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기자에게 물었다, ‘아케인’ 어땠어? [아케인 봤더니]

이은호 / 기사승인 : 2021-11-27 06: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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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아케인’ 바이.   넷플릭스 제공.

게임, 모릅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더 모릅니다. 대신 드라마는 조금 볼 줄 압니다. 이런 대중문화 기자에게 게임 기자가 물었습니다. “‘아케인’ 어땠어?” (※ ‘아케인’: 온라인 게임 LoL을 원작으로 제작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아케인’, 어떻게 보셨나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겜알못’도 흥미롭게 볼 만한 작품입니다. 저는 LoL의 L도 모르는 사람인데요. 처음엔 ‘게임을 몰라도 재밌게 볼 수 있다’는 주변 반응에 반신반의했지만, 작품을 이해하거나 즐기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아케인’에서 가장 뛰어난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성 캐릭터의 신체를 표현한 방식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간 게임 업계는 여성 캐릭터를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걸로 압니다. 신체 굴곡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불필요하게 신체를 노출시키는 일이 반복됐죠. 그런데 ‘아케인’에선 주인공 바이를 비롯해 세비카, 멜의 어머니인 암베사 등 전투 능력이 뛰어난 여성 캐릭터들 신체가 근육질로 묘사돼 좋았습니다. 등장인물이 다양한 피부색을 가졌고, 심지어 비(非)인간종과 인간종이 하나의 공동체에 자연스럽게 녹아 든 모습을 보여주는 등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시도 또한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3화 후반부의 몇몇 장면들이 기능적으로 배치됐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주요 인물 간 갈등 관계를 위해 설정된 듯한, 다소 억지스러운 장면들이 눈에 띄었는데요. 우선 징크스의 급격한 감정 변화가 금방 와 닿지 않았고요. 실코 측과 밴더 측이 결투를 벌일 땐 ‘엥? 아직도 안 죽었다고?’와 ‘엥? 벌써 죽었다고?’를 반복하기도 했습니다. 징크스와 실코가 어떤 과정을 거쳐 돈독해졌는지도 궁금했는데, 작품에선 생략돼 아쉬웠습니다.

‘아케인’ 제이스(왼쪽)와 케이틀린.   넷플릭스 제공.

‘아케인’은 수많은 캐릭터를 다루면서도 각기 다른 캐릭터의 매력을 잘 살린 군상극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인물은 누구인가요?

케이틀린! 사사로운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향해 우직하게 달려가는 인물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심지어 그는 필트오버 유력 가문의 일원으로, 기득권으로서 안정적인 길을 보장받았는데도 자신의 신념을 위해 스스로를 헌신하잖아요. 많은 작품이 이런 인물을 능력은 없는데 열정만 앞서는 ‘민폐 캐릭터’로 묘사하곤 하는데, 부디 ‘아케인’은 그러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아케인’ OST는 미국 록 밴드 이매진 드래곤, 힙합 뮤지션 J.I.D 등 여러 아티스트가 참여해 완성됐습니다. 특히 힙합 베이스의 파워풀한 곡이 인상적인데요. 사운드 트랙은 어땠나요?

매우 스타일리시하다고 느꼈습니다. 일렉트로닉·록·힙합 등 비트가 강조된 음악이 많았는데, 박진감 넘치는 액션신이나 퇴폐적이며 향락적인 자운의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웅장하면서도 애잔한 ‘건즈 포 하이어’(Guns For Hire)와 9화 마지막 장면에 나온 ‘왓 쿠드 해브 빈’(What Could Have Been)을 좋아하는데요. 특히 스팅이 부른 ‘왓 쿠드 해브 빈’은 역설적이게도 정적이 주는 카타르시스를 체험할 수 있게 합니다.

‘아케인’ 징크스.   넷플릭스 제공.

연출 기법도 호평받고 있는데요. 7화 에코와 징크스의 만남, 환각에 빠진 징크스를 연출한 장면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케인’ 연출 방식은 어땠나요?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자본이 투입됐음을 직감할 수 있었습니다. 바이의 감정이 사건과 이야기를 통해 표현된다면, 트라우마와 환각으로 인해 광기에 휩싸인 징크스의 내면은 연출을 통해 드러나는데요. 이를 테면 짧게 과거 회상 장면을 산발적으로 등장시키고, 거칠게 선을 그어 징크스의 불안정한 심리를 표현하는 식입니다. 3화가 가진 서사적 약점에도 불구하고 시청자가 징크스에게 마음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데는 이런 감각적인 연출의 힘이 컸다고 봅니다.
 
‘아케인’은 프랑스 3D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 포티셰 프로덕션이 참여해 만든 작품으로, 화풍도 여타 애니메이션과 비교하면 다소 이질감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우리에게 익숙한 디즈니 애니메이션과는 사뭇 다른 질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3D 애니메이션으로 구현된 유화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화풍만으로도 기존 애니메이션 영화 제작사와 차별화된 존재감을 드러냈다고 생각합니다. 거친 터치감과 달리, 주름과 표정을 섬세하게 그려내 각 등장인물의 감정이 풍부하게 표현한 점도 좋았습니다.

‘아케인’ 실코.   넷플릭스 제공.

앞서 출시된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감독 던칸 존스), ‘어쌔신 크리드’(감독 저스틴 커젤), ‘몬스터 헌터’(감독 폴 앤더슨) 등 게임 원작 영화들은 실패작에 가까웠다고 평가 받았는데요. 이와 달리 ‘아케인’이 성공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드라마(TV 시리즈) 형식으로 제작해 영화보다 긴 러닝 타임을 획득한 전략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게임을 극으로 옮긴 작품은 원작이 가진 방대하고 초현실적인 세계관을 일반 관객에게 이해시켜야 하는 태생적인 과제를 안고 출발하잖아요. 영화는 2시간 안팎에 관객을 세계관에 몰입시켜야 하다 보니.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이나 ‘어쌔신 크리드’처럼 세계관이 서사를 잡아먹는 사례가 왕왕 발생한다고 보여요. 반면 ‘아케인’은 1~3화에 등장한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을 통해 게임 세계관과 캐릭터를 일반 시청자에게 자연스레 흡수시켰다고 느꼈습니다. 독특한 화풍과 스타일리시한 연출도 SF물 마니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 한몫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만약 ‘아케인’이 LoL이 아닌 새로운 IP였다면, 이 작품은 성공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LoL을 해보지 않은 시청자들에게 아케인은 어떻게 다가올까요?

‘아케인’이 한때 ‘오징어게임’을 누르고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시청 순위 정상에 올랐을 만큼 빠르게 화제를 모은 배경에는 두터운 게임 팬층의 공이 컸으리라 예상됩니다. 하지만 LoL을 떼어놓고 생각해도 ‘아케인’은 그 자체로 매력적인 콘텐츠입니다. 악랄하지만 징크스에겐 진심인 실코, 권력을 탐하지만 평화를 추구하는 멜 등 악역이나 조연도 입체적으로 표현돼 시청자가 파고들 여지가 많고요. 필트오버와 자운 사이의 대립이 대변하는 계급 갈등은 현대 사회와도 맞닿아 있다는 인상이 듭니다. LoL을 해보지 않은 시청자도 충분히 ‘과몰입’하며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은호 기자 wild37@kukinews.com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