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
1. 대동강구역, 변화의 심장에서 미래를 보다.
21세기 한반도의 미래를 가늠하는 데 있어, 평양시 대동강구역처럼 역동적이고 상징적인 공간은 드물다. 대동강을 따라 펼쳐진 이 구역은 북한의 전통과 현대, 폐쇄와 개방, 계획경제와 시장경제가 교차하는 거대한 실험실이자, 변화의 파도가 가장 먼저 닿는 최전선이다.
이곳에는 북한 최고 수준의 대학과 외교촌, 현대식 의료 인프라, 대형 상업시설이 어우러져 있다. 대동강구역의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북한을 동시에 목격하는 일이다. 공식 경제와 비공식 경제가 겹겹이 중첩된 이곳의 일상은, 북한 주민들의 삶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어떤 미래를 예고하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늘의 대동강구역은 단순한 행정구역이 아니라, 북한 사회의 진화와 시장경제의 확산,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 역동성이 응축된 ‘북한 변화의 바로미터’다. 이 글은 대동강구역을 통해 북한 시장화의 실상과 그 이면에 숨겨진 사회적 에너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며, 한반도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한다.
대동강구역의 오늘을 읽는 일은 곧 내일의 북한, 나아가 동북아의 미래를 전망하는 일이다. 변화의 심장에서, 우리는 새로운 북한의 가능성과 도전을 함께 목격하게 될 것이다.
2. 평양시 대동강구역의 주요시설과 랜드마크
대동강구역은 평양시 중심부에 위치하며, 대동강을 따라 자연스럽게 형성된 지역이다. 경계 지역으로는 북쪽으로는 대성구역, 남쪽으로는 동대원구역, 동쪽으로는 사동구역, 서쪽으로는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중구역 및 모란봉구역과 접하고 있다.
대동강구역은 평양시에서 교육과 외교 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평양기계대학 등 주요 교육기관이 밀집해 있으며 문수동과 청류동에는 영국, 독일 등 여러 나라의 대사관 촌이 위치해 있다. 또한 김만유병원과 고려의학종합병원 같은 의료시설이 현대적 서비스를 제공하며, 대성백화점과 외화상점들이 시장경제 활동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동강구역의 주민들의 계층별 상황을 살펴보면 중‧상류층이 30%, 하류층이 70%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의 서민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단층집에서 한 달에 10만원(한국 돈)정도의 수입으로 릉라시장, 문수시장과 관련된 일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대학거리: 대동강구역은 평양의 교육 중심지로 대학거리에는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 평양음악무용대학, 평양기계대학, 평양건설건재대학, 인민경제대학 등이 위치해 있다. 북한 내 음악 및 예술 분야의 최고 교육기관, 기계 공학 및 기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 건축 및 건설 관련 기술자 양성기관, 무역일군 승진을 위한 전문적인 교육기관이 즐비하다.
▶대사관 촌: 대사관은 대동강구역 문수동과 청류동에 밀집되어 있는데 영국, 인도, UN기구, 독일, 불가리아, 체코, 헝가리, 스페인, 멕시코, 쿠바, 스웨덴, 스위스, 베트남,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이 문수동에 대사관이 모여 있다. 청류동은 이집트, 이란, 루마니아 등의 대사관이 위치해 있다. 이러한 각 국 대사관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의료시설, 상업시설, 문화시설이 집중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민경제대학: 인민경제대학은 평양시 대동강구역에 위치한 경제학 및 관리학 전문대학으로, 주로 무역회사 간부들이 승진을 위해 다니며 학생 수는 약 300명이다. 졸업생은 대학 졸업자는 2년, 고등학교 졸업자는 4년 과정을 이수해야 하며, 학생 대부분은 30대 중반의 남성으로 남녀 비율은 95% 대 5%이고 전원이 기숙사 생활을 한다. 이 대학은 무역일군들의 전문 교육과 비즈니스 네트워크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평양종합병원: 2020년 착공된 대형 종합병원으로, 대동강구역 옥류 3동에 위치하고 있다. 외관 공사는 완료됐으나 의료기기와 기자재 조달 문제로 2025년 현재 개원이 미뤄지고 있다. 그 외에도 평양산원은 1980년 개원, 아시아 최대 규모의 산부인과 전문병원으로 2,030개 병실을 갖추고 있다. 평양친선병원은 대사관 직원, 외국인 및 고위층을 대상으로 하는 의료 서비스 병원이다. 적십자병원은 평양시에서 암 수술 및 심장 수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병원이다.
