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특혜 시비를 넘어 DGB대구은행을 시중은행으로 승격시켰다. 금융사고 발생시 누구 책임을 물을지를 명확히 하는 ‘책무구조도’ 시행을 앞두고 금융위가 안 좋은 선례를 남겼다는 우려가 나온다.
금융위는 16일 제9차 정례회의를 열고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위한 은행업 인가를 의결했다. 새 시중은행 탄생은 32년 만이다. 이로써 대구은행은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한국씨티은행, KB국민은행, SC제일은행에 이은 7번째 시중은행으로 자리매김 했다.
대구은행은 지난해 2월 지방은행에서 시중은행으로 인가 내용을 변경하는 은행업 본인가를 금융위에 신청했다. 금융위는 금융감독원과 인가요건에 대해 면밀히 검토한 끝에, 시중은행 전환을 위한 인가요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은행간 경쟁이 촉진되고 소비자 후생 증가가 기대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령 계좌 만들어 중징계 받아…“대주주 문제 아닌 임직원 문제, 인가에 영향 없다”
하지만 대구은행에서 발생한 대규모 금융사고 때문에 승격을 두고 특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지난해 8월 금감원은 대구은행 수시검사 결과, 56개 영업점의 직원 111명이 2021년 8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고객의 정당한 실지명의 확인 등을 거치지 않고 임의로 은행 예금 연계 증권계좌를 개설한 사실을 확인했다. 몰래 계좌가 개설된 고객은 총 1547명, 계좌는 1657건에 달한다. 증권계좌 개설을 통해 받는 수수료 실적을 높이기 위해서 이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금융위는 지난달 17일 대구은행 직원의 금융실명법·은행법·금융소비자법 위반에 대해 은행예금과 연계된 증권계좌 개설 업무정지 3개월 및 과태료 20억원의 기관 제재와 직원 177명에 대해 감봉 3개월과 견책 처분 등 중징계를 내렸다.
다만 중장계에도 시중은행 인가는 차질 없이 진행한다는 입장을 밝혀 당국의 행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중징계가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늘리기가 윤 대통령의 주문이기에 금융당국이 성과 내기에 급급해서가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내부통제 중점적으로 봤다지만…“정말 엄격하게 봤는지 의문”
금융위는 금융사고의 주체가 ‘주주’가 아닌 지방은행 또는 임직원인 경우 시중은행 전환·인가심사에 결격사유로 작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금융위가 형식적으로만 유권해석을 했다”며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고 못 박았다. 경실련은 “대구은행이 형식적으로는 인가신청 시점에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했을지 몰라도 실질적으로는 다수의 영업점과 수백명의 임직원이 연루됐다는 점, 본점 마케팅추진부의 부적정한 경영방침 하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점을 비춰봤을 때 적절한 내부통제장치를 마련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금융당국도 이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이번 인가 심사과정에서 대구은행의 ‘내부통제체계 적정성’ 관련 사항을 중점에 두고 심사했다고 언급했다.
대구은행이 증권계좌 임의개설 사고를 막기 위해 맞추형 대응방안을 마련했고, 전반적인 준법감시 역량 강화를 위해 사고예방조치 세부 운영기준 마련, 상시감시 확대·체계화 등 준법감시체계를 개편했다고도 강조했다. 또 대구은행으로부터 금융사고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확약서도 제출받았다고 덧붙였다.
책무구조도 시행 앞두고…“금융권에 안 좋은 선례 남겨”
금감원 관계자는 쿠키뉴스에 16일 “앞으로 잘하겠다는 말뿐만이 아니라, 내부통제를 경영진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미에서 대구은행이 확약서를 제출했다”며 “금감원도 내부통제 개선 이행실태를 주기적으로 보고 받겠다는 부대 조건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확약서가 있다면 향후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징계 수위를 논할 때 아무래도 위원들이 좀 더 감안을 할 수는 있다”고 덧붙였다.
정호철 경실련 간사는 “오늘 금융위가 낸 자료를 보면 앞으로 사후 예방에 힘쓰겠다는 내용만 있지 금융위가 과연 인가심사 과정에서 정말 엄격하게 내부통제를 따졌는지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빠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구은행 인가가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 간사는 “책무구조도 시행을 앞두고, 은행들에 최근 빈번한 금융사고와 관련해 더 경각심을 줄 수 있는 당국의 사인이 필요한 시기였다”며 “앞으로 내부통제와 관련해 대구은행은 봐줬는데 우리는 왜 안되냐는 등 다른 금융사들의 시비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진용 기자 jjy4791@kuki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