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도 모르는 ‘요즘 초딩’의 진짜 하루

오전 9시 전 등교, 해 떨어져야 귀가하는 아이들
학교 책가방 메고 학원 뺑뺑이 하는 초등 저학년도

기사승인 2023-05-15 06: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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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도 모르는 ‘요즘 초딩’의 진짜 하루
그래픽=이승렬 디자이너

학교 수업을 마친 오후 3시. 초등학교 6학년 이미영(13)양의 진짜 하루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오후 4시부터 2시간가량 일본어 과외 수업을 듣는다. 오후 7시 영어학원 수업에 가려면 15분 만에 저녁을 먹어야 한다. 이전 수업에서 단어시험 점수가 좋지 않아 일찍 가서 수업 전 재시험을 봐야 한다. 이양은 걸음을 서둘렀다.

안양 평촌 학원가로 향하는 이양을 따라 시내버스에 올라탔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가로 향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 서 있기도 힘들었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학생들의 커다란 가방이 서로 부딪혔다. 몸집이 작은 학생들은 버스 손잡이를 잡고 휘청거렸다. 직장인들의 아침 출근길 풍경과 비슷했다. 학원가에 도착하자 승객 대부분이 내렸다. 학생들은 각자 가야 할 학원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이양은 “학원 가는 버스는 진짜 지옥이에요”라며 헛웃음을 지었다.

이양이 영어학원 수업을 듣고 나오니 어느덧 오후 9시. 대형 어학원에서 쏟아져 나온 학생들은 보조 교사를 따라 학원 앞에 길게 서 있는 셔틀버스에 올랐다. 학원 차량과 자녀를 마중하기 위해 라이딩 온 학부모 차들로 도로가 뒤엉켰다. 오후 9시30분 집에 도착한 이양은 30분가량 쉰 다음, 이날 배운 영어와 일본어 숙제를 시작했다. 다음날 있을 수학 과외 숙제도 마무리해야 한다. 거기에 학교 숙제까지 있는 날은 잠들 시간이 더 늦어진다. 그런 날이면 “진짜 피곤하다”는 말도 나오지 않는다. 이날 이양은 자정이 다 돼서야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부모들도 모르는 ‘요즘 초딩’의 진짜 하루
10일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   사진=임지혜 기자

초등학생 대다수가 직장인보다 더 피곤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지난 11일 경기도 안양 평촌 학원가에선 학교 책가방을 멘 채 학원 뺑뺑이를 도는 초등 저학년생을 여럿 볼 수 있었다. 초등 1~2학년으로 보이는 한 학생은 혼자 예체능 학원에서 나와 익숙한 걸음으로 바로 옆 수학학원과 어학원이 있는 건물로 들어갔다. 전날 찾은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도 비슷했다. 오후 2시 하교하는 아이들의 손을 잡은 학부모들은 교문을 떠나 곧바로 학원으로 향했다. 학원가 인근 놀이터엔 학생들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학원 차량을 기다리거나 학원 수업을 기다리는 아이들이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면 학원가는 더 바쁘게 돌아간다. 학원가 인근 식당과 카페는 학생들로 가득 차 앉을 자리가 없었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거나 시간에 쫓기는 아이들은 편의점 테이블에서 컵라면으로 저녁 식사를 대신했다. 이날 이양은 마라탕 음식점 세 곳에 들어갔다가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렸다. 이양은 “오후 5~6시 학원 근처 식당에서 자리 찾기가 어려워요”라며 “그래서 보통 4시30분쯤 밥을 먹고 학원 자습실에서 공부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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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경기 안양 평촌 학원가 도로에 줄 서 있는 학원 차량들.   사진=임지혜 기자

해가 져도 수많은 학원 간판들의 화려한 빛 때문에 낮인지 밤인지 헷갈릴 정도다. 국어·수학·영어·역사·과학 등 교과 과목은 물론, 태권도·피아노·미술 등 예체능 과목 학원도 많다. 과거엔 볼 수 없던 스피치와 코딩 그리고 줄넘기·골프·테니스 등 초등학생들이 다니는 학원 종류는 다양해졌다. 학부모 임연실(38)씨는 “중학교에 가면 예체능 학원은 다니기 힘들 것 같아서 초등학생 때 다양한 수업을 시키고 있다”며 “운동을 하면서 공부 스트레스도 풀릴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요즘 광풍이라는 ‘의대반’ 간판을 내건 학원들도 눈에 띄었다. 학원에 보내듯 정기적으로 정신과 상담을 시키기도 한다. 학부모 박선영(40)씨는 “대치동 학원가에 보내는 지인들에 따르면 아이 멘탈 관리를 위해 주 1회 정기적으로 소아정신과 상담을 받는다고 한다”며 “아이가 고민이나 스트레스를 상담에서 풀길 바라는 것 같다. 일부 병원은 이런 심리를 파고들어 학원처럼 운영한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부모들도 모르는 ‘요즘 초딩’의 진짜 하루
초등 3학년 배모군의 주간 일정표. 독자 제공

초등학생이지만 공부량이 상당했다. 학원 6곳을 다닌다는 초등 3학년 배모군의 일주일 일정표를 보면 빈 곳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가득 찼다. 하교 후 학원에 갔다가 집에 오면 오후 6시다. 숙제를 마치고 오후 10시는 돼야 잘 수 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초등 2학년 박모군은 방과 후 수업 3개와 예체능 학원 3곳, 영어 과외, 수학 학원에 다닌다. 박군 부모는 “저학년이라 예체능 위주로 수업을 듣는다. 수영 수업은 대기만 1년 넘게 걸렸다”며 “영어 수업은 초등학교 때 수능 영어를 끝내고 중학교에 올라가는 분위기라 안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초등 4학년 신모양은 학원 수업 외에도 집에서 문제집 11권을 푼다고 한다.

놀거나 쉬는 시간은 짧고, 학교·학원·과외 수업 시간은 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8년 아동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하루 평균 여가 시간은 49분이다. 부모와 보내는 시간도 48분에 불과하다. 반면 하루 평균 학습 시간은 6시간49분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짜투리 시간조차 자기주도학습에 쓴다. 어린 나이부터 늘 시간 압박을 느끼는 하루하루. 그렇게 자라는 아이들 눈엔 일상과 삶이 어떤 색깔로 보일까.

임지혜 기자 jihye@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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