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프레스] 우린 닭도, 젖소도 아니야

“생산성에 대한 사회압박 끝나야”

기사승인 2020-11-11 09: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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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프레스] 우린 닭도, 젖소도 아니야
[쿠키뉴스 유니프레스] 장세원 서울여대학보 편집장 = “왜 나는 아무것도 안 할까?”

요즘 들어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져 가만히 누워 허공을 바라보거나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이런 나태한 생활이 계속되다 보니 앞날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이런저런 대외활동으로 바빠 보이는데 나 홀로 정체된 듯한 그 느낌이 정말 끔찍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굳이 무엇인가를 해야할까”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죄책감과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흔하다. 경쟁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우리는 좋은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매일 알을 낳는 닭이나 우유를 짜는 젖소나 다름없다. 제대로 휴식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행동한다. 경쟁에서 뒤처지는 건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생산성’에 속박돼 있다. 가시적이고 의미있다고 여겨지는 어떤 결과를 도출해내려고 골몰한다. 청년에게는 생산성의 지표로 ‘스펙’이 강요된다. 또한, 모든 것을 스펙으로 판단 받는다. 그래서 생산성 지상주의는 청년들에게 더 가혹하다. 

‘스펙’이라고 불리는 대외활동 경력은 대학생들에게 필수요소다. 이런 스펙 만능주의는 대학생을 스펙 쌓는 기계로 만들었다. 스펙 만들기를 강요당한 청년들이 사회에서 기계 취급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20대는 고용이 불안정해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으려 기계적으로 스펙 쌓기에 매진한다. 그리고 한 사람의 삶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 적힌 스펙 몇 줄로 평가된다. 이런 풍조는 기업을 넘어 사회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다. 

스펙은 한 사람의 인생을 모두 설명해줄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스펙만 가지고 사람을 평가한다. 스펙이 훌륭하지 않으면 비정상인 것처럼, 사회에서 도태된 것처럼 그려낸다. 마치 높은 생산성이 올바른 것인 마냥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 생산성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기이한 현상이다. 결국,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평가하고 평가받게 됐다. 

우리는 휴식에서조차 생산성을 따지며 ‘더 좋은’ 휴식을 찾는다. 가만히 있는 것,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 돼 버린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대외활동 십 수 개보다 더 가치 있는 휴식과 여유, 본인의 삶에 태도, 현재의 감정 등 다른 고민들은 하찮게 여겨진다. 눈에 보이지 않고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가치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세상을 경험하고 많은 고민을 해야 할 시기에 입시 공부를 하고, 스펙을 쌓으며 우리는 점점 더 생산성에 얽매이고 있다. 

사람은 매일 아침 알을 낳는 닭도, 우유를 짜내야 하는 젖소도 아니다. 무언가를 생산해야 할 의무가 없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 죄책감을 유발하는 사회가 변화해야 할 뿐이다. 생산성에 대한 사회의 압박은 끝나야 한다. 청년에게 스펙을 요구하는 사회의 요구도 없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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