▶김만유병원: 평양시 대동강구역에 위치한 종합병원으로 재일 교포 의사 김만유가 제공한 22억 엔의 자금과 일본 니시아라이병원의 기술 협력으로 1986년에 설립되었다. 현대적 의료 시설을 갖춘 북한의 대표적인 병원으로, 질병 예방과 치료를 통해 건강 증진에 이바지하고 있다. 병상수는 약 1,300개이며, 동위원소 치료병동, 동물실험실, 최신식 수술실 등이 갖춰져 있다. 심장외과, 물질대사과 등 다양한 전문과와 연구 중심이 설치되어 임상 연구 및 의학 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격진료를 도입하여 전국적으로 환자 진단 및 치료를 수행하며, 의학대학 학생들의 임상 실습 및 현직 의사 재교육 기지로도 활용된다.
▶현대식 전문병원: 류경구강병원은 종합 치과병원으로 구강종합치료기, X-ray, 초음파치석제거기 등 현대적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옥류아동병원은(2013) 6층 규모의 어린이 종합병원으로서 교육시설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류경안과종합병원은(2016)은 녹내장과, 백내장과 등 다양한 안과 전문 진료실과 검사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진료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같이 대동강구역 문수지구는 평양의 대표적 의료시설 밀집 지역으로, 종합병원과 전문병원이 집적되어 있어 북한 의료 인프라의 핵심지로 꼽힌다.
▶고려의학종합병원: 대동강구역에 위치한 이 병원은 고려의학의 연구 분야 6개의 전문연구소와 50여 개의 전문과에서 다양한 고려의학(한의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알약, 가루약, 물약, 주사약 등 200여 종의 약품을 자체 생산하며, 비만, 동맥경화, 위암, 간질 등 다양한 질환 치료제 개발이 대표적이다. 약초와 생약 성분의 효능 분석, 새로운 치료법 개발, 임상 실험을 통한 효과 검증, 전통 의서(의방유취, 향약집성방) 내용의 과학적 규명 등도 중요한 연구 주제이다. 최근에는 식물 유전자 연구와 천연물의약품 개발, 그리고 양의학(현대의학)과의 융합 연구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상업시설: 대동강구역은 평양에서 외국인과 시민 모두를 위한 다양한 상업시설이 밀집한 중심 상권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대성백화점이 대표적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수영장, 목욕탕, 식당, 오락실 등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한, 대동강외화상점, 붉은별상점, 릉라상점, 평양상점 등 달러 등 외화를 사용하는 중상류층과 외국인을 위한 외화상점이 여러 개 있다. 릉라시장과 문수시장과 같은 대형시장과 약 50여 개의 골목시장, 150개의 상점, 600여개의 매점에서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처럼 대동강구역은 다양한 계층의 소비자들을 위한 폭넓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평양 내 상업과 유통의 중심지이다.
▶해당화관: 대해당화관은 평양시 동대원구역 대동강변에 위치한 6층짜리 종합봉사시설(서비스업)로, 2013년 5월에 개관했다. 이 건물은 현대적인 외관과 고급 인테리어를 갖추고 있으며, 평양의 대표적 주민편의시설로 선전되었다. 목욕탕, 한증방, 물놀이장, 고급 식당, 상점, 요리 실습실, 강의실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춘 다기능 복합시설이다. 식당에서는 한식과 세계 각국 요리를 포함해 180여 가지 이상의 메뉴를 제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열수를 이용한 첨단 냉난방 시스템 등 현대적 건축기술이 적용되었다. 1층과 2층은 식당, 5층은 요리 강좌와 실습실, 6층은 커피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내수공업지역: 대동강구역은 평양시 중심에 위치한 행정구역으로, 평양의 신시가지 역할을 하며 다양한 산업시설과 주거지가 혼재된 지역이다. 탑제거리 단층집 일대는 평양시 가까운 광산에서 채굴된 석탄을 연료로 활용해 빵, 떡, 음식 등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가내수공업(소규모 수작업 생산)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식품들은 평양시 내 각종 시장과 매장에 도매로 공급되는데, 이 곳을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는 ‘떡촌’, ‘빵촌’, ‘음식촌’ 등으로 불린다.
