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두고 직역갈등…정부‧시민계 “‘업무범위’ 따져봐야”

유수인 / 기사승인 : 2021-05-04 04:25:02
- + 인쇄

법 필요성엔 공감 우세, '협력' 통해 환자 부담 줄여야

지난 2019년 대한간호협회가 ‘간호법’ 제정을 바라며 개최한 간호정책선포식 모습.


[쿠키뉴스] 유수인 기자 = 여‧야 3당이 각각 발의한 ‘간호사 단독법(간호법)’이 이달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놓고 직역 간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간호계는 변화하는 보건의료 환경에 맞춰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해 국민 건강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의료계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진료의 보조’라는 표현을 삭제하고 간호사가 아니면 간호업무를 할 수 없도록 명시함에 따라 보건의료체계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정부와 시민계는 해당 법안의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법 제정만으로 간호사 역할이 확대되거나 환자 보호자의 부담을 줄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보고 ‘직역 간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의사보다 3.5배 많은 간호사, ‘단독법안’ 필요성 높아져 

국회에 상정된 법안은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인 더불어민주당 김민석 의원, 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이 각각 발의한 간호법 제정안과 국민의당 최연숙 의원이 발의한 간호·조산법 제정안 등이다.

각 법안의 주요 내용을 보면 ▲간호사의 업무범위 명확화 ▲간호종합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고, 3년마다 실태조사 ▲환자의 안전을 위한 적정한 간호사 확보와 배치 ▲간호사의 근로조건, 임금 등 처우 개선에 관한 기본 지침 제정과 재원 확보방안 마련 ▲간호사의 신체․정신적 고통 등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사와 교육 의무 부과 ▲진료기록부 거짓 작성과 면허 대여 등의 결격사유가 발생할 시 자격 및 면허를 정지 또는 취소 ▲전문간호사 제도 인정 및 법제화 ▲간호·조산 전문인력 확보 등이 담겼다. 

이는 현행 의료법이 전문화되고 다양해진 간호사의 역할을 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현재 간호사를 비롯한 5대 의료인(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조산사)은 의료법 단일법안에 묶여있는데, 일본이나 필리핀, 대만 등 세계 각국에서는 의료법을 중심으로 의사법, 치과의사법, 간호사법 등을 별도로 제정하고 있다. 서 의원은 “현재는 의사가 개설한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의료법이 일원화돼 있어 간호업무에 대해서 명확히 구분돼 있지 않다. 이에 호스피스, 가정간호시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요구되는 간호사의 전문적 업무영역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과거 치료중심 의료에서 만성질환의 안정적 관리를 통한 건강 증진 및 삶의 질 향상으로 보건의료환경 패러다임의 근본가치가 변화하고 있어 의료법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대한간호협회 측은 “이들 국가들은 보다 전문화되고 다양화된 의료인을 양성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간호사의 전문성 함양을 위해 간호법이 필요한 이유”라며 “특히 의료법이 만들어진 1951년은 의사가 전체 5대 의료인의 절반을 차지하던 시절이다. 당시 간호사 숫자는 고작 1700명으로 의사의 절반도 안됐으나 지금은 간호사 수가 46만명으로 의사의 3.5배이다. 간호사 전문성을 높이는데 필요한 법안이 없다는 게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간호법 제정은 환자 안전과도 직결된다. 의료기관이나 사회복지지설에 전문성을 갖춘 간호인력이 적정하게 투입되고 이들의 처우가 개선되면 서비스 질이 향상될 것”이라며 “이들의 업무범위가 명확해지면서 안전사고 등에 대한 책임소재도 명확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의료계 ‘무면허행위’ 우려…간협 “업무관계 명확히 한 것”

