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가 친환경 정책의 일환으로 전기·수소버스 보급을 확대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충전 인프라 부족으로 마을버스 운행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서초구의 주요 회차지인 예술의전당은 마을버스 3개 노선이 이용 중이지만, 충전소 설치가 수년째 검토만 반복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을버스 업체들은 “정책은 강제하면서 지원은 제자리”라고 토로하며 “공공시설이 공공성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시는 지난 2020년부터 신규 마을버스를 전기 저상버스로 도입해왔다.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개정에 따라 2023년 1월부터는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이 의무화되면서 도입 속도도 붙었다. 서초구는 오는 2025년까지 총 51대를 전기버스로 전환할 계획이다.
그러나 충전 인프라는 차량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서초구 관내 마을버스용 전기충전소는 과천 서울대공원(8기)과 상문고 주차장(1기) 단 2곳뿐이다. 이마저도 노선과 먼 곳에 위치해 있어 기사들은 장거리 이동 후에야 충전이 가능하다. 특히 겨울철에는 배터리 소모가 커 중간 충전이 필수지만, 노선 중간에는 충전소가 없어 배차 간격이 무너지거나 운행 자체가 차질을 빚는 일이 잦다는 것이 현장 반응이다.
예술의전당을 회차지로 두고 운행하는 마을버스 노선은 서초11번, 서초17번, 서초22번이다. 해당 노선 업체들은 예술의전당 주차장에 충전소 설치를 지속적으로 요청해 왔다. 예술의전당은 마을버스 접근성이 중요한 문화시설이자, 관람객과 시민들의 대중교통 이용이 잦은 곳인 만큼 충전소 설치 입지로도 적절하다는 판단에서다.
구태회 서일교통 대표이사는 “현재 전기버스 충전시설이 매우 제한적이라 운행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공공시설의 유휴부지를 활용해 충전 인프라를 마련해달라는 것이 업체들의 요구”라고 말했다. 이어 “버스 노선이 예술의전당에서 출발하다 보니 이곳에서 충전해야 배차 간격을 유지할 수 있고, 승객 불편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종현 서애운수 대표이사도 “법적으로 경유버스 출고가 막혀 전기버스로만 운행해야 하는데, 충전 인프라는 따라주지 않는다”며 “과천까지 가서 충전하려면 운행 시간도 길어지고 민원도 급증한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차량의 배터리 용량으로는 하루 운행도 빠듯한 수준”이라며 “앞으로 전기버스가 더 늘어날 텐데 이도저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민간 협력업체가 무상으로 충전 설비를 설치하겠다고 나섰지만, 예술의전당 측이 과도한 주차비용을 요구해 무산됐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과천 서울대공원의 경우 월 15만원 수준으로 충전이 가능하지만 예술의전당 측은 이보다 2배 이상 되는 비용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술의전당과 서초구청은 모두 “충전소 설치에 반대한 적은 없다”며 협의 중이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진행 상황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서초구청은 2023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협조 공문을 보냈지만 전당 측이 동선 문제와 주차료, 내부 책임자 부재 등을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한때 충전소 위치에 대한 실무 조율까지 오갔지만 조건 협의 불발로 논의는 중단된 상태다.
예술의전당 관계자는 “설치를 반대한 게 아니라 장소와 전기설비 여건을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모든 상황이 정리된 이후 결재가 올라가는 구조로, 현실적인 제약을 고려하느라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당 측은 주차장 사용 시 요금 부과는 불가피하며, 설비 비용 또한 ‘과다 산정’이 아닌 ‘표준 계산’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서초구청은 “지속적으로 협의 중”이라는 원론적 입장만 반복할 뿐, 충전 인프라 설치를 현실화하기 위한 뚜렷한 대안이나 추진 일정은 내놓지 않고 있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시설, 주차장 설치에 대해 세부적인 사항은 아직 검토 중에 있다”고 말했다.
결국 구청과 전당 모두 의사 결정 책임을 미루면서 정책 추진 속도와 현장 수요 간 괴리만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 마을버스 업체 관계자는 “정책은 강제하면서 충전소 설치는 민간에 맡기면 누가 감당하느냐”며 “이 문제는 시민의 기본 이동권과 직결되는 만큼 공공기관이 먼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