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핸드볼 대표팀은 23일(한국시간) 크로아티아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대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그동안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강호 스페인을 24대 23, 1점차로 꺾었다. 이번대회에서 처음 2패를 기록했을때만 해도 일찍 귀국 보따리를 쌀 것으로 예상됐었다. 그러나 대표팀은 쿠웨이트, 쿠바에 이어 스페인까지 물리치며 극적으로 B조 3위(3승2패)로 12강(2라운드)에 진출했다. 금메달도 아닌 12강 진출이 대단한 성적이냐고 할 수 있으나 남자 대표팀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잔잔한 감동이 느껴진다.
◇이런 대표팀도 다 있네=이번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간 총 16명 선수 가운데 용민호(21·한국체대) 등 8명은 국제 대회 첫 출전이다. 당장의 성적이 급한 대표팀이라면 국제 경험이 없는 선수가 절반을 차지하기 힘들다.
대한핸드볼협회 관계자는 “모든 목표를 2012년 런던올림픽에 맞춰 젊은 선수들로 과감히 바꿨다”고 했다. 윤경신 백원철 조치호 등 기존 대표팀 주축 선수들도 후배들에게 태극마크를 양보했다. 이번 대표팀 가운데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는 골키퍼 강일구 등 5명 밖에 없다.
그 결과 대표팀 평균 연령이 베이징올림픽 당시 28세에서 23세로 다섯 살 낮아졌다. 대표팀 지휘봉도 남자 청소년 대표팀 감독을 지냈던 최태섭(47) 성균관대 감독에게 맡겼다.
협회 관계자는 “어떻게 보면 이번 대회는 성인 대표팀이 아니라 주니어 대표팀이 나갔다고 볼 수 있다. 설을 맞은 국민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려온 어린 선수들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신임 핸드볼협회장이 건넨 1000만원=지난해 새 대한핸드볼협회장으로 취임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남자 대표팀이 크로아티아로 출국하기 전 1000만원을 건넸다. 크로아티아 현지에서 유럽 선수들에게 기죽지 말고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으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최 회장 부임 이후 핸드볼협회에는 작은 변화들이 있었다. 기존에는 돈이 부족해 선수·코칭스태프·협회 임직원 등 국제 대회 출전 선수단 규모가 21∼22명 정도였으나 이번에는 25명으로 늘었다. 다른 협회 관계자는 “유럽에서 하루를 더 머무르려면 숙박비, 식비 등 제반 비용이 선수 1인당 몇 십만원씩 더 든다”며 “경제 위기로 기업 대부분이 씀씀이를 줄이는 상황인데 고맙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를 준비하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 가량 강도 높은 합숙 훈련을 했다. 최 회장은 그런 선수들의 땀을 닦아주려고 이달 초 태릉선수촌을 직접 찾아 공을 던지며 어울렸다.
◇런던올림픽 남자 우생순 기대=대표팀의 이번 크로아티아 대회 목표는 12강(2라운드) 진출이었다. 2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남자 대표팀이 2라운드에 오른 것은 2001년 프랑스 대회가 마지막으로 8년만이다.
1차 목표를 달성한 한국은 이제 역대 세계선수권 최고 성적(1997년 8위) 경신이라는 새 목표를 잡았다. 3라운드격인 4강 진출은 한국이 조별리그 성적 2패를 안고 12강에 올랐기 때문에 사실상 어렵다.
그러나 남자 대표팀은 크로아티아에서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남겼다. 남자 핸드볼이 올림픽에서 거둔 가장 좋은 성적은 1988년(서울) 은메달이다. 3년 뒤 런던올림픽에서 남자 핸드볼 선수들이 굵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이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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