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켐비 같은 신약을 통해 치매 환자의 생존율은 높아졌지만, 평생 돌봄에 대한 정부의 중재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3년 치매역학조사 및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5년 치매 환자 수는 약 97만명(유병률 9.17%)에 이르고, 2026년에는 1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적으로 치매 유병률은 65세 이상 인구의 약 5~10%, 85세 이상에서는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현장에서 치매 환자 수는 나날이 급증하고 있다. 의료계에 따르면,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입원한 고령 환자의 절반 이상이 치매를 비롯한 인지 기능 저하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래 진료에서 치매 진단을 받으려는 환자의 발길도 끊이지 않고 있다. 외래 진료를 병행하는 요양병원인 보바스기념병원은 고령 환자의 방문이 많아 치매 환자 증가세를 더욱 실감하고 있다.
나해리 보바스기념병원 원장은 지난 8일 쿠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외래 환자 가운데 3분의 1은 인지 장애가 있거나 인지 장애를 의심해 내원한다”며 “이 중 60% 이상은 실제로 인지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나 원장은 “경증 알츠하이머병 신약이 국내에 도입된 이후 치료에 관심을 갖고 병원을 찾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투약을 기다리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경증 알츠하이머병 치료제인 ‘레카네맙’(제품명 레켐비)은 지난해 11월 국내에 출시됐다. 이 약은 일본 제약사인 에자이와 미국 제약사 바이오젠이 공동 개발한 신약으로, 뇌에 축적된 아밀로이드 베타(Aβ) 단백질 플라크를 표적으로 한다. 플라크를 제거해 신경세포 손상을 줄이고, 알츠하이머병의 진행을 늦추는 것이 목적이다. 보바스기념병원은 출시 직후 레켐비를 도입해 처방을 시작했으며, 현재(8일 기준)까지 26명의 환자에게 투약을 진행했다.
나 원장은 레카네맙의 효과보다는 신약이 등장했다는 사실에 더 큰 의미를 뒀다. 그는 “지난 1998년 이후 약 27년 동안 새로운 치료제가 시장에 출시된 적이 없다”며 “효과가 뛰어나지 않더라도 인지 저하 속도를 늦출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 만으로도 큰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가장 먼저 투약을 시작한 환자는 현재 10회차까지 시행했다. 총 18개월간 투약해야 효과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특별한 부작용 없이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다만 약물 투여 기준은 까다롭다. 자기공명영상(MRI)에서 뇌에 허혈성 병변이 많이 나타나는 경우 약물의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또 레카네맙은 드물게 뇌출혈, 뇌부종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어, 혈관 안정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항응고제나 면역억제제를 투여하는 환자 역시 제외해야 한다. 현재 급여가 적용되지 않다 보니 경제적 여건도 뒷받침돼야 한다. 이에 따라 전체 치매 환자 중 20% 이하에서 이 신약을 이용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 원장은 레카네맙의 출시를 시작으로, 향후 더 나은 치료 방안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다. 나 원장은 “도나네맙(제품명 키순라)을 비롯해 출시를 앞둔 신약들이 있다. 정맥 주사, 피하 주사, 경구제 등 제형도 다양해지고 있다”며 “실비보험이나 건강보험이 적용되면 치료 접근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했다. 또 “장기적으론 사용 시기가 확대돼 연령이나 중증도와 관계없이 예방 차원에서 쓸 수 있는 신약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아울러 그는 신약의 발전 만큼 돌봄에 대한 정책도 탄탄하게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치매 환자 1인당 연간 관리비용은 2010년 1851만원에서 2022년 2220만원으로 19.9% 증가했다. 직접 의료비가 53.5%, 간병비는 23%를 차지했다. 요양병원의 경우 요양원과 달리 노인장기요양보험이 반영되지 않아 간병비를 100% 본인 부담으로 해결해야 한다. 급성기 치매 환자들은 병원비 부담으로 인해 충분히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는 구조다.
보바스기념병원은 이러한 환자들을 위해 치매안심센터, 요양원과 함께 가정으로 간호사를 보내 건강을 확인하는 방문간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필요 시 입원이나 호스피스 케어도 가능하다. 올해 서비스를 확장할 계획을 갖고 있으며, 방문간호사를 충원하고 있다. 지난 17일부터는 병동과 치료실 등을 리뉴얼하는 대규모 리모델링을 시작했다. 병상은 기존 523병상에서 535병상으로 늘어나며, 오는 10월15일에 완공될 예정이다.
나 원장은 “치매는 20년 이상 여정을 함께해야 하는 질환이지만 지원 제도가 미흡해 환자의 가족들이 돌봄에 따른 심적·체력적·경제적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간병비 지원을 요양병원까지 확대하고, 상급종합병원(3차 병원)·요양병원·지역사회가 요양원이나 가정에 있는 환자에게 유기적으로 돌봄 역할을 제공하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나 원장은 “이제는 홈 케어 시대이다. 입원보다는 지역사회 네트워크를 늘려 환자가 집에서 스스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며 “우리 병원이 쌓아온 만성질환 및 중증 환자에 대한 돌봄 노하우를 지역사회와 공유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족들도 20년 동안 환자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보다 냉철한 마음으로 돌봄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