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오션 된 골프 예능, 그런데 말입니다

이은호 / 기사승인 : 2021-09-16 07: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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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빙 ‘골신강림’ 캡처.
[쿠키뉴스] 이은호 기자 =화면 가득 펼쳐진 잔디밭이 눈이 시릴 만큼 푸르다. 길게 뻗은 인공호수, 잔디와 나무가 뿜어내는 녹음이 지상낙원을 연상시킨다. 최근 우후죽순 생겨난 골프 예능 속 세상은 기후 위기로 신음하는 현실과 동 떨어진 세계처럼 보인다. 그곳에선 골프장에 뿌린 농약에 꿀벌 100만 마리가 떼죽음 당하는 일도, 골프장에서 흘러나온 흙탕물과 골프공 때문에 바다생태계가 파괴되는 일도 없다.

현재 TV와 OTT, 유튜브에서 방영 중이거나 방영 예정인 골프 예능은 TV조선 ‘골프왕’, SBS·웨이브 ‘편먹고 공치리(072)’, 티빙 ‘골신강림’ 등 10편 이상이다. 방송인 김구라를 앞세운 유튜브 채널 ‘김구라의 뻐꾸기 골프 TV’는 지난해 초 문을 열어 1년8개월여 간 8400만 뷰가 넘는 누적 조회수를 기록했다. TV 방송 중에는 ‘골프왕’이 인기다. 지난 5월 방송을 시작해 4~5%대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 유료방송가구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골프에 입문한 젊은 세대가 늘어 청년부터 장년까지 폭 넓은 세대에 소구할 수 있는 데다, 야외에서 촬영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 감염 위험도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이 골프 예능의 강점이다. 팬데믹 장기화로 운동과 외출이 어려워진 시청자들에게 탁 트인 경관을 보여줘 대리 만족을 줄 수도 있다.

TV조선 ‘골프왕’ 캡처.
반면 일각에선 골프장을 배경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상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골프장이 오랜 시간 생태계 파괴 주범으로 지목돼 와서다. 골프장을 조성·유지하는 과정에서 산이 깎이고 오염물질이 인근으로 유입되는 등의 문제는 골프가 대중화된 2000년대 후반부터 불거졌다. 한 트위터 이용자(ys*****)는 “기후 변화, 아니 기후 대재난 시대에 지상파를 포함한 한국 채널들에서 새롭게 각광받는 예능 블루오션이 ‘골프장’ 배경이라니… 이게 참 가당한 일인가”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언론 보도를 보면, 지난 7월 부산에서 골프장에 인접한 양봉장에서 벌 100만 마리가 떼죽음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피해주민들은 골프장에서 소나무 재선충 제거 작업을 위해 뿌린 농약이 양봉장까지 날아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 달 앞선 지난 6월 강원 강릉 인근 바다에선 공군 표식이 새겨진 골프공이 무더기로 발견돼 논란이 됐다. 바다로 들어간 골프공은 코팅이 벗겨지고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해 생태계를 위협한다. 골프 예능이 외면한 어두운 이면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생태도시팀 최영 활동가는 “골프장 내 농약 사용 및 잔류 문제는 환경단체의 꾸준한 문제제기와 자체 규제 등을 통해 어느 정도 줄어들었으나, 골프장 건립을 위해 산을 깎고 나무를 뽑는 등 생태계를 파괴하는 행태는 여전히 심각하다”면서 “일상에서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기후가 변했는데, 방송가는 환경문제에 경각심이 낮은 편”이라고 꼬집었다.

시청자와 전문가는 콘텐츠 제작자에게 더 세심한 ‘기후감수성’을 요구한다. 익숙한 예능 문법을 반복하기보다는 기후 위기 시대의 질문과 답을 함께 고민하길 바란다는 의미다. 이를 의식한 듯 KBS는 유명 배우들의 탄소중립 프로젝트를 다룬 예능 프로그램 ‘오늘부터 무해하게’를 다음 달부터 방송한다. 지난 14일 종영한 JTBC ‘바라던 바다’에선 제로 웨이스트, 해양 쓰레기 정리 등을 다뤘다. 최 활동가는 “방송은 시대상을 반영하고 트렌드를 이끄는 매체”라면서 “쉽고 편하게 방송을 만들기보단, 환경 문제 등 매체가 져야 할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wild37@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