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안망] 부장님, 저 퇴사합니다. 귀농할 거거든요

지영의 / 기사승인 : 2021-06-12 07:3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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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입버릇처럼 ‘이생망’을 외치며 이번 생은 망했다고 자조하는 2030세대. 그러나 사람의 일생을 하루로 환산하면 30세는 고작 오전 8시30분. 점심도 먹기 전에 하루를 망하게 둘 수 없다. 이번 생이 망할 것 같은 순간 꺼내 볼 치트키를 쿠키뉴스 2030 기자들이 모아봤다.

그래픽= 이정주 디자이너

퇴사의 변 : 나는 농촌으로 떠난다


부장님, 저 퇴사합니다. 이번엔 말뿐이 아니고 진짜로요. 네? 라떼 한 잔 들고 면담 좀 하자고요? 네.뭐.알겠습니다. 퇴사하고 갈 데는 있냐고요. 저 귀농합니다. 부장님, 기껏 진지하게 말했더니 왜 웃고 그러세요. 대체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냐고요? 저번에 저 10일간 휴가 냈잖아요. 연차 왜 쓰냐고 어디 가냐고 집요하게 물어보셨죠. 시골 가서 농사지어 봤어요. 농사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거든요. 경험해보고 알았어요. 농사가 제 적성에 맞다는걸.

영농 후계자냐고요? 부모님 서울분이신데요. 농사할 줄은 아냐고요? 모르지만 이제부터 배워보려고요. 땅이나 집은 있냐고요? 아뇨 퇴사하고 귀농 준비하면서 마련할 거예요. 돈이 어디서 나냐고요? 나라에서 주는 귀농 지원금 받을 거에요. 자꾸 실패할 거라고 이야기하지 마세요. 제가 얼마나 열심히 정보를 모았는데요. 정보 구하는 거요? 어렵지 않아요. 한 번 들어 보실래요? 저는 다 계획이 있다고요.



지금부터 귀농 튜토리얼을 시작한다.

  '뒤로가기' 선택 시 → 사직서 자동 분쇄 후 부장이 끓인 라떼 원샷

'스크롤 Down' 선택 시  → 귀농 매뉴얼 습득 후 퇴사 용기 상승



사진= 영화 '리틀포레스트' 스틸컷, 도시를 떠나 시골로 돌아온 혜원(김태리)과 재하(류준열)

[Stage 1] 내가 원하는 농촌 라이프를 찾아라…귀농 vs 귀촌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든다면 먼저 파악해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내가 '귀농인'인가 '귀촌인'인가다. 귀농과 귀촌은 다르다. 내가 시골 마을에서 뭘 하면서 지내고 싶은지에 따라 구분된다.

농사를 짓고 싶은 거라면 귀농, 꼭 농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농촌생활 즐기고 싶다면 귀촌이 맞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속에는 도시를 떠나 시골로 돌아온 혜원(김태리)과 재하(류준열)의 모습이 담겨있다. 고향에서 다양한 시골 생활을 즐기는 혜원은 귀촌인, 체계적으로 농사에 전념하는 재하는 귀농인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농촌에서 할 수 있는 게 뭔지, 많고 많은 농촌 중 어딜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면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원하는 '농촌 살아보기 프로그램'이 있다. 농촌 생활을 직접 해보고, 지역에 어떻게 자리 잡아야 하는 건지 체험이 가능하다. 최대 6개월 내에서 마을 2곳을 골라 살아볼 수 있다. 숙박이 제공되며 별도로 지불해야 하는 참가비는 없다. 개인 물품 및 지내는 동안 식사만 개인적으로 해결하면 된다.

마을별로 귀농형·귀촌형을 다르게 운영한다 귀농형 체험 마을에서는 옥수수나 감자 등 작물을 수확하고 판매하는 과정을 다 체험해볼 수 있다. 농가주택을 짓는 방법이나, 농사지을 작물을 고르는 법 등 귀농에 필요한 지식을 기초부터 습득할 수 있다.

'귀농귀촌누리집' 사이트에서 체험이 가능한 마을들을 확인하고 신청할 수 있다. 참가 자격 요건은 없다. 만 18세 이상의 동(洞)지역에 사는 거주자 대상이다. 체험을 신청하면 전화나 화상 면접을 거쳐 참가 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면접에서는 왜 참여하고 싶은지, 귀농 귀촌에 대한 의지 등을 밝히면 된다.


