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사망사고 되풀이… “사후약방문 멈춰”

9호선 양천향교역 에스컬레이터 추락사…사람 죽자 차단봉 설치
“비장애인 기준으로 조성된 지하철 환경 장애인 생명 위협”

기사승인 2022-04-08 17: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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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사망사고 되풀이… “사후약방문 멈춰”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임형택 기자

지하철이 장애인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20여년 동안 되풀이되는 휠체어 이동약자 사망 사고를 막기 위한 변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7일 오후 1시경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승강장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50대 남성 장애인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다가 휠체어가 뒤집혀 추락해 숨졌다. 에스컬레이터의 25m 거리에는 장애인이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사고를 당한 장애인은 엘리베이터를 지나쳐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했으며, 정확한 이유는 파악되지 않았다.

사고가 난 에스컬레이터 입구에는 휠체어의 진입을 막는 안전 장치가 없었다. 이런 장치는 휠체어를 비롯해 유모차, 이동 보조 장치 등을 사용하는 이들의 안전 사고를 예방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설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권장사항이며, 법적으로 강제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시메트로9호선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9호선 모든 역사의 에스컬레이터 앞에 휠체어 진입을 막을 수 있도록 차단봉을 설치하기로 했다. 

지하철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사망 사고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2017년에는 신길역 1호선에서 5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한 장애인 고(故) 한경덕씨가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려다 계단 아래로 추락해 중상을 입었다. 한씨는 3개월가량 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다. 휠체어 리프트는 엘리베이터의 대안으로 지하철역 내 계단에 설치된 장치다.

앞서 2008년에는 1호선 화서역 1번 출구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 이모(87세)씨가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해 쇄골, 갈비뼈, 골반에 골절상을 입었다. 그는 중환자실에서 입원 치료를 받다가 1개월 뒤 사망했다. 당시 이씨의 아들은 화서역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가 구형이었기 때문에 탑승할 수 있는 플레이트 면적이 좁아 사고가 났다고 토로했다.

지난 2002년에는 5호선 발산역 1번출구에서 1급 지체장애인 윤모(62세)씨가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추락해 숨졌다. 그는 리프트를 이용해 계단을 올라 상단부에 도착했으며, 리프트 플레이트에서 내리던중 타고 있었던 전동휠체어와 함께 리프트 뒤쪽 계단으로 굴렀다. 이 사고로 윤씨는 머리를 다쳐 대학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고 이튿날 숨졌다.

2001년 1월 22일 설 연휴였던 당시 4호선 오이도역에서 노부부가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가 승강기 케이블이 끊어져 추락했다. 이 사고로 휠체어를 타고 있던 아내 박모(71세)씨가 사망하고 남편 고모(71세)씨는 중상을 입었다. 당시 노들장애인야학, 서울DPI, 서울지체장애인협회, 장애인실업자연대, 장애인편의시설촉진시민연대 5개 단체는 ‘오이도역장애인수직형리프트추락참사대책위원회’를 꾸려 사고의 진상규명과 장애인이동권확보를 위한 투쟁결의대회를 진행했다.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시작점이 됐다.

장애인 단체들은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조성된 지하철 환경이 장애인의 생명을 위협한다고 비판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리프트와 에스컬레이터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고들은 장애인에게 대중교통이 안전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흑역사들”이라며 “사람이 죽자 허겁지겁 에스컬레이터 차단봉을 설치한다고 하는데, 사후약방문이다”라고 날을 세웠다.

전장연은 “지하철에서 장애인들이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서 이미 수많은 사고들이 발생해 왔고, 그래서 서울교통공사가 관리하는 구간의 에스컬레이터는 이미 오래전 부터 휠체어 진입을 막는 차단봉이 설치됐다”며 “서울시는 서울메트로9호선운영주식회사 구간에는 (차단봉 설치가) ‘권고’라는 이유로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 것을 촉구했다. 전장연은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는 이 문제까지도 개인의 잘못으로 논하거나, 전장연이 오세훈 서울시장을 정치적으로 공격한다는 발언을 하지 말기를 요청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당대표는 전장연의 집회를 겨냥해 “문재인 정부 박원순 시정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뒤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라며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성주 기자 castleowner@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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