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프레스] 혐오규정의 진입장벽을 넘어서

“개인은 절대 한 단어로 설명할 수 없다”

기사승인 2020-11-03 1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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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프레스] 혐오규정의 진입장벽을 넘어서
[쿠키뉴스 유니프레스] 김현우 중대신문 기자 = ‘한남’ ‘맘충’ ‘틀딱’ ‘잼민이’. 이 단어들을 알고 있나. 혹은 ‘~충’ ‘~특’ 등의 표현을 보았나. 모두 개인을 하나의 특성으로 단정 짓는 혐오 표현들이다.

남자라는 이유로 ‘한남’이 되고 엄마라는 이유로 ‘맘충’이 된다. 우리는 반복적으로 이런 단어에 노출되며 심지어 사용하기도 한다. 무의식중에 혐오 표현 속에 개인을 가두고 규정하며 판단한다.

혐오 표현의 피해자는 추방된다. 위 혐오 표현들과 함께 ‘거르자’ ‘손절’이라는 말도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 단어들은 어떤 특성을 지닌 사람은 그 자체로 해가 되기에 함께 어울려선 안 된다는 뜻이다.

혐오 표현을 기준 삼아 개인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쉽게 인연을 끊는다. 배척을 위한 선동도 난무하다.

우리는 서로를 검열하고 판단하며 배척하는 혐오 사회 속에 살아가고 있다.
상대가 혐오 대상인지 아닌지 의심과 경계심 가득한 눈빛만 오간다. 혐오 표현의 엄격한 규정 안에서 사람을 평가하고 또 평가 당한다. 이때 이 평가는 ‘공정하고 정의롭다’고 여겨지며 평가에 따른 처분 역시 ‘합당하다’고 설득된다.

사람은 한 가지 특징으로 규정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필자를 ‘여자’로 규정하는 순간 필자의 ‘대학생’ ‘기자’ ‘막내딸’ ‘친구’ 등 그 외의 정체성이 가려진다. 이를 무시한 채 그저 ‘여자’라는 프레임 속에서 필자를 평가한다면 오류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혐오 단어만으로 개인을 혐오 대상으로 내몰 수 없다.

개인이 지닌 다양한 특성들은 서로 복합적으로 엮어 그를 입체적으로 만든다. 성장함에 따라 새로운 특성이 추가되기도, 기존의 특성이 변하기도, 동시에 상반되는 특성을 지니기도 한다.

또 상황이나 집단에 따라 한 특성이 더 부각되기도 더 감춰지기도 한다. 즉 개인은 절대 한 단어로 설명될 수 없다.

혐오 표현이라는 진입장벽 앞에서 포기해선 안 된다. 우리 모두 벽을 넘어서 한 인간을 알아보려 노력해야 한다.

1차원적인 시선과 판단을 지양하고 그가 얼마나 입체적인 존재인지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자. 사람만의 따뜻함으로 서로를 용서하고 포용하고 끌어안자. 벽 너머 누가 있는지 빼꼼 고개를 내밀기만 해도 벽은 허물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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