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보의 차출’에 농어촌 휘청…“정부가 지역의료 망쳐”

정부, 수도권 병원에 군의관·공보의 추가 파견
공보의 6명 있던 강원도 보건소 전원 차출
“남은 인력마저 빠지면 운영 마비”

기사승인 2024-04-03 13:00:40
- + 인쇄
‘공보의 차출’에 농어촌 휘청…“정부가 지역의료 망쳐”
전공의 집단 사직으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가 7주째 이어지는 가운데 정부가 농어촌 지역의 공중보건의를 추가 차출하면서 지역 공공의료기관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정부가 비수도권 농어촌 의료취약지역을 지키던 공중보건의(공보의)를 차출해 수도권 대형병원에 배치하면서 지역의료 현장이 휘청이고 있다. 지역에 얼마 있지 않던 인력마저 정부가 쥐어짜기식으로 빼가자 현장 혼란과 부담이 가중된다.

3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장기화된 의료계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달 11일과 21일, 25일 세 차례에 걸쳐 공보의와 군의관 등 413명을 전공의가 집단 이탈한 대도시 병원들에 투입했다. 공보의는 군 복무를 대신해 36개월간 농어촌 지역 보건소나 보건지소, 국공립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의사다.

전공의에 이어 대학병원 교수들도 사직서를 제출하고 진료시간 축소에 들어가자 정부는 비상진료체계 강화 방안으로 군의관과 공보의 추가 배치 카드를 꺼내들었다. 정부는 필수의료 전문의 중심으로 기존에 파견한 413명에 더해 상급종합병원과 공공의료기관에 군의관과 공보의를 추가 배치할 계획이다.

전병왕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총괄관(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2일 브리핑에서 “외래진료, 수술 등의 감소가 불가피한 점을 고려해 상급종합병원 중심으로 가용 인력을 총동원해 배치하고, 종합병원의 협력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인구 감소에 고령자가 대부분인 도서 산간 지역은 병원이 많지 않아 공보의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이들을 추가 차출한다는 방침에 지역 공공의료기관은 혼란에 빠졌다. 김혜경 한국지역사회공중보건연구소 공동준비위원장(대한공공의학회 전 이사장)은 “정부가 지역의료를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고 일갈했다. 김 위원장은 1988년 구리시 초대 보건소장을 시작으로 경기도 보건과장, 수원시 장안구보건소장 등 수원시 4개구 보건소장을 역임한 공공의료 전문가다.

김 위원장은 “강원도의 한 보건소의 경우 처음에 6명의 공보의가 있었는데 2명이 복무 일수를 다 채워 전역하고 4명인 상태로 운영되다가 지난달 2명이 차출됐다”며 “이번에 2명을 추가로 차출한다고 해 이제 남은 공보의가 없게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 식의 대처다. 안 그래도 없는 인력을 쥐어짜가며 겨우 운영하고 있는데 또 차출한다고 하면 남아 있는 직원들이 과중된 업무에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공보의들로 의료공백을 막겠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대로 장기간 버티기 힘들다. 근본적인 해결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지난 1일 기준 강원도에서 4차례에 걸쳐 공보의 34명이 차출됐다. 지역별로 삼척과 횡성에서 각각 4명, 정선과 영월 각각 3명, 홍천·양구·인제·고성·양양에서 각각 2명씩 파견됐다. 강원 지역은 전국에서 대표적인 의료취약지로 꼽힌다. 복지부의 ‘2022년 의료취약지 모니터링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원주·춘천·강릉을 제외한 15개 시·군이 응급의료 취약지로 지정됐다. 응급의료 취약지는 권역응급의료센터에 1시간 이내 도달이 불가능하거나, 지역응급의료센터에 30분 이내 도달이 불가능한 인구가 30% 이상인 곳을 말한다.

강원도 지역 보건진료소의 A소장은 “보건소와 보건지소가 지역의료체계에서 의사와 병원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인력 차출로 그 기능을 상실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지역마다 공공보건기관이 위치해 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라며 “정부는 인력을 차출해야 하는 이유를 기관들에 충분히 설명하고 공보의들에게도 양해를 구해야 한다. 강제적 차출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의료공백이 우려되는 지역은 차출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전 총괄관은 “문제가 될 지역은 제외하고 차출하고 있고, 지자체에서도 순환 진료 등으로 지역 의료공백을 메우고 있다”며 “공보의가 근무하는 보건소는 급성기보단 만성질환 관리에 초점을 두고 있어 긴급성이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밝혔다.

신대현 기자 sdh3698@kukinews.com

‘공보의 차출’에 농어촌 휘청…“정부가 지역의료 망쳐”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