반면 의료계는 간호사의 업무범위를 ‘간호사가 아니면 간호업무를 할 수 없도록’ 명시한 것을 두고 오히려 직역 간 균형이 깨져 의료시스템이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한개원의협의회는 성명을 내고 “진료보다도 폭 넓은 간호의 의미에 대한 재고 없이 간호업무를 다른 직역이 할 수 없도록 명시했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문구이다. 이는 단순히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는 의료법 내용에서 의료인을 간호사로 바꾼 것에 지나지 않는다”면서 “간호업무는 환자의 간호요구에 대한 관찰, 자료수집, 간호판단 및 요양을 위한 간호 및 교육과 상담 및 건강증진을 위한 활동으로 정의돼 있다. 이 정의대로라면 의사도 환자를 보다가 위법을 저지를 수 있으며 가정에서 환자를 돌보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전문간병인, 간호조무사 등의 직역이 있는데 모두 무면허행위로 처벌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발의된 법안에서 간호사의 업무는 현재 주 업무인 ‘진료의 보조’에서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 하에 시행하는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됐다. 현재 진료의 보조인 경우에는 처방, 시술, 검사 등의 진료행위를 간호사가 독단적으로 할 수 없는 반면 새로운 법안은 의사의 동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는 위험한 법안”이라며 “이로 인해 의료분쟁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라남도의사회도 “간호사 이외 직역의 간호업무 자체를 위법으로 규정하게 되면 의사와 간호조무사, 전문간병인, 요양보호사, 가족 등에 의한 간호업무가 위법 행위가 될 수 있다”며 “지금도 치과의사·한의사·물리치료사 등이 단독법 제정을 추진 중인데, 간호법이 선례를 남기면 모든 보건의료법상 보건의료인력(의료기사·안경사·요양보호사·응급구조사·영양사 등)이 단독법을 추진하면서 면허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의료법 체계 자체가 흔들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는 직능 간 심각한 갈등 및 직역 이기주의를 유발할 뿐만 아니라 간호사의 불법 무면허의료행위도 조장할 수 있다. 나아가 국민 건강에 큰 위해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간호협회는 “간호법 제정으로 간호사의 독자적인 진료행위가 가능할 것이라는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설명했다. 협회 측은 “국회에 발의된 간호법 제정안을 심의한 보건복지위 수석전문위원은 ‘실제적 업무영역 변경을 수반하는 법 개정으로 해석되기 어렵다’고 했다. 현재의 대법원 판례 및 유권해석의 태도를 고려할 때 ‘지도하에’와 ‘보조’라는 중복적 표현을 해소하고, 의사와 간호사 간 업무관계에서 협력적 가치보다 종속․의존적 성격을 부각시킨다는 우려를 시정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이어 “간호법은 간호사의 업무로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의 지도 또는 처방에 따라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규정했다.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환자 진료에 필요한 행위를 하는 게 아니라 의사-간호사의 업무관계 범위를 명확히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부‧시민계 ‘법 필요성’ 공감…‘협력’ 강조

정부는 간호인력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법안 마련의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 이를 통해 간호사 업무범위가 명확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해관계자간 갈등 해소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간호정책TF 관계자는 “이달 중 복지부 내 간호정책과가 신설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간호인력 관리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별도 전담 부서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라며 “간호정책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그 툴이 반드시 간호법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장선상에서 봤을 때 법 제정은 충분히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의료서비스라는 것이 의사, 간호사 등이 서로 협업해서 지원하는 것인데, 직역 간 갈등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자간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특히 간호사 업무를 ‘진료 보조’에서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바꾼 것 자체만으로 ‘업무를 명확히 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구체적인 업무범위를 따지려면 의사만이 단독적으로 할 수 있는 의료 행위가 무엇인지, 구체적 지시에 따라 위임이 가능한 행위는 무엇인지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간호법은 의사-간호사간 협력적인 관계를 규정하는데 의미가 있다. 간호사의 향상된 역할을 반영해 준 것”이라고 부연했다. 

시민계는 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간호 업무를 보호자에게 떠넘기는 문제 해결을 위한 추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준현 건강정책참여연구소장은 “급성기병상, 지역사회 등에서 발생하는 가족들의 돌봄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간호사의 업무영역 범위가 확장되는 추세이다. 그런 인력을 양성하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법률적 방법을 마련하는 것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실제 병원에서는 의사 업무를 간호사에게, 간호사는 간호조무사에게, 이는 또 가족, 보호자 등으로 위임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이 고착화돼 있는 상황에서 법령 제정만으로 이같은 문제가 해결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관장이나 석션 같은 행위도 보호자가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현재 간호대학 학생들이 전인간호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라며 “직역 간 다툼은 자기 파이의 문제 형태로 비춰질 수 있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함께 논의해 대안을 마련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suin92710@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