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한성주 / 기사승인 : 2021-06-24 03: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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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뉴스] 한성주 기자 =질병에 대한 정보를 담은 기사에서 으레 구사하는 전개방식이 있다. 우선 증상을 묘사한다. 그리고 정확한 질환명과 진단 기준을 설명한다. 얼마나 흔하게 발생하는 질환이며,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려준다. 원인 바로 뒤에는 치료법을 이야기하고, 예후에 대한 통계가 있다면 덧붙인다. 마지막에는 예방 방법과 생활습관에 대한 조언으로 기사를 마무리 짓는다.

취재를 하면서 의사에게 질문하는 순서도 기사의 전개방식 그대로다. 질병에 따라 질문이 많이 달라지기는 한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은 항상 ‘어떻게 하면 예방할 수 있나요?’ 또는 ‘예방하기 위해 지양해야 할 생활습관이 있을까요?’다.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이런 질문을 하면 의사도 곧 인터뷰가 끝날 것이라고 예상한다. 답변하는 목소리와 호흡이 편안해지고, 어깨의 긴장을 푸는 모습이 관찰된다.

이런 방식을 관성적으로 따르다가 호되게 부끄러운 경험을 했다. 난소암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려고 부인종양학을 연구한 대학병원 교수를 찾아갔다. 그 선생님은 표정 변화가 거의 없고 말투도 무미건조했다. 하지만 ‘BRCA유전자돌연변이’처럼 머릿속이 하얘지는 전문용어 대신 ‘물건이 고장나면 수리를 해야 다시 제대로 쓸 수 있잖아요. 수리하는 역할을 맡은 주체가 있을 것 아녜요. 그런데 그 주체에 이상이 생기면 어떻겠습니까. 고장난 물건을 제대로 고칠 수 없겠죠.’라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었다.

마지막 질문으로 어김없이 난소암을 예방하는 방법과 피해야 할 생활습관을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내 기사의 마지막 문단이 될 예정이었다. 선생님은 “그런 얘기 잘 안 하는데. 환자가 들으면 죄책감 느낍니다”라고 답했다. 나의 그럴싸한 기사 계획은 이날부로 박살났다. 

원인이 명확한 질병은 매우 드물다. 질병의 원인에 대한 의사의 답변에는 항상 ‘명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뭔가를 안 먹어서, 뭔가를 안 해서 병들었다고 판단할 수 있는 환자는 세상에 없다. 내가 평소처럼 ‘잠을 충분히 자고 정상체중을 유지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기사를 마무리 지었다면, 그걸 읽은 난소암 환자에게는 회한이 찾아왔을 것이다. 밤을 새워 공부하고, 건강한 식단을 챙길 틈 없이 일한 자신을 탓했을지 모른다. 

그동안 특정 질병의 예방법과 나쁜 생활습관을 질문했던 순간이 모두 흑역사가 됐다. 그 선생님은 난소암의 원인은 아직 밝혀내지 못했지만, 나쁜 기사의 원인은 명확히 찾아줬다.

castleowner@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