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기준금리를 2.75%에서 2.50%로 인하했다. 가계부채와 환율 불안 우려가 남아 있지만, 성장률 둔화에 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판단이다. 금통위는 경기 하방 압력을 줄이기 위해 당분간 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갈 방침이다.
한은 금통위는 29일 기준금리를 2.75%에서 2.50%로 0.25%포인트(p) 하향 조정했다. 민간소비와 건설투자 등 내수 위축에 더해 미국발 관세 전쟁의 여파로 수출까지 둔화되자, 금리를 낮춰 경기 하방 압력을 완화하겠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회의 의결문에서 “국내경제는 소비, 건설투자 등 내수 회복지연과 수출 둔화로 1분기 역성장에 이어 4월에도 부진한 흐름을 지속했다”며 “앞으로 내수 부진은 점차 완화되겠지만 그 속도는 더딜 것으로 보이며, 수출은 미국 관세부과 영향 등으로 둔화폭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금리 인하 배경을 설명했다.
앞서 금통위는 지난해 10월 기준금리를 0.25%p 인하하며 통화정책의 방향타를 틀었다. 지난해 11월에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연속 인하를 단행해 시장의 예상을 깼다. 그러나 1월에는 환율 불안을 이유로 금리를 3.0%에서 동결했고, 2월 다시 인하에 나섰으나 지난달에는 또다시 동결하는 등 조심스러운 행보를 이어왔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0.1%에 머물며 금리 인하 기대가 컸지만, 당시 1500원대에 근접한 원·달러 환율이 발목을 잡았다.
1분기 역성장에 금리 2.5%로 낮춰…“추가 인하 여지도”
그러나 1분기 GDP가 -0.2%로 역성장을 기록하면서, 더는 금리 인하를 미룰 수 없었다는 게 시장의 지배적인 평가다. 한국은행의 지난달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 실질 국내총생산(GDP)는 전기 대비 0.2% 하락했다. 1년 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0.1% 감소했다. 건설·설비투자와 민간소비 부진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됐다. 수출 감소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내수 회복 속도마저 더디자, 금통위가 선제적으로 통화정책 완화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에서 안정세를 보인 점도 금리 인하 결정에 힘을 보탰다. 지난달 9일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발효 직후 환율은 장중 1487.6원까지 급등했지만, 이후 관세 정책 불확실성과 미국 재정적자 우려로 달러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서, 26일에는 1360.4원까지 하락했다. 약 7개월 만의 최저치다. 그간 금리 인하의 제약 요인으로 작용했던 환율 부담이 일부 해소되면서, 한은이 보다 유연한 통화정책 운용이 가능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내수 부진이 점차 완화되겠지만 그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더디고 수출 둔화폭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총생산(GDP)갭률의 마이너스 폭도 커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잠재성장률 대비 실제 성장률이 더 낮아질 수 있다는 의미다.
금리 추가 인하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 총재는 “성장세가 예상보다 크게 약화됐기 때문에 인하 폭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7%p 내린 0.8%로 전망했다. 연간 전망치를 이같이 큰 폭으로 조정한 것은 2020년 8월 이후 처음이다. 당시 한은은 성장률을 -0.2%에서 -1.3%로 1.1%p 하향 조정한 바 있다. 다만 이 총재는 구체적인 인하 횟수나 시점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금통위 전원 “인하 동의”…가계부채 부작용은 경계
이번 금리 인하에는 금통위원 7명 전원이 만장일치로 동의했다. 이 총재는 “3개월 내에 조건부 기준금리 전망에 관련해서는 저를 제외한 금통위원 6명 중에서 4명은 현재의 2.5%보다 낮은 수준으로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며 “나머지 2명은 3개월 후에도 2.5% 수준에서 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견해를 표했다”고 밝혔다.
인하 가능성을 언급한 금통위원들은 경기 부진을 이유로 꼽았다. 동결을 택한 금통위원들은 차기 정부 정책, 미국 관세 정책 변화, 가계부채 등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실제 가계부채는 다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22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746조4917억원으로, 4월 말(743조848억원)보다 3조4069억원 늘었다.
이 총재 역시 통화완화에 따른 가계부채 급증 가능성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유동성 공급이 기업 투자나 실질 경기 회복보다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금통위원들은 서울 지역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서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데 같은 생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금리 정책이 특정 지역 부동산 가격을 자극하는 쪽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문제에 대해 새 정부와 서로 공감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