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전담 교사 “교사인지, 경찰인지 모르겠어요” [쿠키인터뷰]

기사승인 2023-11-20 11:00:02
- + 인쇄
학폭 전담 교사 “교사인지, 경찰인지 모르겠어요” [쿠키인터뷰]
15일 오후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책임교사 임모씨와 인터뷰를 했다. 사진=임지혜 기자

3명 중 1명. 지난해 거의 매일 폭력에 시달린 고교생 비율(32.0%)이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지난 7월 공개한 2022년 2차 학교폭력 실태조사에 따르면, 중학생 23.6%, 초등학생 20.0%도 거의 매일 학교폭력 피해에 시달리고 있다.

학교폭력은 학교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수위는 잔인해지고, 수법은 교묘해졌다. 수사 권한과 조사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하지만 학교폭력 관련 모든 조사는 조사 권한 없는 교사가 떠안고 있다. 왜 교사일까. 그 답을 찾고자, 지난 15일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책임교사로 근무 중인 임모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임씨에 따르면 학교폭력 책임교사는 교사들에게 기피 대상 업무다. 교사들이 학교폭력을 인지하면 이후 조사와 해결 노력, 처분 이행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해야 한다. 1년에 발생하는 학교폭력 사안은 적게는 5~6건, 많게는 40~50건이다. 교사가 각 사안마다 작성해야 하는 보고서는 10여개에 달한다.

과도한 업무량보다 큰 부담은 조사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민원이다. 임씨는 “내가 교사인지, 경찰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학교폭력 이야기를 듣고, 갈등을 중재하고, 보호자와 연락하는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임씨는 “학교폭력 사안이 접수되면 그때부터 살얼음판”이라고 했다. 그가 ‘피해 관련 학생’ ‘가해 관련 학생’을 구분 짓는 순간부터 “확인도 안 됐는데 왜 가해자냐” “네가 경찰이냐” 등 민원이 쏟아진다.

학교폭력 사안에서 대부분 학생과 학부모는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을 이야기한다. 쟁점을 두고 서로 말이 다르면 증거 싸움이 시작된다. 학교 밖 사회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교사에겐 경찰처럼 증거를 수집하고 조사할 ‘권한’이 없다. 교사를 법적으로 보호할 장치도 없다. 수많은 민원이 교사들의 가슴에 화살처럼 꽂힌다. 

학폭 전담 교사 “교사인지, 경찰인지 모르겠어요” [쿠키인터뷰]
15일 오후 서울 한 초등학교에서 인터뷰를 마치고 나온 교사 임씨는 “학교폭력 사안이 생기면 이처럼 늦은 시각까지 야근을 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사진=임지혜 기자

학교폭력은 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마트, 학원 등에서 발생한 친구 간 갈등도 학교폭력 사안이 돼 교사의 몫으로 돌아온다. 임씨는 “해외에서 발생한 일로 학교폭력을 신고한 경우도 있어 난감했다”고 전했다.  

학교폭력 조사에 대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사안 조사를 위해 학생을 불렀다가 “학원 시간에 영향을 받는다”는 민원도 많이 받는다. 일부 학부모는 “이게 (이렇게 조사할 정도로) 큰 일이냐”고 따진다. 그때마다 교사는 원활한 조사를 위해 노력과 시간을 희생해야 한다.

“교사는 학교폭력 문제에서 교육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교육 영역을 넘어서는 것 같아요. ‘네가 경찰이냐’ 소리를 들으면 심리적 스트레스만 깊어지죠.”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임씨의 한숨은 깊어졌다. ‘정서적 아동학대’ 신고 협박 이야기를 꺼낼 땐 특히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임씨에게도 학교폭력 사안 조사 중 일부 학부모로부터 정서적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는 협박을 받은 기억이 있다. 임씨는 “다행히 증거가 없어 신고되지 않았다”면서 “조사를 할 때 객관적이고 친절하게 해야 한다. 사전조사에서 웃으며 대화한 학생이 귀가 후 ‘무서웠다’고 말해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단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 교사가 겪는 일”이라고 덤덤하게 설명했다.  

학폭 전담 교사 “교사인지, 경찰인지 모르겠어요” [쿠키인터뷰]
쿠키뉴스 자료사진

임씨가 지난해 처리한 학교폭력 사안은 40건. 이 중 37건은 학생 간 갈등 중재를 통해 신고 접수 전 해결했다. 조사는 늘 난항이다. 보통 사안 조사에 주어지는 시간은 2주(성 관련 문제는 24시간 이내)다. 복잡한 사안이 생기면 야근은 기본이다. 학교폭력 사안이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기에 몸과 마음이 아파도 쉴 수 없다.

6학년 담임교사이기도 한 임씨는 반 아이들에게 늘 미안하다. 그는 “책임교사 업무가 많을 때는 수업 준비할 시간이 부족해 학급 운영에 지장이 많다”며 “아이들 교육을 해야 하는 교사가 본업에 지장을 받으면서까지 왜 학교폭력을 전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현재 많은 교사들이 학교폭력 사안을 경찰로 이관하는 데 찬성하고 있다. 초등교사 커뮤니티 인디스쿨의 ‘교육관련법연구회’가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15일까지 교사 1만1391명, 학생 71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교사 10명 중 9명(99.6%)이 학교폭력 사안조사 업무 주체의 학교전담경찰관(SPO) 이관에 동의했다. 

“교사가 학교폭력 사안에 아예 관여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에요. 교사는 화해 시도와 예방 교육 등 교육적인 내용에 충실하고, 심각한 학교폭력이나 교사가 도저히 파악할 수 없어 분쟁이 생기는 사안은 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경찰이 심층적으로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학폭 전담 교사 “교사인지, 경찰인지 모르겠어요” [쿠키인터뷰]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