지역별 귀농학교에서는 농기구 제작부터 농사법까지 다양한 농사 실무 역량을 키울 수 있다 /사진= 청년농부 김다정 씨 제공

[Stage 2] Level Up 구간, 농사 실무 능력 키우기

어디에 정착하고 싶은지, 어떤 방식의 농사를 하고 싶은지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았다면 농사 실무 능력을 키워줄 프로그램도 있다. 현재 귀농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 2030 청년 농부들이 시작할 때 큰 도움을 받았다고 입을 모은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바로 귀농귀촌 종합센터에서 운영하는 만 40세 미만 청년 창업농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형 교육이다. 

그중 '청년 귀농 장기교육'은 농사 경험이 부족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실습 중심으로 교육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전국에 15개 기관이 있고, 교육 기관별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실제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6개월간 특정 작물을 골라 집중적으로 교육해주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사과 농사를 기초부터 재배까지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총 교육비의 70~80%의 교육비를 정부 자금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자기부담 금액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실습 기간 중 농사 돕기 아르바이트도 연계하기 때문에 나머지 부담금과 용돈을 마련할 수 있다.

청년 귀농 장기교육 외에도 귀농귀촌 종합센터에서는 농산업 최신트렌드나 농산업 재무회계, 혁신적 창농 아이템 기획을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사진= 농지은행 홈페이지 캡쳐

[Stage 3] 농지은행에서 농사지을 땅 득템하기

농지 임대와 매매를 중개해주는 '농지은행'이라는 곳이 있다. 은퇴한 농업인이나 농업이 곤란하지만 토지를 가진 사람들의 토지를 청년농이나 창업농 등에게 연결해주는 곳이다. 농지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내가 귀농하려는 지역의 농지를 희망 가격, 농사지을 작물, 면적별로 조건을 맞춰서 구할 수 있다. 


사진= 픽사베이

[Stage 4] 미션, 빈 지갑을 채워라…본격 귀농 자금 구하기


귀농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자금이다. 정부의 귀농지원금이나 낮은 금리로 정책 대출 자금을 지원받을 수 있다. 귀농 관련 교육을 일정 시간 이수해야 지원금 심사나 대출 자격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는 점, 꼭 알아둬야 한다.

① 청년후계농 영농정착지원사업
정착할 지역을 정하고, 뚜렷한 농사 계획이 있다면 신청해볼 수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농사 계획서를 제출하고 선발되면 받을 수 있다. 만 18세 이상에서 만 40세 이하이고, 영농 독립경영 경력이 3년이하인 경우 지원 가능하다. 영농 기간에 따라 지원 금액이 달라진다. 1년 차에는 월 100만원, 2년 차에는 월 90만원, 3년 차에는 월 80만원이다.

단, 주의사항. 이 자금은 농가 경영비나 생활 자금으로 사용해야 한다. 농지나 농기계처럼 개인 자산이 될만한 물품을 사는 데는 쓸 수 없다. 바우처 카드 방식으로 지급되고, 현금인출이나 계좌이체는 불가능하다.


② 농업창업과 주택구입 지원사업
지원금만으론 부족하고, 추가적인 자금 마련이 필요하다면 귀농인을 위한 저금리 대출도 있다. 귀농인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농업 창업 및 주거공간 마련 자금을 지원해주는 사업이다. 귀농할 지역의 주소지 관할 시·군 (또는 농업기술센터)에 신청할 수 있고, 매년 1월과 6월, 연 2회 접수를 받는다. 신청할 지역의 일정을 미리 꼼꼼히 체크해두는 것이 좋다.

- 농업 창업자금 :세대당 3억원 한도 이내
- 주택 구입·신축 및 증·개축 자금 : 세대당 7500만원 한도
- 대출 금리 2% 대, 5년 거치(이자만 납부) 10년 원금균등분할 


▶ Bonus Tip) 이 두 가지 대표적인 지원자금 외에도 지역별로 귀농자를 위한 개별 지원 자금을 운영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정착 지역을 정하기 전에 가장 혜택이 많은 곳을 꼼꼼히 알아보자.




Tip & Talk 귀농 선배들의 이야기

사진= 박준호 씨 제공

*귀농 경력 4년차, 농업회사법인 ㈜담다 대표 박준호

Q. 귀농을 선택한 이유
A. "농사는 반도체 사업만큼이나 유망해"
원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 지냈어요. 그러다 다른 일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 기회에 어릴 때부터 로망이 있던 농사에 도전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농사가 반도체나 IT 업종만큼 유망한 사업이라고 생각해요. 미래에 중요한 키워드는 식량과 기후라고 생각해요. 농촌에는 땅도 크고 자원도 많은데 젋은이가 없죠. 오히려 기회일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Q. 귀농 이후 내 삶에서 달라진 점
도시에서 쉽게 누릴 수 없는 것들을 매일 누리고 살죠. 사람 눈치볼 일 없는 게 가장 좋아요. 사회 생활에서 제일 힘든 것이 관계 스트레스라고 봐요. 흔히 스트레스가 병으로 이어지죠. 그런데 농사는 인간관계에서 스트레스받는 일이 적어서 마음이 편해요. 경제적인 부분 때문에 종종 어려울 때도 있지만, 마음이 편하니 좋죠.

