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기 금융권 ‘잔혹사’…관치냐, 순리냐 [바람 앞의 금융上]

정권 교체기 금융권 ‘잔혹사’…관치냐, 순리냐 [바람 앞의 금융上]

기사승인 2025-06-17 06:00:05 업데이트 2025-06-17 17:14:31
쿠키뉴스 자료사진. 

정권 교체기마다 외풍(外風)을 피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는 주요 금융지주사다. 금융권은 업종 특성상 정권의 손때를 타기 쉬운 구조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금융지주 수장들의 거취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실제로 역대 정부마다 금융권은 정권교체기 파고를 비껴가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금융권 4대 천황’이 대표적이다. 강만수 전 산은금융지주 회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어윤대 전 KB금융지주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 중 3명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고려대학교 동문으로, ‘금맥(金脈)’의 상징적 존재로 통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4대 천황의 시대는 급격히 막을 내렸다. 임기를 상당 기간 남겨두고 줄줄이 물러나거나 연임 의사를 접었다. 대신 서강대학교 출신 인물들이 요직에 대거 포진하면서 이른바 ‘서금회(서강대 금융인 모임)’의 영향력이 언급됐다.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 이덕훈 전 수출입은행장, 홍기택 전 산은 회장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태로 인한 박근혜 정부의 몰락과 함께 서금회 시대도 끝났다. 이중 이 전 행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채용 비리로 물러났고,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우리은행의 대권을 거머쥐었다.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관치금융’ 우려가 본격화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 2023년 “은행이 공공재 측면이 있기 때문에 투명한 거버넌스를 구성하는 데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게 관치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금융을 단순한 민간산업이 아닌 국민 생활과 직결된 공공영역으로 규정하고, 정부 개입의 당위성을 확보하려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이같은 기조에 금융당국도 힘을 실었다. 선봉장에 선 인물은 당시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검사 출신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이다. 그는 은행권의 영업 방식을 “지나친 이익 추구”, “약탈적 영업”이라고 지적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이 전 원장의 지휘 아래 금융감독원은 CEO들의 장기 집권 문제를 지적하며 이사회의 감시 기능 강화에 나섰다. 

실제로 윤 정부 출범 이후 신한금융, 농협금융, 우리금융, KB금융, 하나금융 등 5대 금융지주 회장이 ‘올 체인지’됐다. 3연임이 유력했던 조용병 전 신한금융 회장은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 면접 이후 돌연 용퇴했다. 손병환 전 NH농협금융 회장의 연임도 무산됐다. 특히 손 전 회장 후임으로는 윤석열 대선캠프 좌장이었던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선임되며 ‘관치 논란’이 불거졌다. 우리금융의 경우, 손태승 전 회장이 금융당국의 노골적인 압박 속에 연임 의지를 접었다. 대신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차기 회장으로 낙점됐다. 윤종규 전 KB금융 회장도 4연임 문턱에서 물러났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조합원들이 지난 2022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관치 낙하산 강행 금융위원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새 정부에 보조 맞추기 vs 관치 논란…금융 인사의 딜레마

관치금융의 뿌리는 깊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경제성장 역사와 맞닿아있다. 1961년 군사정부는 ‘금융기관에 대한 임시조치법’ 등을 통해 금리 결정, 대출 배분, 금융기관의 예산과 인사권까지 모두 행정부 소관으로 돌렸다. 정부가 경제개발 전략을 수립하면, 은행은 이를 그대로 따르는 구조였다. 

외환위기 이후 이같은 구조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2003년 카드 사태를 계기로 관치 논쟁은 급부상했다. 당시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정책국장은 금융안정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관(官)은 치(治)하기 위해 존재한다”며 관치금융 논란을 정면 반박했다. 또 “이전처럼 정부가 밀실에서 결론을 내리고 금융기관에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금융권과 협의를 거쳤다”고도 덧붙였다. 해당 논쟁은 단순한 정책 조율을 넘어 ‘정부 개입의 정당성’을 둘러싼 금융계 내부의 인식 차를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었다. 특히 5대 금융지주 체제로 과점화된 현재 구조에선, 정부의 견제가 불가피하다는 논리도 여전히 유효하게 작동한다.

박상병 인하대학교 정책대학원 교수는 “정권이 바뀌었음에도 이전 정부 기조에 맞춘 인사가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금융의 독립성을 빙자한 기득권 유지에 가깝다”며  “이런 구조는 결국 국민을 위한 금융이 아닌, ‘금융인을 위한 금융’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만 반론도 만만찮다. 공공성 강화라는 명분이 때로는 자율성 침해와 정치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되는 ‘낙하산 인사’가 금융산업의 연속성과 전문성을 해친다는 비판이 거세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정치적 입김에 따라 CEO가 교체되는 것은 명백한 관치”라며 “기존 성과를 무시한 인사 교체가 반복된다면, 금융산업의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도 “잦은 CEO 교체는 장기 전략의 일관성을 해치고, 오히려 단기 실적에만 몰두하는 경영으로 흐를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지주의 지배구조 선진화를 위한 그간의 노력 역시 무위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도 지배구조 선진화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정당한 절차에 따라 인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며 “외부의 불필요한 압력 없이 전문성과 연속성에 기반한 평가가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은희 기자
joy@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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