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노동시간 유연화 공약’ 두고 우려… “주 70시간 노동 여전”

직장갑질119, “‘최악의 야근 공화국’ 될 것”

기사승인 2022-03-20 12: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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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노동시간 유연화 공약’ 두고 우려… “주 70시간 노동 여전”

“첫 직장으로 IT 개발업체에 프로그래밍 개발자로 업무를 시작해 열정적으로 일을 했습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포괄임금제라는 명목 하에 야근수당이나 주말 특근수당 등의 금전적 제공을 하나도 받지 못했습니다. 평일은 대부분 밤 10시가 넘는 시간까지 일을 했고, 퇴근하고서도 대표가 항상 전화로 업무 지시를 했습니다. 새벽 2시, 3시가 넘는 시간에도 보이스톡을 이용해 잠을 깨워 업무를 지시했고요. 그로 인해 건강이 매우 나빠졌습니다.”

“대표와 이사가 업무시간 외 야간, 주말에도 급하지 않은 용무의 업무 카톡을 보내고, 바로 확인하지 않으면 응답이 느리다고 ‘또 자냐, 또 카톡 안읽냐’라며 비난을 합니다. 폭언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정신과에서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의 진단을 받고 치료 중입니다. IT 회사 업무 특성상 갑작스런 장애, 기술 지원 등으로 야근, 주말근무 수행하였으나 주말근무 수당이나 대체휴무도 없었습니다.”

지난 1~2월 직장갑질119에 들어온 이메일 제보들이다.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거나 주 52시간을 위반해 장시간 노동을 강요했다는 제보들이 총 366건 중 108건으로 29.5%에 달했다. 직장갑질 119는 이러한 제보를 공개하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해야 할 일은 노동시간 유연화가 아니라, 법정 수당을 도둑질하고 휴식의 권리를 빼앗아가고 근로기준법을 무너뜨리고 일터를 무법천지로 만드는 포괄임금제 폐지”라고 주장했다.

앞서 윤 당선인은 지난해 7월 언론 인터뷰에서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고, 올해 2월3일 대선후보 TV토론회에서 “최저시급제나 주52시간제라고 하는데 중소기업에서 창의적으로 일해야 하는, 단순 기능직이 아닌 경우에 비현실적이고 기업 운영에 정말 지장이 많다는 말씀을 들었다. 대체로 중소기업 경영 현실을 모르고 탁상공론으로 만든 제도 때문에 힘들다고 받아들였다. 비현실적인 제도는 철폐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하는 등 노동시간 유연화에 대해 강조해왔다.

윤 당선인은 해당 발언이 논란이 되자 “주 52시간 폐지를 말한 적 없다. 노사 합의를 통해 유연하게 정하게 해달라는 중소기업계 요청을 고려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또 ‘국민의힘 공약집’에는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확대하고 근로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며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기간 1년으로 확대 △연간 단위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도입 △연장근로시간 특례업종 확대 등을 공약했다. 

대한민국 근로기준법 제50조에 따르면 1주간의 근로시간은 휴게 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다만 불가피한 경우 당사자 간 합의 시 1주간에 12시간을 한도로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 

직장갑질119는 “대한민국 직장 곳곳에서 ‘당사자와 합의’도 없이 주 60시간, 주 70시간 불법노동이 판치고 있다”며 “일을 시켰으면 당연히 줘야 할 연장, 야간, 휴일근로수당도 주지 않는다. 심지어 연차수당도 포괄임금에 포함돼 있다는 계약서를 강요해 휴식권 마저 사실상 박탈해버린다. 직장인들이 장시간 공짜 노동에 시달리다 쓰러지고 있다. 이 모든 불법의 만병통치약이 ‘포괄임금제’다. 그런데 정부는 불법을 방치하고, 포괄임금제를 규율하겠다는 약속을 팽개쳤다”고 지적했다.

이어 “윤 당선인의 공약처럼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을 1년으로 확대하면 어떻게 될까”라며 “현행법에도 1개월(신상품․신기술 연구개발 업무는 3개월)을 평균해서 주40시간을 넘지 않으면 1주 또는 1일의 근로시간 제한규정이 적용되지 않아 마음대로 일을 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이를 1년 단위로 확대하면 대한민국 일터는 최악의 야근공화국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악덕사용자들이 일을 몰아 밤샘작업을 시키고, 연말에 휴가를 주면서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있다. 윤석열의 ‘근로시간 유연성’이 실현되면 대한민국은 OECD 국가 1위 노동시간을 탈환해 세계 최장 노동시간 국가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윤석열의 ‘근로시간 유연성’이 실현되면 일터의 공정은 사라지고, 노동자들의 건강은 무너지고, 일과 가정의 양립은 파괴된다”며 “윤 당선인이 해야 할 노동개혁 1호는 ‘노동시간 유연화’가 아니라 ‘포괄임금제 폐지’다. 법정 수당을 도둑질하고 휴식의 권리를 빼앗아가고 근로기준법을 무너뜨리고 일터를 무법천지로 만드는 ‘포괄임금제’는 사라져야 한다. 포괄임금제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고, 특별근로감독을 벌여 월급도둑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우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여전히 불법 연장근로, 공짜노동 강요가 판을 치는 현실에서, 주52시간 상한제가 과도한 규제라는 주장 자체가 진짜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며 “노동시간 단축은 세계 최고 수준의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나아가 일자리 창출과도 연결되는 우리사회 가장 중요한 노동문제이자 산업정책이어야 한다. 새 정부의 노동시간 관련 정책은 주52시간 상한제 폐지나 완화가 아니라 장시간 불법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포괄임금제 폐지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상우 기자 nswreal@kukinews.com 기사모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