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대통령 되면 징병제 폐지합니다

기사승인 2021-07-15 07: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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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대통령 되면 징병제 폐지합니다
[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여성가족부 존폐 논쟁은 정치인에게 무조건 남는 장사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한 야권 정치인들은 유명세를 얻었다. 추종자들은 물론, 비판자들의 머릿속에도 이름을 각인시켰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면 안 된다며 반박에 나선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회를 틈타 신중하고 젠더 감수성이 높은 모습을 부각했다.

갑론을박 가운데서 여성가족부는 무조건 손해를 보게된다. 여성가족부에게 존폐논쟁은 거의 난데없이 철마다 찾아오는 자연재해다. 여성가족부는 갑자기 멱살을 잡혀 올라간 무대에서 자신의 역할, 능력, 그간의 이력, 성과, 전망, 개선점을 모두 늘어놓고 검증당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필요성을 의심받는 조직이라는 프레임을 뒤집어쓴다. 정부 부처가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고 쇄신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런 작업은 대개 개선방안을 고민하는 단계로 이어진다. 유독 여성가족부에 대한 점검은 폐지론으로 결론을 정해놓고 시작된다.

폐지론에는 진정성이 없다. 여성가족부가 운영하는 사업과 정책에 대한 언급도 없이 '젠더갈등을 부추기는 부처'라거나 '역할이 없는 부처'라는 등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없는 추상적인 말만 이어진다. 존폐를 진지하게 의논하고 싶은 정치인이면, 적어도 부처에 대한 정량평가·정성평가를 시도했을 것이다. 개선방안이나 폐지 이후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인도 없다. 여성가족부 폐지론으로 대중의 이목을 끈 이들은 실제로 여성가족부가 어떻게 되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여성가족부의 기능을 이해한다면 이 부처를 없앤다는 말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지 알게된다. 그건 여성폭력을 근절하고 성범죄 가해자와 피해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소리다. 성별에 따른 차별과 불이익이 없고, 모성보호 제도 없이도 누구나 자아실현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의미다. 여성가족부가 없어도 무사한 세상은 유토피아에 가깝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여가부는 빈약한 부서를 갖고 캠페인 정도 하는 역할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의 빈약함이 여성가족부의 탓일까. 여성가족부는 해마다 가장 적은 예산을 편성받는다. 부처별 예산 규모는 사회와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안이 무엇인지 드러낸다. 성범죄 피해자의 생존권, 가족 다양성, 실질적 성평등은 한 번도 부동산과 일자리보다 앞선 순위에 올려진 적이 없다. 게다가 피해자와 소수자의 권익을 지원하는 업무와 구체적인 성과를 화려하고 떠들썩하게 홍보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만약 여성가족부가 '성매매 피해자를 어떻게 보호하고 있으며 어떤 지원을 해서 그들이 이렇게 무사히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홍보했다면 끔찍한 2차가해라며 폐지론이 나왔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캠페인이 전부라고 치부한다면 야당 대표의 주요 업무는 카메라 앞에서 따릉이 타기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현재 여가부는 사실상 젠더갈등조장부가 됐다”며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러면서 대통령 직속 젠더갈등해소위원회를 설치해 남녀평등과 화합을 도모하겠다고 말했다. 당 대표는 여성가족부의 빈약함을 지적했는데 같은 당 의원은 여성가족부가 젠더갈등을 조장할 음모를 꾸밀 저력이 있다고 경계한다. 여성가족부가 젠더 갈등을 조장했다는 주장의 객관적인 근거도 없다. 하 의원이 여성가족부가 ‘조리퐁’ 판매금지를 검토했다는 루머에 속았을리 없다. 그가 진심으로 여성가족부를 기필코 폐지한다는 정치적 소명을 가진 사람이라면 여성폭력 근절이나 가족 다양성 실현을 공약으로 내걸었을 것이다. 이런 공약이 성공적으로 실현된 사회라면 여성가족부는 자연스럽게 축소되거나 사라질 수 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제가 대통령이 되면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겠습니다”라며 “타 부처 사업과 중복되는 (여성가족부) 예산은 의무복무를 마친 청년들을 위한 한국형 G.I.Bill 도입에 쓰겠습니다”라고 밝혔다. 대통령 직속으로 양성평등위원회를 두고 각 부처가 양성평등 정책을 펴게 하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공공부문은 고위직으로 갈 수록 ‘남초’ 현상이 뚜렷해 여성대표성이 바닥이다. 공공기관 곳곳에서 성범죄가 빈번하다. 여성가족부를 해체하고 위원회와 각 부처에 양성평등 정책을 맡기는 것으로 이전보다 상황을 개선할 수 있을까. 

여성가족부 폐지와 G.I.Bill 도입을 동시에 언급하는 모습은 마른세수를 유발한다. 전형적인 젠더갈등 편승 전략이다. 특정 연령과 성별의 유권자를 감정적으로 자극해 지지를 얻으려는 시도다. G.I.Bill는 미국에서 2차대전 이후 장병들의 건강한 사회복귀를 돕고자 마련된 법률이다. 직업군인에게 퇴역 후 주택, 연금, 직업교육 등 각종 지원을 제공하는 제도다. 의무복무를 마친 청년들에게 G.I.Bill이 필요하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성범죄 피해자와 소수자를 보호하는 여성가족부 예산을 가져다 투입하겠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군대에서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의무복무를 마친 청년들이 이토록 반파상태가 되어 나오는 걸까. 2차대전과 성범죄에 준하는 충격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청년들이 방치되고 있다면 큰 문제다. 

의무복무를 앞뒀거나, 전역한 청년을 위하려는 소명을 진지하게 피력하고 싶은 정치인은 유 전 의원처럼 말하지 않는다. 군인권센터 강화와 함께 “제가 대통령이 되면 징병제를 폐지하겠습니다”를 공약으로 제시했을 것이다. 공약 실행 계획의 일환으로 여성가족부를 폐지해 예산을 확보한다고 설명하는 게 합리적인 순서다. 대뜸 ‘여성가족부를 없애고, 그 돈으로 군필자 혜택을 마련한다’고 선언한 의도가 너무 맑고 투명하게 들여다 보여서 송사리도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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