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산 위식도역류질환 신약이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미국, 중국, 유럽 등 해외 판로를 넓히는 동시에, 적응증을 추가하며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하는 모습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소화기계 치료제 시장에서 칼륨 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P-CAB)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의약품 시장조사 기관인 유비스트가 공개한 ‘올해 1분기 국내 소화성 궤양용제 시장 점유율’에 따르면, P-CAB 제제의 점유율은 23.1%다. 지난해 2분기에 처음으로 20%를 돌파한 이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HK이노엔의 ‘케이캡’이 처방률 62%를 차지했고, 대웅제약의 ‘펙수클루’와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자큐보’가 그 뒤를 이었다.
P-CAB 제제는 위에서 분비되는 위산을 억제하는 약물로, 기존 위산분비억제제인 프로톤펌프억제제(PPI)보다 더 빠르고 지속적인 효과를 가진 차세대 위장약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약효 발현이 느린 PPI에 불만이 있던 환자들의 사용이 늘고 있으며, 헬리코박터 제균 보조요법이나 야간 산 역류 등 치료 사각지대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시장도 몸집을 불리고 있다. 2023년 국내 P-CAB 제제의 원외 처방 시장 규모는 전년 대비 31.9% 증가한 2793억원을 기록했다. 2019년 시장 진입 이후 4년 만에 달성한 성과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장세는 뚜렷하다. 지난해 글로벌 P-CAB 시장은 약 8억8200만달러(한화 약 1조2200억원)로, 오는 2032년까지 연평균 성장률(CAGR) 7.3%를 기록하며 약 15억5000만달러(약 2조1500억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 기업들의 해외 진출은 가속화되고 있다. HK이노엔의 케이캡은 현재 53개국에 진출해 있으며, 올해는 북아프리카와 미국 시장 진입을 앞두고 있다. 최근 사우디아라비아의 선두 제약사인 타부크제약과 계약을 체결해 이집트를 포함한 북아프리카 6개국에 완제품을 수출하기로 했다. 이 계약을 통해 케이캡은 이집트, 수단, 에티오피아, 모로코, 예멘, 리비아 등에 새롭게 진출하게 된다.
HK이노엔은 케이캡의 미국 임상 3상을 성공적으로 마치며 미국 진출에도 청신호를 켰다. 현지 파트너사인 세벨라는 올해 3분기에 미란성 식도염 유지요법 임상 3상을 마무리짓고, 미란성 및 비미란성 위식도역류질환을 비롯한 신약허가 신청(NDA)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제출할 계획이다. HK이노엔 관계자는 “진출이 안 된 국가와 협력 기회를 꾸준히 모색하고, 현재 국내에서 진행 중인 적응증 임상을 이어갈 예정”이라며 “이미 진출한 국가에선 허가와 출시가 잇따르는 만큼 수출 확대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웅제약의 펙수클루는 인도를 글로벌 전략 거점으로 삼고 대형 시장 공략에 나섰다. 2023년 12월, 인도 1위 제약사 선파마와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한 이후 현재까지 19개국에 품목허가를 신청하고, 5개국과 수출 계약을 맺는 등 총 30개국에 진출했다.
글로벌 임상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최근 펙수클루는 인도네시아에서 실시한 위식도역류질환 연구자 주도 임상에서 긍정적 결과를 도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인도네시아 GERD 치료 가이드라인 개정과 펙수프라잔의 공식 승인을 추진하고 있다. 향후 인도네시아에서 기능성 소화불량 및 기타 위산 관련 질환에 대한 연구를 확대할 예정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오는 2027년까지 100개국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며 “펙수클루가 글로벌 치료 현장에서 위식도역류질환의 효과적 치료 옵션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P-CAB 제제 중 가장 최근 시장에 진입한 온코닉테라퓨틱스의 자큐보 역시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출시 8개월 만에 26개국에 진출한 자큐보는 중국, 인도, 멕시코, 중남미 등 21개국에서 기술 및 완제품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 7일에는 스웨덴 소재 제약사와 공급 계약을 맺고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등 북유럽 5개국 진출도 확정지었다.
온코닉테라퓨틱스 관계자는 “자체 개발한 자큐보정은 출시 직후 빠른 매출 성장세를 보이며 경쟁력을 입증했다”며 “신약 출시 후 3년 내 자체 판매로 매출 1000억원 달성이 가능하다는 기대를 확인한 만큼 글로벌 30조 시장을 적극 공략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P-CAB 제제의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상승 중이지만, 아직 PPI 제제를 뛰어넘진 못한 상황이다. PPI 제제의 올해 1분기 시장 점유율은 51.3%로, 여전히 시장의 절반 이상을 움켜잡고 있다. 다만 업계는 머지않아 P-CAB이 PPI를 대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PPI가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의 주된 선택지이지만 P-CAB은 빠른 약효 발현, 우수한 야간 증상 조절력, 식사와 무관한 복용 편의성 등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PPI가 장기간 쌓아온 임상 경험과 저렴한 비용 면에서 강점을 갖고 있고, 의사들이 쉽게 약을 바꾸려하지 않기 때문에 처방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P-CAB의 장기 안전성 확보와 적응증 확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