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만 하면 빠진다?…‘공모가 신뢰’ 왜 무너졌나 [상장後②]

상장만 하면 빠진다?…‘공모가 신뢰’ 왜 무너졌나 [상장後②]

기사승인 2025-05-20 06:00:08
올해 4월까지 유가증권(코스피) 시장에 상장한 3개 종목 주가 흐름. 임지혜 기자

기업공개(IPO) 기업의 공모가 적절성 논란은 해마다 반복된다. 최근에는 대어급 IPO 기업들이 수요예측의 벽을 넘지 못해 상장을 잇달아 철회했고, 올해 증시에 입성한 일부 새내기주들은 공모가를 밑도는 주가 흐름을 보이고 있다.

공모가 산정 논란은 일부 개별 종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부터 현재까지 유가증권(코스피)·코스닥 시장에 상장(스펙 제외)한 29개 종목 가운데 12개(41.4%)는 19일 종가 기준 공모가를 하회하고 있다. 

이중 데이원컴퍼니(-51.7%), 아이지넷(-57.8%), 더즌(-68.8%) 등 3개 종목의 현재가는 공모가의 절반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공모가를 상회하고 있는 17개 종목 중에서도 3곳(17.6%)은 상승률이 10%에 미치지 못해 하락 전환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보통 상장 첫날은 공모가를 뛰어넘어 ‘치킨값’ 정도는 벌 수 있다고 하지만, 상장 첫날부터 10개 종목은 공모가를 밑돌았다. ‘IPO 대어’로 코스피에 입성한 LG CNS는 지난 2월5일 상장 첫날 1만4200원으로 마감한 이후 현재까지 공모가(1만9000원) 근처도 가지 못하고 있다. 데이원컴퍼니(-40.0%), 아이지넷(-37.8%), 와이즈넛(-36.5%), 미트박스(-25.3%), 피아이이(-12.7%), 더즌(-10.2%), 쎄크(-8.8%), 심플랫폼(-3.3%), 삼양엔씨켐(-0.2%) 등도 상장 첫날 공모가를 하회했다. 

상장 초기 강세를 유지하지 못한 종목도 부지기수다. 상장일 고점 대비 현재 주가가 하락한 종목은 전체의 62.0%(18개)에 달한다. 공모청약에 나선 개인 중 장기투자자 상당수는 손실을 입은 셈이다. 

공모가보다 낮은 주가, 상장일 이후 급락, 체감 손실이 반복되면서 시장에선 “도대체 공모가를 어떻게 정하기에 이런 일이 계속되느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보통 비판의 화살은 주관사(증권사)로 향한다. 공모가 밴드를 제시하고 통상 공모금액의 1~2% 수준의 수수료를 받는 만큼, 주관사의 책임이 크다는 논리다.

신한투자증권 IPO 절차. 신한투자증권

IPO 실패 책임?…억울하다는 증권업계

증권업계는 IPO 공모가와 관련해 주관사 혼자 결정할 수 있는게 아니라며 억울함을 토로한다. 일반적으로 공모가는 기업실사, 수요예측을 바탕으로 주관사인 증권사와 발행회사인 기업이 협의해 결정한다. 주관사는 해당 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 등 펀더멘탈을 검토하고, 동일 업종 상장 기업들(피어그룹)과 비교해 성장 가능성을 반영해 기업가치를 평가한다. 

이후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와 금융감독원의 증권신고서 심사를 거쳐 희망 공모가 밴드(하단~상단)가 결정된다. 이 밴드를 기준으로 기관투자자 대상 수요예측이 진행되며, 이들의 참여 의사를 반영해 최종 공모가가 정해진다. 이후 일반 투자자가 공모주에 참여하면서 최종 공모가가 결정된다. 공모가와 산정 결과는 단일 주체의 결정이 아닌 시장 참여자 전체의 조합 결과라는 설명이다. 

업계는 공모가 결정은 발행사(기업)·기관투자자와의 협의 결과이며, 수요예측의 흐름에 따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강조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모가가 높게 형성되는 데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며 “기관 수요가 밴드 상단 이상에 몰리면 주관사로서는 이를 반영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시장이 침체한 경우엔 밴드를 낮추자고 제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증권사로선 IPO 수수료보다 중요한 것이 다음 영업이라고 한다. 인수 수수료는 증권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점 낮아졌고, 증권사의 실적에 비해 크지도 않다. 오히려 다음 영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외부 평판이나 고객과의 관계가 중요한 만큼, 합리적인 선에서 공모가를 책정하려 한다는 주장이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수요예측에서 기관들이 해당 기업의 전망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청약을 거쳐 밴드 상단에 포지션 된 것”이라며 “주관사가 수수료를 많이 받기 위해 고평가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한 연결”이라고 했다. 이어 “특히 최근엔 금융감독원에서 투자 설명서를 굉장히 깐깐하게 검토하기 때문에 주관사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며 “또한 투자 위험을 투자설명서에 기재한다. (최근 논란이 된) 더본코리아의 경우에도 투자설명서에 향후 발생 가능한 ‘대표이사 리스크’가 기재돼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 증권가. 곽경근 대기자

공모주, 단기 수익 실현에 쏠려…주가 하락 유도 

공모 구조의 왜곡이 단지 주관사나 발행사의 책임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단기 수익 실현에 집중된 투자 행태가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고평가 흐름을 부추기고, 상장 이후 초반 주가 하락을 유도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한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공모주 투자 트렌드가 단기화됐다”며 “상장 당일 ‘따상’(공모가 2배)이 되지 않으면 실패로 여겨지는 분위기”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상장 첫날 개인 투자자 대부분이 전량 매도한다. (공모주 하면) ‘첫날 팔았죠?’라고들 말하지 않나”라며 단기 매도 관행이 고착화돼 있다고 덧붙였다.

주주행동 플랫폼 ‘액트’ 윤태준 소장 역시 “IPO가 기업 성장 자금 조달 수단이 아니라, 기존 주주나 재무적 투자자(FI)의 엑싯 수단으로 전락하면, 공모가 고평가 유인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구조는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 행태와 맞물려, 결국 장기 투자자에게 손실을 전가하는 흐름을 만들어낸다”고 지적했다.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임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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