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이슈가 20대 대통령 선거의 최대 화두로 떠올랐다. 대선 후보들도 ‘이대남(20대 남성)‧이대녀(20대 여성)’를 외치며 청년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다만 젠더 이슈가 정쟁으로 비화되면서 오히려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이대남’에 올인하고 있다. 그는 지난 7일 “여성가족부 폐지”, 단 일곱 글자를 페이스북에 올렸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양성평등가족부’로의 개편을 공약했으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의 갈등을 봉합한 뒤 입장이 바뀐 것이다.
청년 남성을 겨냥해 ‘여가부 폐지론’을 주장해왔던 이 대표는 크게 호응했다. 그는 8일 페이스북을 통해 “선대위가 발전적 해체를 하면서 지금까지 당의 철학과 맞지 않는 개별 영입인사들의 발언이 가져오던 혼란이 많이 사라진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해당 공약에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신지예 전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의 선대위 영입으로 돌아선 2030 남성 표심을 되돌리기 위한 포석이 깔렸다는 뜻이다. 이 교수와 신 전 대표는 영입 당시 국민의힘이 젠더 관련 공약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인물로 평가 받았다. 이들의 목소리가 선대위에서 사라지면서 ‘이대녀는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반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젠더이슈에 관해 원론적인 입장만을 밝혔다. 여가부 역시 폐지가 아닌 ‘성평등가족부’로 개편하겠다는 절충안을 내놨다.
이 후보는 19일 공개된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대남 뿐 아니라 이대녀에게도 쩔쩔맨다”면서 “청년세대들의 갈등 문제가 불평등과 기회 부족에서 왔다고 봤기 때문에 그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그 구조 안에서 싸우고 있는 양측에 대해 어느 한 쪽 얘기를 하더라도 오해받거나 불필요하게 갈등을 격화시킨다”고 진단했다.
또한 윤 후보가 ‘성별 갈라치기’를 통해 지지율을 끌어올렸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 후보는 22일 “청년을 남성‧여성으로 갈라 적대감을 고취시키고 갈등을 조장해 정치적 이익을 획득하는 게 전략적으론 꽤 유용한 것 같다. 상대가 20대 남성 중심으로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고 비꼬았다.
이어 “하지만 저는 갈등을 부추기는 방식의 정치는 하고 싶지 않다. 청년들이 편을 갈라 싸우지 않고도 합리적인 경쟁이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며 “정치적 손실이 조금 있더라도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 누군가에게 증오를 심으며 매표 활동에 나서진 않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민주당 선대위 내부에서는 ‘이대남’을 잡아야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민주당 서울시당이 발간한 ‘서울시 유권자 정치지형과 대선 전략 함의 보고서’는 “2030세대 이 후보 지지율 하락은 20대 남성이 주도하고 있다. 이대남이 주도하고 있지만, 이대녀의 역풍은 없다”고 분석했다. 이대녀 보다는 이대남 공략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제안이다.
전문가는 두 후보가 여가부 폐지에 관한 입장은 다르지만 젠더갈등을 정쟁으로 활용한다는 측면에서 비슷하다고 바라봤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27일 쿠키뉴스와의 통화에서 “두 후보의 젠더 이슈에 관한 해법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윤 후보는 여가부 폐지 등 젠더 갈등을 이용해서 득표하겠다는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여성이 겪는 차별‧불평등을 해소할 의지가 없다고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20대 남성의 불만이 여가부 폐지로 해결되지도 않을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 후보에 대해서도 “민주당 전직 대통령들이 여가부를 만들고 키워왔기 때문에 윤 후보처럼 폐지를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 여성위원회나 정책본부에서 젠더 정책을 나름 잘 만들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과거 전력 등으로 인해 이 후보가 성평등 지향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대남‧이대녀’라는 단어 사용 자체가 문제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다양한 계층의 청년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없다는 비판이다. 권 대표는 “청년은 이대남‧이대녀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한 개인은 성별‧연령뿐 아니라 사는 지역‧학력 등으로 다양한 요소로 구성되기 때문”이라며 “두 집단을 갈등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실제 해결해야 할 문제는 가리고 사람들의 적대‧혐오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문제적 프레임”이라고 설명했다.
김은빈 기자 eunbeen1123@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