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무기 수요 확대에 힘입어 K-방산 수출이 급증하며 무기 수출액이 240억 달러를 돌파했다. 한국 방산 산업은 세계 5위권에 진입했지만, 기술 수출 과정에서 방위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엄격한 규제가 오히려 ‘족쇄’로 작용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진행된 호주 차세대 호위함 사업 입찰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호주 정부가 신형 호위함 도입 사업 우선 협상 대상자로 일본을 선택했다. 일본의 첫 호위함 수출 사례다.
앞서 호주 정부는 지난해 2월 111억 호주달러(약 10조원)를 투입해 노후 호위함 11척을 신형으로 교체하기로 하고 공모를 진행했다. 한국 조선·방산업계도 선정을 위해 경쟁에 뛰어들았지만 지난해 11월 일본과 독일 두 나라로 좁혀지면서 최종 수주에 실패했다. 당시 패배 요인은 복합적이었지만, 업계는 방산기술보호법에 따른 까다로운 수출 규제 탓에 제안 준비가 지연된 점을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당시 방산 기술보호법상 까다로운 심사와 절차로 인해 핵심 기술 수출 허가가 늦어지고, 경쟁국 대비 제안 준비가 지연된 측면이 있었다”며 “국제시장에서는 시간도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다만, 기술 적합성 문제와 업체 간 협력 부족 역시 탈락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 대형 방산업체 관계자도 “해외 바이어와 신속하고 유연한 협상이 어려워지면서 경쟁국 대비 뒤처지는 상황이 반복된다”며 “이 같은 절차적·행정적 부담과 엄격한 처벌 조항은 방산 수출 일정 지연과 기회 상실로 이어져 국내 방산업체들의 국제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라고 토로했다.
방위산업기술 보호법은 국가 안보와 국가 핵심 방위 기술 유출 방지를 목적으로 2013년 제정됐다. 이 법은 △방위산업기술 지정 △해외 유출 금지 △수출 시 사전 심사 및 보호 대책 수립 의무 △위반 시 최소 1년 이상 징역과 최대 20억 원 벌금 부과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고 있다. 2024년 개정에서는 처벌 수위 강화, 방위산업기술 보호 전담 기관 지정 근거 신설, 사이버 보안·사고 대응 체계 강화 등의 조치가 추가됐다.
문제는 지정·보호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점이다. 대외무역법 등 다수 법령을 동시에 준수해야 하는 데다, 계약 종료 후 기술 반환·삭제 의무, 기관 간 협의 지연, 과중한 처벌 조항이 겹치면서 신속한 협상과 의사결정이 사실상 어렵다. 업계는 법·제도의 유연성 확보, 절차 간소화, 실무위원회 권한 확대를 시급한 과제로 꼽는다.
미국의 ITAR(국제무기거래규정)의 경우, 엄격한 기술 수출 관리 제도지만 방산기업에 명확한 절차와 기준을 사전에 안내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도록 설계돼 있다. 유럽연합도 공통의 방산기술 수출 통제 지침을 운영하면서도 회원국 간 협약을 통해 특정 기술 이전 시 절차를 단축하는 유연성을 확보해 효율성을 높이고 있다.
류연승 명지대 방산 보안학과 교수는 “기술 보호와 신속한 수출 사이, 균형 지점은 서두르지 않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단기 성과에 목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출 후발 주자임을 인지하고 지속 가능한 경쟁력 확보를 목표로 해야 한다. 국가 안보 핵심 기술은 한 번 탈취되면 회복이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