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로리 파인즈 골프장 남코스(파72·6721야드)에서 벌어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삼성월드챔피언십 마지막 4라운드 17번홀.
최나연과 같은 조에서 경기한 신지애(21·미래에셋)가 17번홀 티샷을 하고 난 뒤 최나연에게 다가가 귀에 대고 조용히 속삭였다. 최나연은 전날 3라운드까지 단독 선두를 달렸지만 이날은 샷이 들쑥날쑥하면서 일본의 미야자토 아이에게 1타차 선두 자리를 내준 상황이었다.
최나연에게 남은 홀은 17·18번 두 개 홀. 최나연, 미야자토와 3∼4타 차이가 벌어져 우승이 이미 힘들어진 신지애의 팔은 결국 안으로 굽었다. 미야자토가 미스 샷을 했다는 신지애의 말을 들은 최나연은 자신감을 얻었고, 결국 17번홀 파, 18번홀 버디로 꿈에 그리던 LPGA 생애 첫 승을 올렸다(최종 합계 16언더파). 미야자토는 18번홀 보기로 최나연에 막판 역전패했다(15언더파).
최나연은 우승 뒤 기자회견에서 “지애가 17번홀 티박스에서 바로 옆 18번홀 미야자토의 세컨샷이 그린 앞 워터 해저드에 빠뜨린 걸 직접 본 것 같다. 지애 얘기를 듣고 나서 끝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최나연은 “지애가 오늘 후반 내 경기가 안 풀릴 때에도 ‘언니, 왜 이렇게 긴장해?’, ‘왜 이렇게 굳었어?’라며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면서 한국 선수들끼리의 진한 우정이 우승 원동력이 됐다고 설명했다.
신지애가 최나연의 ‘도우미’ 역할을 차청한 것은 상대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일본 선수라는 점도 작용했다. 이날 대회장에는 최나연-신지애 조 바로 앞에서 경기한 미야자토를 응원하기 위해 일본인 갤러리들이 대거 몰려왔다.
최나연은 이날 한 때 미야자토에 7타까지 앞섰으나 9·10·11·15번홀 연속 보기로 힘든 경기를 치렀다. 반면 일본인들은 미야자토가 7·8·12·16번홀에서 연속 버디를 기록하며 선두로 올라서자 환호와 함성을 지르며 열성적인 응원을 보냈다.
최나연은 “솔직히 17번홀까지 내가 미야자토에 1타차로 역전당한 사실을 몰랐다”며 1년 후배 신지애에게 거듭 고맙다고 했다. 머나먼 미국에서 힘든 LPGA 투어 생활을 하고 있는 코리언 시스터즈들은 결정적인 순간 하나였다. 샌디에이고=국민일보 쿠키뉴스 이용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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