에 대해서만 눈감아주는 것은 맞지 않는 구조”라며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의료기관은 산모에게 외면받을 수 있다”고 했다. 출산율이 저하되면서 손해를 감수하고 분만실을 운영하는 병원들이 있는데, 이러한 처벌들로 인해 분만행위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성감별 금지법을 완전히 폐지하는 것에 대해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양 교수는 “성감별 금지를 완전히 폐지하면 ‘착상 전 유전검사(PGT)’를 시행해 태아 성을 감별하고, 원하는 성이 아닐 경우 낙태를 하는 생명윤리에 위배 될 만한 행위가 일어날 수 있다”며 “일정 주수나 시기 등의 제한은 그대로 둬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여성단체는 “성감별 금지법이 사라진다면 원하는 성별을 선택하고자 하는 부모들의 욕구에 따라 낙태할 위험이 있다”며 금지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혜성 바른인권여성연합 사무총장은 “시대가 달라지면서 남아 선호사상이 거의 사라진 현 시점에서 이 법이 불필요하다는 일부의 의견이 있지만, 남아 선호사상이 사라졌다고 판단할만한 근거가 분명하지 않다”며 “남아보다 여아를 선호하는 최근 경향을 고려할 때 오히려 여아를 낳기 위해 남아를 낙태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 사무총장은 “이 법의 존폐를 결정하기 전에 2019년 헌재 판결 이후 공백 상태에 머물러 있는 낙태와 관련된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제대로 정비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며 “출산 준비를 핑계로 의사들에게 성별을 알려달라고 재촉하는 부모들과 그런 부모들에게 우회적으로 성별을 알려줘 법률의 실효성을 떨어뜨리는 현실이 이어진다. 국민의 의식변화가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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