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 좋은 개살구보다는 ‘파과’다. 배우 이혜영의 농익은 연기가 제대로 이름값을 한다. 깐깐하게 골라봐도 ‘파과’만한 게 없다.
영화 ‘파과’(감독 민규동)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다. 동명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다.
글로도 통했던 ‘60대 여성 킬러’라는 소재는 영상에서도 먹힌다. 벌레만도 못한 악인을 ‘방역’한다는 설정도 흥미로운데, 60대가 돼서 다시 지키고 싶은 것이 생긴 킬러는 더 구미를 당긴다. 무엇보다 나이 듦에 따라 자신의 쓰임을 고민하게 된 이의 이야기를, 신체 능력이 필수인 킬러를 통해 풀어내며 개연성과 설득력을 톡톡히 챙긴다.
게으르게 만든 인상도 없다. 원작이 가진 힘에 그저 기대어갈 법하지만, 비선형적인 플롯 구조를 취하는 등 2시간짜리 영화에 적합하게 스토리를 조정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다만 이를 위해 택한 장면전환기법이 그리 세련된 느낌은 아니다. 일례로 과거 비디오 게임과 현재 격투 신을 오가며 인물들의 관계성을 설명하는, 뜬금없는 오버랩이 몰입을 해친다.

그러나 배우들의 연기가 작품의 모든 단점을 상쇄한다. 올해 63세인 이혜영은 ‘킬러’의 외면과 ‘노인’의 내적 갈등을 완벽히 구현한다. 총격전으로 시작해 난투극으로 길게 이어지는 마지막 액션 신에서는 34세인 김성철에게도 밀리지 않아 보인다. 나이와 성별과 무관하게 훌륭한 배우로 쓰여, ‘쓸모’에 대해 묻는 작품의 메시지 그 자체가 됐다는 점이 울림을 준다.
김성철은 결말에 다다르기까지 감정선을 이해하기 힘든 투우를 매력적으로 그린다. 대선배 이혜영을 앞에 두고 뒷모습만 잡히는 오버 더 숄더 쇼트에서조차 안면근육을 활용해 인물의 복잡한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특히 후반부에서는 투우에 대한 모든 궁금증이 해소되는데, 영원히 납득하기 힘들 것 같았던 캐릭터의 면면이 퍼즐처럼 짜릿하게 맞춰진다. 이 쾌감은 김성철이 전개 내내 캐릭터의 중심을 단단히 지킨 데에서 온다.
이혜영과 김성철의 시너지는 더욱 놀랍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두 인물의 인연이 어쩐지 현실 같다. 합이 착착 맞아 더 처절한 액션에 이들의 ‘연기 차력쇼’가 동시 상영되니 눈시울이 절로 뜨거워진다. 아무래도 때깔보다 맛이 중요하다면, ‘파과’를 집어 들기를 추천한다.
오는 3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22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