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프레스] “공정은 없었다”…지나가던 청년1로부터

공정사회, 청년 분노 앞세운 정쟁 아닌 근본적 고민 필요해

기사승인 2020-12-14 08:4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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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프레스] “공정은 없었다”…지나가던 청년1로부터

[쿠키뉴스 유니프레스] 박제후 연세춘추 편집장 = 조국, 추미애, 부모찬스… ‘공정’은 어느새 청년세대를 대표하는 개념이 됐다. 청년세대가 공정을 신봉하는 이유에 대해 이런 분석이 있더라. 지금 청년세대는 기성세대와 달리 어릴 적부터 공부하고 게임하면서 자랐다고. 시험 쳐서 나오는 점수에 따라서, 게임 레벨에 따라서 차등대우 받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고. 그러니까 청년세대는 애초에 공정경쟁 속에서 자라왔고, 이를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시험과 게임은 불공정이 끼어들 수 없는, 능력과 노력의 경기장이라는 전제가 깔린 분석이다.

하지만 청년은 정말 ‘공정경쟁’ 속에 자라왔을까. 경쟁의 양상이 과거와 달라졌을 뿐, 더 공정해졌다고 단언할 수 없다. 청년세대는 분명 학연⸱지연⸱혈연으로 끌어주고 밀어주던 기성세대와는 다르다. 불공정하게 연대하던 기성세대와의 작별을 고하며, 청년세대는 한 명 한 명이 각자 경쟁하는 선수가 됐다. 그리고 청년들의 개인전은 기성세대의 단체전과 다른 방식으로 불공정하다.

‘연대의 불공정’이 물러난 자리엔 ‘능력의 불공정’이 들어섰다. 경기장 안에서의 규칙은 꼭 지킨다. 하지만 그뿐, 경기장 밖에서의 편법과 술수와 불공정은 모두 ‘능력’이라 불리며 허용됐다. S대를 가느냐, Y대를 가느냐, 대졸이 되느냐 고졸이 되느냐, 정규직이 되느냐 비정규직이 되느냐 하는 치열한 줄세우기는 이를 더 부추겼다. 여전히 교사에게 돈봉투를 건네는 학부모가 있었고, 애초에 학부모가 교사라서 특혜를 누리는 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자랐다.

‘금수저’는 능력이 됐다. 지방 작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겐 ‘강남8학군’이니 ‘대치키즈’니 하는 건 다른 별 이야기다. 게다가 ‘흙수저’ 아이들이 다니는 지방 작은 학교일수록 성적 좋은 1, 2등 학생에게만 편향된 정성을 쏟는 경향마저 있다. 생활기록부도 학업 분위기도 잘 관리해주는 사립 특목고가 있는 반면, 그 옆 공립 일반고는 아이들의 경쟁력을 나서서 챙기지 않는다. 성적이든 노력이든 배경이든 운이든 경기에서 이기는 데 도움 되면 능력임을, 능력이 부족하면 지는 게 당연함을 청년들은 온몸으로 배웠다. 그런 맥락에서 게임과 같긴 하다. 경기장 밖에서 ‘현질’로 좋은 아이템을 장착하면 승리한다. 경기장 안에서만 반칙하지 않으면 된다. 청년세대는 이 모든 능력의 불공정을 받아들인 세대다.

그러니 최근 ‘부모찬스’에 청년들이 뿔났다는 말은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능력의 불공정이 허용되는 경쟁에서 패배해왔던 다수의 청년은 이렇게 반응할 것이다. “화나고 찝찝한 건 맞지만, 뭘 새삼스럽게….” 

청년들은 능력 있는 자들이 누리는 특혜에 체념한 대신 하층부에서 서로를 견제하는 데 더욱 열중하게 됐다. 기성세대가 공정사회를 못 만드는 사이 아이들과 청년들은 공정에 더욱 민감해졌다. 경기장 안을 움직이는 방식에 말이다. 경기장 바깥에서 ‘현질’하기 어려운 선수에게 대신 경기장 안에서 혜택을 주자고 룰을 바꾸면, 그거야말로 불공정이고 역차별이라 찍어낸다. “경기장 밖에서도 치이는데, 적어도 경기가 진행되고 순위를 발표하는 동안은 능력대로 ‘공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울분이지 싶다.

그러니 공정이슈가 몇몇 공직자의 스캔들로 치부되는 지금의 상황은 아쉽다. 모 장관의 모 자녀가 모 대학 모 교수로부터 얼마나 챙김을 받았느냐, 전화해서 “아”라고 말했느냐 “어”라고 말했느냐, 간발의 차로 법을 어겼느냐 말았느냐, 하는 싸움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길과는 거리가 멀다. 놀랍게도 그 정도의 불공정은 청년세대의 일상에 이미 녹아들어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문제 제기도 이겨본 이들이나 하지, 이미 패배에 익숙한 경우엔 뭐가 불공정인지 집어내 말할 근육이 약하다. 지금 분노한 청년이라 호명되는 이들이 대체로 ‘4년제 대학생, 정규직 취준생, 강남8학군 수험생’ 등에 한정되는 경향을 보아도 그렇다. 불공정은 그곳에만 있지 않다. 전국 구석구석 갖은 층위에 포진해 있는 불공정을 해소하려면 공정을 이슈몰이용 정쟁의 도구 삼을 시간 없다.

공정사회를 만드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공정에 대한 정의는 각자 다르니까 말이다. 어디까지를 룰에 포함할 것인가. 페어플레이의 조건은 무엇인가. 그러니 기성세대의 “공정사회를 만들겠다”는 선언, 그 말이 거짓이 아니라면 정쟁을 그만두고 근본적인 토론부터 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은 불공정을 몸에 익힌 청년으로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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