내가 내 일을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죠. 내가 생산하려는 시기에, 스케줄을 짜서 맞추니까요.

Q. 귀농을 준비하는 2030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나 팁이 있다면

정말 대충 오면 안 돼요. 그냥 도전해보는 마음으로 오면 ‘100이면 100’ 실패해요. 도시 생활할 때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났는데 귀농해선 부지런하게 살아야 해요. 귀농을 준비하는 2030이 제일 지양해야 할 마인드가 자급자족이라고 봐요. 나이 들어 은퇴하고 쉬러 오시는 분들은 그렇게 오셔도 돼요. 그런데 청년세대는 아니죠. 귀농해서 잡을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아요. 어르신들이 하다가 자녀들이 물려받지 않겠다고 하는 사업장도 많고, 놀고 있는 땅도 많아요.

귀농하는 게 단순하지 않고, 준비해야 할 것이 많거든요. 정말 농사를 체계적으로 짓고 수익을 창출하려면 디자인이나 회계도 챙겨야 하고요. 신중하게 결정하고, 직접 귀농 지역들 여러 곳 방문해보고, 교육해주는 기관들 많이 찾아다니세요. 전국적으로 다 지원 체계가 있고, 각 지역 기술원이나, 교육과정들을 충분히 이수해보는 걸 권해요.
 
사진= 우진우 씨 제공

* 귀농 경력 1년 차, 청년 농부 우진우

Q. 귀농을 선택한 이유
귀농 전에 은행 직원으로 4-5년 정도 근무했어요. 그런데 한정된 급여나, 정해진 업무 방식들이 답답해서 내 사업을 해보고 싶었어요. 찾다 보니 농사를 짓는 청년에게 좋은 지원 정책이 많더라고요. 
청년에게 사업하라고 2%대 저금리로 3억원까지 장기간 빌려주는 일이 흔하지 않은데 귀농용 대출은 그런 게 있고. 철저하게 사업적 관점에서, 귀농이 아주 좋은 기회라고 봤어요.


Q.귀농 이후 내 삶에서 달라진 점

A. 귀농하고 난 이후 농장을 꾸려가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고, 발전하는 게 즐거워요. 무엇보다 성향에 정말 잘 맞는 사업을 골랐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는걸 좋아하는데, 농사는 모든 선택과 책임을 다 내가 지는 방식이거든요. 부담도 있기는 하죠. 예전에는 정해진 월급 받으며 많이 써봐야 100~200만원 지출하면서 살아왔었죠. 농사 사업을 하면서 매월 1000만원 이상이 오가는 걸 보면 겁이 나기도 해요. 그런데 그만큼 제 그릇도 커진 것 같아요.

Q. 귀농을 준비하는 2030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이나 팁이 있다면

A. "계획이 없으면 '리틀포레스트'는 없다"
저는 귀농 전에 6개월간 지역 농장에서 제 성향에 맞는지 숙식하면서 테스트해 봤어요. 제가 직접 몸으로 뛰어서 검증 해본 거죠. 아 이걸 해봐도 되겠다 싶었죠.
마냥 한적하고 힐링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잘 짜인 계획이 없으면 무너져 내려요. 단순히 시골에서 텃밭 가꾸면서 사는 게 좋아서 온다고 하면, 본인이 평생 쓸 돈을 가지고 와야 해요. 귀농은 치열한 사업에 가깝고, 소기업(작은 기업) 운영으로 봐야 해요. 저는 귀농한 지 1년인데, 매일매일이 어려웠어요.

제대로 농사를 해보겠다면, 청년창업농 지원제도를 이용하라고 적극 권하고 싶어요. 여기서 중요한게 꼼꼼한 계획이에요. 15년간 사업을 어떻게 할 건지 계획서를 내야 하는데, 두루뭉술하게 적어내는 사람이 많다더라고요. 저는 매월 낼 전기세까지 설정해서 제출했어요.

[쿠키뉴스] 지영의 기자 ysyu1015@kukinews.com /기사 도움= 농림축산식품부, 귀농귀촌지원센터, 청년농부 김다정·박준호·우진우·이지연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