▶대성백화점: 대성백화점은 평양시 대동강구역 산원거리에 위치한 북한의 대표적인 상업 공간으로 2019년 리모델링과 증축으로 건물 규모가 두 배로 커졌다. 판매 상품도 1만 1,700여 가지로 늘어났다. 지하 1층부터 지상 5층까지 이어진 이 백화점에는 수영장, 목욕탕, 식사 공간, 오락실 등 다양한 편의시설이 있어 쇼핑과 여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힐링 센터이다. 주로 평양 특권층과 고위 간부, 신흥 부유층 ‘돈주’, 외교관 가족들이 찾는 이곳에는 샤넬, 롤렉스, 오메가 등 명품과 소니, 지멘스 가전제품, 아디다스·나이키 스포츠 브랜드 제품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다. 발렌타인 위스키, 일본산 담배 같은 해외 사치품도 쉽게 구할 수 있어 북한 내 특별한 소비문화를 보여주는 장소이다.
▶은하지도국 본사: 대동강구역에는 수출피복공장이 대규모 10개, 중규모 10개, 소규모 70개가 분포해 있다. 대표적인 공장으로는 대성피복공장(400명), 봉화피복공장(300명), 군부피복공장(100명)이 있다. 이들 공장은 중국 등 해외에서 원단과 자재를 받아 임가공 형태로 의류를 생산한 뒤 완제품을 다시 수출하는 구조이다. 개성공단에서 남한 기업이 두고 간 의류 생산설비가 평양 등 은하지도국 산하 공장으로 이전되어 가동 중인 상태이다. 평양 시내 11개 중심구역에도 수백 개의 은하지도국 산하 수출피복공장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 산업은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수단이다. 최근에는 중국 기업의 주문이 늘면서 생산설비의 현대화와 대형화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 및 휴식 공간: 대동강구역에는 다양한 문화 및 여가 시설이 자리 잡고 있어 주민들에게 풍부한 생활 경험을 제공한다. 문수물놀이장은 평양 시민들이 즐겨 찾는 대형 물놀이 시설로,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이다. 평양볼링장은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볼링장으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문수봉유원지는 자연과 어우러진 유원지로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청년중앙회관, 피겨스케이트장, 롤로스케이트장, 김일성, 김정일 화(化) (온실 꽃전시장)가 있다.
▶김일성, 김정일 꽃 전시관: 1965년 김일성이 인도네시아 방문 시 수카르노 대통령이 개량한 난초에 그의 이름을 붙여 선물한 것이 시작이다. 1977년 김일성의 65번째 생일에 북한에 공식 소개되어 전국적으로 재배와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졌다. 김정일화는 베고니아과 꽃이다. 1988년 김정일의 46번째 생일을 맞아 일본 원예학자가 개량해 선물한 진한 붉은색 꽃이다. 북한에서는 두 꽃을 ‘불멸의 꽃’ 등으로 부르며, 김씨 일가의 우상화 상징물로 중요하게 다룬다. 1989년부터 전국에 전문 온실을 설치해 재배를 확산시켰다. 평양 옥류전시관 등에서 매년 축전이 열리며, 태양절과 광명성절에는 대규모 꽃 전시회가 개최된다.
