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관광이 가져오는 변화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면서, 지속가능한 여행이 선택이 아닌 실천의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부킹닷컴이 22일 발표한 ‘2025 지속가능한 여행 보고서’에 따르면 관광이 지역 사회와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고 인식한 비율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글로벌 평균은 53%, 한국은 이보다 낮은 40%로 나타났지만, 여행을 더 나은 방향으로 만들고 싶다고 밝힌 비율은 한국 관광객이 더 높았다(글로벌 69%, 한국 72%).
이번 조사는 여행지뿐 아니라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서의 관광 영향을 어떻게 인식하는지에도 주목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관광이 자신의 거주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답했지만, 한국은 41%에 그쳤다.
관광이 긍정적이면서도 불편을 수반하는 이중적 존재로 인식된다는 점도 드러났다. 한국 응답자의 47%는 현재의 관광 규모가 적정하다고 보지 않았으며, 교통 혼잡(33%), 쓰레기 문제(32%), 인파 밀집(18%), 물가 상승(16%) 등을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객 수를 제한하자는 의견은 극소수였다. 대신 교통체계 개선(36%)과 쓰레기 처리 시스템 강화(27%) 등 인프라 보완을 통한 지속가능한 해법에 더 많은 기대가 모였다.
여행자들의 가치관 변화도 뚜렷했다. ‘여행 경비가 지역 사회에 환원되기를 바란다’는 응답은 한국에서 66%, ‘현지 문화를 반영한 진정성 있는 경험을 추구한다’는 비율은 68%로 나타났다.
특히, 과거보다 여행의 환경적·사회적 영향을 ‘의식하는’ 여행자가 눈에 띄게 늘었다. 2016년에는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여행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42%에 불과했지만, 올해 기준 지속가능한 옵션을 선택하고 싶다는 응답은 글로벌 93%, 한국 97%로 급증했다. 예시로 한국 여행객 중 객실을 비울 때 에어컨이나 히터를 껐다는 비율은 2020년 57%에서 2023년 73%로 크게 늘었다.
이외에도, 과밀 관광지를 피하거나(한국 23%), 대체 여행지를 선택하고(한국 21%), 비수기 방문을 계획하는 등의 세심한 여행 습관이 점차 퍼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유행을 넘어, 지속가능한 관광이 ‘보편적 감수성’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국내 관광업계도 ‘지속가능한 관광’을 강조한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서울관광재단은 2024년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와 함께 지속가능한 관광 컨퍼런스를 개최하고, 글로벌 공정관광 공모전 등을 통해 지속가능한 관광의 모범 사례 확산에 힘쓰고 있다.
전국 25개 지자체가 참여한 ‘지속가능관광지방정부협의회’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출범하여, 지역별 여건에 맞는 지속가능한 관광정책 수립과 주민 참여 모델을 확산하고 있다. 해당 협의회는 관광객 수보다 관광 품질, 지역 기여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다니엘 드실바 부킹닷컴 지속가능성 부문 책임자는 “현지 주민과 방문객 모두가 여행지에서 만족하려면, 여행객의 선한 의도만큼이나 제도적인 관광 시스템과 인프라, 그리고 혁신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