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권 과장을 김모 조정관(일명 ‘김 사장·구속), 이인철 주 선양 총영사관 영사와 함께 위조문서 입수과정에 관여한 주요 인물로 지목해왔다. 실제 권 과장은 국정원이 유우성(34)씨에 대한 내사에 착수할 당시부터 유씨 사건에 투입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수사 도중 다른 부서로 옮겼지만 중국 현지 사정에 능통해 이후에도 문서 입수 방법을 기획하며 ‘유우성 수사팀’에 도움을 줬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국정원 협조자 김모(61·구속)씨가 위조한 중국 싼허변방검사참 명의 정황설명서의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영사확인서를 받도록 한 것도 권 과장의 아이디어였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국정원은 지난달 증거조작 의혹이 터지자 권 과장을 선양 영사관에 부총영사로 발령냈다고 한다. 선양 영사관에는 이미 국정원 직원인 이 영사가 파견된 상태였던 만큼 국정원이 중국 내 두터운 인맥을 지닌 권 과장에게 ‘해결사’ 역할을 주문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검찰은 이에 따라 권 과장 조사가 윗선 수사를 향한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세 차례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며 조사에 공을 들였다. 권 과장의 자살 기도는 검찰 수사가 국정원 조직을 치고 들어오는 것에 대한 위기감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검찰이 국정원이 조직적 개입 여부를 강도 높게 추궁하자 ‘대공수사국 직원 전체를 위조범으로 몰고 있다’는 반발감이 작용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로 자신의 신분이 노출되면서 좌절감이나 불안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권 과장은 지난 21일 세 번째 소환조사에서 검찰과 신경전을 벌이고 뛰쳐나온 뒤 언론과 인터뷰에서 “온갖 모욕을 다 받고 용도 폐기됐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검찰 수사팀을 이끌고 있는 윤갑근 대검 강력부장은 24일 “그동안의 수사과정을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점검하고 향후 치밀하고 적정한 수사계획과 대책을 세우겠다”며 “수사가 대공수사요원들의 긍지와 희생을 훼손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 수사팀의 일치된 생각이자 믿음”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윤 부장은 “수사 검사들이 (이번 일로) 실망하고 좌절해서 수사에 지장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권 과장은 국정원에서 장기간 신분을 숨기고 활동하는 ‘블랙’ 요원으로 활동하는 등 조직 내에서 대공수사의 핵심 인물로 꼽힌다. 1996년 아랍계 필리핀 간첩인 ‘무하마드 깐수’(한국명 정수일) 사건, 2006년 일심회 사건, 2011년 왕재산 사건 등 굵직한 간첩 사건 수사에 참여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권 과장은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96년 보국훈장을 받았다고 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