▶문수물놀이장: 평양 대동강구역에 위치한 북한 최대 워터파크로, 2013년 김정은 지시로 리모델링되어 약 10만 9천㎡ 부지에 야외와 실내 물놀이장, 체육관, 암벽등반 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야외에는 27개의 미끄럼틀과 파도풀, 바닷물 수영장 등이 있고, 실내에는 15개 수조와 9개 한증방, 농구장, 볼링장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편의시설로는 카페, 마사지, 뷔페, 이발소 등이 마련되어 있으며, 서해 바닷물을 사용해 수질이 깨끗하다. 평양 시민과 외국인 모두 이용 가능하며, 입장료는 다소 높은 편이나 인기가 많다.
▶평양볼링장: 평양볼링관은 1994년 평양 대동강변에 세워진 북한 최초의 대형 볼링장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에 40개 레인과 500여 석 관람석을 갖추고 있다. 식당, 당구장, 탁구장, 한증탕 등 부대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교포들의 기증으로 설비가 마련됐으며, 평양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 모두 이용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볼링이 대중화되었고, 매년 동호인 대회와 체육행사가 열린다. 다만 시설 노후화와 높은 이용료가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수도방위사령부: 수도방위사령부는 북한의 수도권 방어 체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평양의 정치적, 군사적 중심지를 보호하기 위한 핵심 조직으로 평가된다. 조선인민군 육군의 핵심 전투사령부로, 약 2만 5천 명 규모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 사령부는 평양시 대동강구역에 위치해 있으며, 호위사령부에 배속되어 총참모부의 지휘를 받는다.
3. 평양시 대동강구역 시장 활동 분석
● 시장구조와 상권의 특징
대동강구역은 평양의 경제적 심장부로, 상업시설의 밀집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하나이다. 이곳에는 대성백화점, 외화상점, 릉라시장, 문수시장 등 대형 상업시설이 포진해 있을 뿐 아니라, 약 50여 개의 골목시장, 150개 상점, 600여개 매점이 촘촘하게 분포해 있다.
대성백화점은 평양의 대표적 고급 백화점으로, 고위 간부, 돈주(신흥 자본가) 등 상류층이 주로 이용한다. 이곳에서는 샤넬, 롤렉스, 루이비통 등 고가의 명품과 수입품이 거래되어, 북한 내에서 가장 세련된 소비문화가 형성된다. 외화상점은 외화(달러, 위안화 등)로만 결제가 가능한 곳으로, 주로 외교관, 무역회사 직원, 외화 소득이 있는 주민들이 이용한다.
골목시장과 매점에서는 쌀, 옥수수, 채소, 육류, 생선 등 식료품부터, 의류, 신발, 전자제품, 생활용품, 심지어 휴대전화와 컴퓨터까지 다양한 상품이 거래된다. 중국산 제품이 시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며, 외화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다. 시장 내에서는 공식 화폐인 북한 원화보다 위안화, 달러가 더 선호되어 평양시에서는 달러사용양이 70% 육박한다고 한다.
대형 백화점과 외화상점은 주변의 소규모 상권을 빠르게 흡수하며, 강력한 상권 집중 현상을 보인다. 반면, 골목시장과 매점 등은 서민층의 생계형 경제활동의 중심지로 기능을 하고 있다.
● 비공식경제와 사유화의 진전
북한 경제의 공식 부문(국가 배급, 국영상점 등)은 전체의 약 13%에 불과하고, 나머지 87%가 비공식 경제, 즉 시장경제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시장 운영 방식은 국가 명의로 시장이 개설되지만, 실제 운영은 개인 상인들이 담당하며, 이들은 일정액의 세금을 국가에 납부한다. 돈주(신흥 자본가)들은 시장 상권뿐 아니라 식당, 카페, 미용실, 택시회사, 심지어 부동산, 금융업까지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이들은 국가기관과 결탁해 독점적 권한을 누리며, 경제적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국가 특권기관(예: 군, 내각, 노동당 산하 무역회사)들은 공식적으로는 국가 소유이지만, 실제로는 내부 인맥과 자본을 동원해 무역과 유통을 독점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사유화의 확산은 평양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퍼지고 있으며, 사적 소유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점차 관대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북한 경제가 이미 사실상 시장경제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를 표방하고 있어, 이중적 경제구조가 공존하는 특이한 상황이다.
