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길을 걸을 때 발밑이 무섭다”는 말이 이제 농담처럼 들리지 않는다. 지난 3월 서울 강동구에서 지름 20m, 깊이 30m 규모의 싱크홀이 발생해 오토바이 운전자가 목숨을 잃었다.
평범한 사거리 한복판에서 벌어진 사고였다. 사람들은 더 이상 ‘지나가던 길’을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지 못한다. 같은 시기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도 크고 작은 싱크홀이 연달아 발생하면서, 땅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발밑 공포’는 극에 달하고 있다. 싱크홀은 특정 지점의 사고가 아니라, 이제 시민 일상 전반을 위협하는 불안의 상징이 됐다.
시민들의 ‘발밑 불안’은 갑작스럽게 생긴 감정이 아니다. 싱크홀에 대한 공포는 오래전부터 누적돼 왔다. 지난 2014년 한 조사에서는 서울 시민 절반 이상이 싱크홀에 대해 ‘매우 불안하다’고 응답했다. 그냥 ‘불안하다’는 의견까지 포함하면 95% 이상이 싱크홀을 일상의 재난으로 인식하고 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시민들은 여전히 “길을 걷기가 무섭다”고 말한다.
주목할 점은 ‘오인 신고’다. 도로 파손을 싱크홀로 착각해 신고하는 사례가 하루 최소 2~3건씩 이어지고 있다. 지난 16일에도 압구정역과 돌곶이역 인근에서 싱크홀이 의심된다는 신고가 접수됐지만, 확인 결과 모두 오인으로 드러났다.
불안을 키운 건 무책임한 시스템이었다. 강동구 싱크홀 사고 발생 전, 인근 주유소에서는 이미 지반 침하를 우려하는 민원이 두 차례나 접수됐다. 그러나 서울시는 현장 확인 없이 시공사와 감리단에 책임을 넘겼다. 조사는 육안으로만 이뤄졌다. 그 결과는 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였다.
관리 부재, 책임 회피, 부실 공사. 익숙하지만 무거운 단어들이 다시 입에 오르내린다. 보이지 않는 균열은 땅 아래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단어들은 시민들의 마음도, 신뢰도 천천히 무너뜨렸다.
이제는 단순히 구멍을 메우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복구’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징후를 외면하지 않는 행정, 위험 요소를 숨기지 않는 정보 공개, 빠르게 대응하는 시스템이 신뢰를 다시 세울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도시의 안전은 콘크리트로만 세워지지 않는다. 그 안에 깔리는 믿음이 없다면, 아무리 단단한 땅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