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뇌물, 북한이 선택한 생존의 룰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법보다 뇌물, 북한이 선택한 생존의 룰 [곽인옥 교수의 평양 시장경제 리포트]

기사승인 2025-04-25 14:08:07
북한은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고난의 행군 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는 처참한 상황에 처했다.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주민들은 국가 주도의 계획 경제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북한에 자생적인 시장 경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장마당과 상점, 고급 식당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돈을 굴리는 돈주(錢主)는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형태의 뇌물 구조가 뿌리내렸다. 국제사회의 엄격한 경제제재를 받는 북한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사회주의 사상도 계획 경제도 아니고, 자생적인 시장경제다. 그러나 대다수 북한 주민은 여전히 살벌한 독재 체제의 굴레와 속박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다. 필자는 북한의 심장으로 불리는 평양의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10년간 조사를 해왔다. 탈북자 100여명을 상대로 장기간 심층면접을 하고, 각종 자료 수집을 통해 평양의 시장경제 작동 시스템을 분석했다. 폐쇄적인 북한 내부를 자세히 연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북한의 통계자료와 탈북자들의 증언 역시 어느 정도 신뢰성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조사한 북한 사회와 경제의 현실을 공유함으로써 북한 주민들이 처한 현실과 고통을 함께 느끼고 새롭게 다가올 한반도의 미래를 고민해 보자는 취지에서 연재한다.


북한 사회에서 ‘뇌물’은 단순한 부정부패의 산물을 넘어, 주민들의 생존과 체제 운영의 필수적인 거래비용이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뇌물은 공적 시스템을 대체하는 비공식적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 이는 북한 체제의 구조적 결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특히, 중앙당 간부들이 인사권과 같은 독점적 권한을 통해 하급 간부들에게 뇌물을 요구하는 ‘먹이사슬’ 시스템은 권력층 내부의 부패를 심화시키고, 그 부담이 일반 주민들에게까지 전가되는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다. 

1990년대 경제 붕괴 이후 배급 체계가 무너지고 시장화가 확산하면서, 뇌물은 주민들의 생존 도구이자 권력층의 통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뇌물 문화는 단순히 개인의 이익 추구를 넘어 북한 사회 전반에 걸친 복잡한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다. 

1. 북한에서 뇌물이 만연한 구조적 배경

북한에서 뇌물은 일상적인 현상으로 자리 잡아, 주민들의 생존과 권력층의 통제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이는 1990년대 경제적 붕괴와 권위주의 체제의 구조적 결함에서 비롯된 문제다. 법치 부재와 공무원 부패가 이를 더욱 심화시켰다. 뇌물은 단순한 부패를 넘어 북한 사회의 비공식적 운영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 경제적 붕괴와 뇌물 확산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후 배급 체계가 붕괴하면서 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시장 활동에 의존하게 된 것이 뇌물 확산의 주요 원인이다. 공식적으로는 시장 활동이 불법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단속을 피하거나 허가를 얻기 위해 뇌물이 필수 요소가 됐다.

● 권위주의 체제와 비공식 거래

북한은 법보다 권력자의 재량이 우선시되는 권위주의 체제다. 때문에 뇌물이 권력층과 주민 간의 비공식 거래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는 권력 유지와 통제의 도구로도 활용되고 있는 현실이다.

● 공무원 부패와 주민 생존

월급으로 살아갈 수 없는 낮은 공무원 임금과 부패 방지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공무원들이 뇌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주민들이 기본적인 서비스를 받기 위해 뇌물을 제공해야 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 체제 유지와 뇌물의 역할

뇌물은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 체제 안정성을 확보하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부패를 심화시키고 체제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됐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관리하고 활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현실이다.

북한에서 뇌물은 경제적 어려움과 체제 내부의 구조적 결함이 만들어낸 결과다. 주민들의 생존 도구이자 권력층의 통제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체제의 불안정을 가중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북한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보다는 관리하고 활용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뇌물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 구조적 문제로 남아 있다.


2. 북한 뇌물의 형태와 변화 : 생존 수단에서 사회적 관행으로


● 실물 형태의 뇌물 : 생존과 밀접한 연결고리

북한에서 과거 뇌물의 대부분은 담배, 술, 식료품 등 실물 형태의 물품이었다. 담배는 일자리 배치나 재판 과정에서 중요한 뇌물로 사용됐다. 술이나 담배, 식료품(쌀)은 병원 진료나 학교 선생님 뇌물, 불법 행위를 무마하는 데 활용됐다. 실물 뇌물은 주민들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결된 수단이었다.

● 외화의 부상 : 시장화와 새로운 뇌물의 등장

북한 경제가 점차 시장화되면서 외화가 주요 뇌물로 자리 잡게 됐다. 달러나 중국 위안화 같은 외화는 단속 요원들에게 제공되어 불법 시장 활동을 눈감아주거나 단속에서 제외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외화는 북한 사회에서 화폐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가장 효과적인 뇌물 수단으로 떠올랐다. 이는 북한 내부에서 시장 경제가 확산되고 기존의 계획 경제 체제가 약화된 결과로 볼 수 있다. 외화는 단순히 경제적 가치를 넘어, 개인이 국가 통제를 벗어나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거나 확대할 수 있는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 고급 물품 : 권력층과 특혜를 위한 상징적 수단