● 시장 접근성과 유통 네트워크
평양은 북한 내에서 시장 접근성이 가장 뛰어난 도시이다. 대동강구역은 평양의 교통 요지에 위치해 있어, 지하철, 버스, 도로망이 잘 발달되어 있다. 이로 인해 대형 도매·소매 유통의 중심지로 기능하며, 인근 구역뿐 아니라 타 지역 상인들도 이곳 시장을 자주 이용한다.
시장 1개당 인구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으며, 이는 시장 규모가 크고 유동인구가 많다는 점을 반영한다. 전국 유통망의 허브로서, 평양의 도매시장은 지방 상인들에게 상품을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휴대전화, 가전제품, 식품, 의류 등 다양한 중국산 상품이 대량 유입되고, 평양을 거쳐 전국으로 퍼진다.
자생적 물류체계가 발달해, 공식 유통망 외에도 개인 상인들이 화물차, 오토바이, 심지어 자전거를 이용해 상품을 빠르게 이동시킨다. 이러한 유통 네트워크의 발전은 북한 시장경제의 안정성과 확장성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 시장의 현대화와 소비패턴의 변화
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의 시장과 상업시설은 빠르게 현대화되고 있다. 장마당은 과거 임시적이고 비위생적인 공간에서, 현재는 깔끔한 건물과 체계적인 관리가 이루어지는 상설 시장으로 발전했다. 대형마트, 체인점 등 현대적 유통업태가 등장해, 소비자들은 더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상점·식당의 개인 운영이 확산되면서, 메뉴와 서비스가 다양해지고, 맛과 품질 경쟁도 치열해졌다.
소비 패턴도 과거의 생필품 위주에서 패션, 미용, 전자제품, 외식 등으로 빠르게 다변화되고 있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스마트폰, 인터넷, 외국 드라마, K-POP 등 한류 문화가 확산되며, 소비 트렌드도 글로벌화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주민들의 생활수준 향상과 소비문화의 현대화로 이어졌지만, 소득 불균형이 심화되면서 상류층과 하류층 간 소비 공간, 이용 상점, 구매 품목이 뚜렷하게 분리되고 있다. 계층 갈등도 점차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은 북한 시장경제의 상징적 공간으로, 고도화된 상권, 활발한 비공식경제, 발전된 유통망, 현대화된 소비문화가 공존하는 곳이다. 이곳의 변화는 북한 경제 전체의 흐름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로, 앞으로도 시장의 성장과 사회 변화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4. 평양시 대동강구역은 단순한 공간을 넘어
대동강구역은 변화하는 북한의 꿈과 가능성이 가장 먼저 움트는 미래의 무대다. 이곳에서 펼쳐지는 시장경제의 진전과 사회적 역동성은, 오랜 고정관념을 넘어서는 새로운 북한의 모습을 우리에게 예고한다.
대동강구역의 거대한 변화는 한반도에 불어오는 새로운 바람의 전조다. 교육과 외교, 의료와 상업, 그리고 주민들의 일상에 스며든 시장화의 물결은, 북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고 있다. 신흥 자본가의 부상, 계층 간 소비문화의 분화, 그리고 현대적 소비 트렌드의 확산은, 북한이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 있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대동강구역은 북한의 미래를 상상하고 설계하는 창조적 실험장이 되었다. 이곳에서 시작된 변화는 평양을 넘어 전국으로,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로 확산될 것이다. 시장경제의 성장과 함께, 북한 주민들은 더 많은 선택과 기회를 누리게 될 것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북한 사회의 개방과 발전, 그리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향한 새로운 길을 열어갈 것이다.
대동강구역의 오늘은 북한의 내일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곳에서 시작된 변화의 물결이 한반도 전체에 희망과 혁신의 씨앗을 뿌리길 기대하며, 우리는 북한의 미래를 더욱 긍정적이고 열린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