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간첩증거 위조 때마다 내부회의…사전기획에 각본까지

국정원, 간첩증거 위조 때마다 내부회의…사전기획에 각본까지

기사승인 2014-03-31 23:33:00
[쿠키 사회] 간첩사건 증거위조는 국가정보원의 사전기획 회의에 따라 짜여진 각본대로 이뤄진 것으로 31일 검찰 수사결과 드러났다. 국정원은 피고인 유우성(34)씨의 혐의 입증을 위한 증거 서류가 필요할 때마다 수차례 내부회의를 거쳐 문서 위조를 모의하고 실행을 지시했다.

◇허룽시 공안국 명의 사실확인서 위조 전모=국정원의 증거 위조는 대공수사팀 기획을 담당했던 김모 과장(일명 ‘김 사장’)이 중국내 협조자를 통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허룽시 공안국 명의 출·입경기록을 확보하면서 시작됐다. 김 과장은 검찰 공소유지팀이 내사과정에서 확보한 출·입경기록을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지 않자, 지난해 10월 권모 과장(수사·공판지원 담당) 등과 함께 내부회의를 열었고, 이때 중국내 협조자를 통한 문서 입수를 계획했다.

그러나 검찰이 김 과장이 건넨 출·입경기록의 신빙성을 의심해 허룽시 공안국에 사실확인서를 요청하기로 하자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국정원의 증거위조는 이 때부터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김 과장 등은 검찰의 공문이 ‘대검→선양 총영사관→허룽시공안국→선양 총영사관→대검’ 형태로 정식 발송된 흔적을 만들기 위해 작전을 짰다. 김 과장은 이인철 선양 총영사관 영사에게 “검찰이 보낸 공문을 직접 허룽시 공안국에 팩스로 발송하되 허룽시 공안국 내부 협조자에게 팩스 발송시간을 알려줘 책임자가 공문을 받아보지 못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김 과장은 협조자에게 사실확인서 공문 위조를 지시한 뒤 허룽시 공안국이 발송한 것처럼 선양 영사관에 팩스를 발송하도록 했다.

김 과장은 그러나 실제 위조된 사실확인서를 국정원 수사팀 사무실에서 발송했다. 김 과장은 지난해 11월 27일 오전 10시20분쯤 국정원 사무실에서 중국 웹팩스 업체 ‘엔팩스24’에 접속해 허룽시 공안국 명의 사실확인서를 선양 영사관에 팩스로 발송했다. 김 과장은 이 영사에게 “허룽시 공안국에서 오전 10~11시쯤 사실확인서 공문이 발송될 예정이니 받는 대로 대검에 회신하라”고 공문 받는 시간까지 지정해 줬다. 김 과장은 팩스 발신 번호가 잘못 기재되자 허룽시 공안국 대표 번호로 재차 문서를 송부한 뒤 검찰 제출을 지시하기도 했다.

◇싼허변방검사참 문서 위조 직접 지시=김 과장은 지난해 12월 6일 항소심 3차 공판에서 ‘유씨가 (북한 보위부에 포섭됐다는) 2006년 5월 27일~6월 10일 두 번 입국한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싼허변방검사참 명의 정황설명서가 증거로 제출되자 다시 증거 위조를 계획했다.

김 과장은 이튿날 김씨를 불러 “유씨측 문서가 사실과 다르다는 답변서를 마련해 달라”고 지시했다. 김씨가 “싼허변방검사참에서 그런 문서를 받을 수 없으니 가짜로 만들어 오는 방법 밖에 없다”고 하자 김 과장은 “중국에서 문제가 될 리 없으니 걱정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

김 과장은 답변서에 반드시 들어가야 할 내용을 알려줬고 김씨는 이를 종이에 적어 중국으로 건너갔다. 김씨는 김 과장 지시대로 답변서를 작성했고 중국인 위조업자에게 관인 제작을 의뢰했다. 김 과장은 김씨로부터 “위조업자가 수수료로 740만원(4만위안)을 요구하는 데 가능하냐”는 문의를 받고 “그대로 진행하라”고 승낙한 것으로 조사됐다. 김 과장은 위조된 사실확인서의 증거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이 영사에게 영사확인서 작성도 지시했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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