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자산운용업계 빅2 운용사의 신경전이 다시금 이목을 끌고 있다. ETF를 넘어 신상품, 마케팅까지 두 회사의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정교해지는 모습이다.
최근 양사는 불과 하루 차이를 두고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RA) 일임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각각 공개하며 다시 한 번 맞붙었다. 퇴직연금 RA는 AI(인공지능), 빅데이터 기술 기반 알고리즘으로 투자자 성향에 따른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설계하고 그에 따라 개인형 퇴직연금(IRP) 적립금 운용을 지시하는 서비스다.
미래에셋운용은 15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국내 종합 자산운용사 ‘최초’ 타이틀로 퇴직연금 RA 서비스 ‘M-로보(M-ROBO)’를 공개했다. M-로보는 위험 성향을 세분화해 총 12개의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다.
강보미 미래에셋운용 로보어드바이저운용팀장은 간담회에서 “일부 회사는 알고리즘을 제휴사를 통해 비용을 지불하고 구입해 개발했다”며 “M-로보는 모두 자체 개발했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별점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간담회 전날 삼성운용이 퇴직연금 RA 자산관리 서비스를 공개한 상황에서 나와 더 주목을 받았다. 삼성운용은 14일 쿼터백자산운용과 퇴직연금 RA 일임형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밝혔다. ‘최초’ 타이틀을 노린 미래에셋운용 입장에선 김빠진 상황이 된 것. 다만 삼성운용은 금융당국에 퇴직연금 로보어드바이저 일임 서비스를 신청한 17개 사업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일임사는 아니지만 쿼터백운용과 공동소유한 6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삼성증권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선 삼성운용의 RA 서비스 발표 시점을 두고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온다. 통상 간담회 일정은 미리 공유되기 때문이다. 한 운용업계 관계자는 “삼성운용이 일임사가 아닌데 마치 삼성 것처럼 (홍보)해도 되는지 좀 의아했다”라며 “잘 모르는 투자자가 봤을 때 삼성운용이 개발한 것처럼 볼 수(오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미래에셋운용 간담회 전날 삼성운용 쪽 자료가 나오자 경쟁 분위기가 확연히 느껴졌다”고 말했다.
사실 삼성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의 경쟁 구도는 하루 이틀 된 얘기는 아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 삼성운용의 ETF 시장 점유율 39.1%, 미래에셋운용의 점유율은 33.8%다. 삼성운용이 앞서곤 있으나 한때 격차는 3%포인트(p)에 불과할 정도로 좁혀지기도 했다.
두 회사는 180조원 규모의 국내 ETF 시장을 두고도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월 미래에셋운용이 미국 주요 지수 ETF의 보수를 0.0068%로 인하하자, 삼성운용은 이를 0.0062%로 맞불 놓으며 대응했다. 이후 중소형 자산운용사들도 이를 따라가면서 업계 전반에 ‘치킨게임’ 논란이 일었다. 지수형 ETF 수수료 인하에 더해 레버리지·인버스 ETF 보수까지 낮추려던 움직임은 금융당국의 제동으로 일단락됐지만 경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쟁 구도를 바라보는 업계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소형사들은 대형사들의 이러한 경쟁을 따라가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최근 점유율 상위권 운용사들이 경쟁적으로 보수를 인하하고 신상품을 쏟아내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과연 투자자 이익이 우선됐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고 지적했다.
선의의 경쟁은 시장을 성장시키고, 투자자에게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최근의 경쟁 양상은 그 ‘선의’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듯하다. 투자자를 위한 경쟁이 시장 전체를 흔드는 경쟁으로 변질되는 순간, 자산운용업계는 시장의 건전성과 신뢰라는 본질적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릴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