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키 사회]
지난달 31일 오후 9시30분쯤 김모(31)씨는 서울 오류동 한 아이스크림 매장에서 녹차 아이스크림을 샀다. 집으로 돌아온 김씨는 아내와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길이 3㎝ 정도의 애벌레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다음날 집으로 찾아온 회사 관계자는 자체조사를 한 후 결과를 통보하겠다는 말을 남겼다. 업체 측은 1주일 뒤 "과학적 분석 결과 제조·유통 과정에서 애벌레가 들어갈 가능성은 없다"고 알려왔다. 업체 측은 도의적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상품권으로 보상하겠다고 말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실험 결과 영하 15도에서 20분 정도가 지나면 애벌레가 죽었기 때문에 애벌레가 살아있었다는 김씨의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없다"며 "객관적 기관에 정밀 검사를 의뢰하겠다는 뜻을 김씨에게 전달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쥐머리 새우깡, 면도날 참치캔 등으로 홍역을 치렀지만 식품 이물질 사고가 줄지 않고 있다. 식품 사고를 처벌하고 예방하는 법은 여전히 느슨하다. 이물질 사고에 대한 조사와 보상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 업체는 업체대로, 소비자는 소비자대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해 10월 씻지 않고 먹는 쌀 '무세미'를 슈퍼마켓에서 구입한 회사원 박모(40)씨는 비슷한 경험을 했다. 박씨는 쌀에서 엄지 손톱만한 쥐똥을 발견하고 업체 측에 항의했다. 당시 판매업체 관계자는 "어떤 경로로 들어가게 됐는지 파악하기 어렵다"며 10만원 상품권을 줬다. 박씨는 "먹고 떨어지라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쾌했다"고 말했다.
현행 식품위생법 46조에는 '영업자가 소비자로부터 판매제품에서 부적절한 물질이 발견됐다고 신고를 받은 경우 지체 없이 식품의약품안전청장 등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권장사항일 뿐이다.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 관련 법률인 축산물가공처리법의 경우는 아예 관련 조항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유제품 관련 업체들은 "관련 법률이 없어 업체 측도 신고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결국 업체 측은 관계기관에 신고하기보다는 피해자와 직접 합의하는 방법을 택한다.
구체적인 소비자 보상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다. 10만원짜리 상품권은 식품업체가 생각하는 적정 보상 수준인 셈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식품은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아 10만원 상품권이면 충분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연맹 도영숙 부회장은 "식품 이물질 사고에 대한 법률이 모호한 데다 식품업체의 내부 규정도 없다"며 "피해를 줄이기 위해 관계기관이 조사 및 보상 조항을 보다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조국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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