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인권센터, 청소노동자 인권침해 인정…‘반쪽조사’ 한계도 

이소연 / 기사승인 : 2021-09-14 16:5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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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는 지난 7월7일 오후 12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청소노동자 이모 조합원 사망 관련 서울대 오세정 총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고인의 남편이 기자회견에서 발언에 나섰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쿠키뉴스] 이소연 기자 =서울대학교 인권센터가 청소노동자 사망 관련 직장 내 ‘갑질’로 인한 인권침해를 일부 인정했다. 

14일 청소노동자 유가족에 따르면 인권센터는 지난 10일 기숙사 중간관리자 A 팀장의 인권침해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렸다. 지난 6월9일 회의 참석 시 정장 등 착용을 요구한 행위와 시험을 치르게 한 행위 등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봤다.
 
인권센터는 결정문을 통해 “피조사자(A 팀장)가 미화팀 직원들에게 회의 때 정장 등을 착용할 것을 요구하고 회의에서 미화팀 직원의 복장에 대해 언급한 사실은 인정된다”며 “행위자의 의도가 없더라도 그 행위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았거나 근무환경이 악화됐다면 인권침해로 인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이 풀어야 했던 2회차 시험지. 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제공.  
시험을 인권침해로 인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인권센터는 △신중한 검토 없이 일방적으로 시행한 점 △근무성적평정 제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결과가 근무성적평정에 반영된다고 고지한 점 △업무에 필수적이지 않은 사항까지 (문제로) 포함한 점 등이 인권침해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앞서 공개된 시험지에 따르면 관악학생생활관을 한자 또는 영어로 쓰게 하거나 건물의 준공연도를 묻는 문제가 출제됐다.

다만 인권센터는 고인의 업무 환경과 임금 삭감 위협, 근무성적평가서 작성 지시, 청소 검열, 점심 식사시간 점검 등에 대해서는 사실관계 오인 등으로 인권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인권센터는 A 팀장에게 인권감수성 향상을 위한 10시간의 교육 이수를 명령했다. 기숙사 관장에게는 A 팀장에 대한 징계절차 개시를 요청했다. 또한 청소노동자 처우에 관한 합리적 기준 마련과 징계 규정 정비를 권고했다. 오세정 서울대 총장에게는 청소노동자 실태조사와 조직문화 진단 및 제도 개선 등 재발방지 대책 마련을 권했다.    

서울대학교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이 학교의 갑질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곽경근 대기자
인권센터의 결정이 ‘반쪽조사’의 결과라는 비판도 나온다. 조사에는 A 팀장과 관악학생생활관 행정실장·인사행정부장, 청소노동자 등이 참여했다. 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민주일반노조 소속 청소노동자와 유가족은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며 인권센터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반성문 작성 요구에 대해서는 사건 관계자가 조사에 응하지 않아 결론이 나지 않은 채 조사가 종결됐다.

노조의 주장과는 다른 내용도 결정문에 담겼다. 인권센터는 6월9일 회의 시 정장 착용을 지시한 것은 인권침해라고 봤지만 같은달 16일 복장 지시에 대해서는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봤다. A 팀장이 ‘퇴근 복장’을 입고 올 것을 요구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일부 청소노동자들은 16일 회의에서도 복장 지적을 피하기 위해 집에서 준비해간 원피스를 차려 입었고 A 팀장의 복장 평가가 이어졌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갑질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던 서울대 구성원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서울대 학생처장이었던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지난 7월 자신의 SNS에 “한 분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산 사람들이 너도나도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게 역겹다. ‘악독한 특정 관리자’ 얘기는 모두 사실과 멀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일자 구 교수는 “‘피해자 코스프레 역겹다’ 부분은 정치권을 두고 한 말”이라고 해명한 후 글을 삭제했다. 구 교수는 이후 학생처장 보직을 내려놨다. 

관악학생생활관 기획시설부관장이었던 남성현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도 같은달 10일 기숙사 홈페이지에 직장 내 갑질이 사실이 아니라는 취지로 글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들이 분류작업을 하는 쓰레기 분리수거장. 앞서 정부는 청소노동자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해 100ℓ 봉투의 사용을 제한하기로 했다. 사진=이소연 기자
민주노총 민주일반노조 서울대분회 측은 “인권센터 조사에 참여하지 않아 입장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 “애시당초 기대하지 않았다. 교수 비리 사건 등에서도 인권센터는 ‘솜방망이’ 징계를 반복해왔다”고 말했다. 

유가족 B씨는 “인권센터 조사를 통해 몰랐던 사실이 드러나길 원했으나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다”며 “피해를 받은 사람은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것과 같다. A 팀장에 대해서도 경징계에 그칠 것으로 생각된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서울대 교수들의 2차 가해에 대한 내용도 인권센터에서 다뤘어야 마땅하다”고 토로했다. 

서울대는 “2차 가해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조사를 진행 중”이라며 “‘옴부즈퍼슨’에서는 제도 개선 논의를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26일 서울대 기숙사 청소노동자였던 고(故) 이모씨가 건물 내 휴게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심근경색에 의한 병사였다. 사망 이유로 과도한 업무와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지목됐다. A 팀장이 청소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시험을 신설하고, 회의시간 ‘드레스코드’를 지시·공개 지적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7월30일 청소와 관련 없는 시험과 드레스코드 지시 등을 직장 내 괴롭힘이라고 판단, 서울대에 개선을 지도했다. 오 총장은 지난달 2일 입장문을 통해 유가족과 청소노동자 등에게 사과했다.     

soyeon@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