고위 공무원이나 군 간부와 같은 권력층에게는 여전히 고급 물품이 선호되고 있다. 고급술(백두산 들쭉술, 개성 고려인삼 술, 프랑스산 코냑 및 중국 고량주, 평양 술 및 산삼주)이나 담배(크라벤)와 같은 물품은 단순한 실물 이상의 상징적 가치를 지니며, 권력층과의 관계를 강화하거나 특혜를 얻는 데 사용된다. 이러한 고급 물품은 북한 내 권력 구조와 계층 간 격차를 반영한다. 권력층이 선호하는 품목을 통해 개인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북한에서 뇌물은 단순히 부패 행위로 치부할 수 없는, 주민들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결된 필수적인 도구이다. 실물에서 외화로, 그리고 고급 물품으로 변화해 온 뇌물의 형태는 북한 사회가 겪어온 경제적·사회적 변화를 여실히 보여준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한 실질적인 물품이 주를 이루었다면, 오늘날에는 시장화와 함께 화폐 가치가 강조되면서 외화가 주요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동시에 권력층과의 관계를 유지하거나 특혜를 얻기 위해 고급 물품이 활용되고 있다.


3. 북한 뇌물의 구조와 문화


북한 사회에서 뇌물은 단순한 부패 행위를 넘어 생존과 경제활동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다. 이는 배급제 붕괴와 시장화 확산이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나타난 현상이다. 권력층과 주민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복잡한 뇌물 문화를 형성하고 있다.

● 뇌물의 공급자와 수요자 : 권력과 생존의 거래

▶뇌물의 공급자 : 뇌물의 주요 공급자는 일반 주민, 장사꾼, 외화벌이 노동자, 하급 간부 등이다. 이들은 생계를 유지하거나 경제적 기회를 얻기 위해 권력층에 뇌물을 제공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장마당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단속 요원에게 뇌물을 주거나, 병원 치료를 받기 위해 의료진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뇌물의 수요자 : 권력층인 공무원, 군 간부, 보안원, 상부 간부 등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주민들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며 사적 이익을 취한다. 이러한 관계는 권력층이 더욱 부유해지고 일반 주민이 경제적 부담을 떠안는 구조를 만든다.

● 하급 간부가 상급 간부에게 뇌물 제공 : 먹이사슬 같은 구조

▶중앙당 간부들의 권한 남용 : 중앙당 간부들은 인사권, 대학 추천, 당원 등록 등 다양한 권한을 통해 뇌물 수수의 중심에 서 있다. 이들은 시장경제 허가권 등의 독점적 권력을 활용해 자본가 계층과 공생 관계를 형성하며 이득을 취한다.

▶먹이사슬 구조 : 하급 간부들은 상급 간부에게 생존을 위해 뇌물을 준다. 이는 다시 일반 주민들에게 전가된다. 주민들은 생계를 유지하거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하급 간부들에게도 지속적으로 뇌물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구조는 북한 사회 전반에 걸쳐 ‘뇌물 먹이사슬’로 작동하고 있다.

● 북한 주민들에게 뇌물이 필요한 이유

▶생존 도구로서의 뇌물 : 장마당에서 물건을 팔기 위해 단속 요원에게 뇌물을 줘야 하며, 병원에서는 의사나 간호사에게 뇌물을 제공해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 학교에서도 교사에게 선물을 해야 아이들이 차별받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회의 도구로서의 뇌물 : 더 나은 직장 배치나 승진 기회를 얻거나 정치범으로 몰렸을 때 처벌을 면제받기 위해서도 뇌물이 필요하다. 결국 북한 주민들에게 뇌물은 정상적인 일상생활조차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 뇌물이 북한 사회에 미치는 영향 

▶긍정적 역할 : 정부 기능이 약화된 상황에서 뇌물은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공식적인 안전망 역할을 한다. 시장화된 경제 환경 속에서 주민들은 뇌물을 통해 단속을 피하고 경제활동을 지속할 수 있다.

▶부정적 결과 : 그러나 이러한 관행은 사회적 불평등과 부패를 심화시키고 도덕적 해이를 초래한다. 권력층은 더욱 부유해지고 일반 주민은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면서 계층 간 격차가 확대된다. 이는 체제 안정성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뇌물 문화는 체제의 구조적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쉽게 사라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국가 시스템이 비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고, 권력층과 주민 모두에게 뇌물이 실질적인 이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는 장기적으로 북한 사회의 발전과 통합에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4. 뇌물을 대체할 수 있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장경제 시스템 구축 필요

북한 사회에서 뇌물은 단순히 부패 행위로 치부할 수 없는, 생존과 경제활동을 위한 필수적인 거래비용으로 자리 잡았다. 이는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주민들이 일상적인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뇌물은 주민들에게 생존의 도구이자 기회의 수단으로 기능하며, 권력층에게는 체제를 유지하고 통제력을 강화하는 도구로 활용된다. 하지만 이러한 거래비용은 사회적 불평등과 부패를 심화시키고, 권력층과 일반 주민 간의 격차를 확대하며, 체제의 비효율성을 고착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결국, 북한 사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과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뇌물이라는 비공식적 거래비용을 대체할 수 있는 투명하고 공정한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뇌물이 북한 주민들에게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뇌물이 북한 사회에서 차지하는 모순적 역할은 체제가 직면한 가장 큰 딜레마 중 하나로, 이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곽인옥 교수
inokkwak@hanmail.net
곽인옥 교수
이 기사 어떻게 생각하세요
  • 추천해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추천기사
많이 본 기사
오피니언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