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제21대 대통령에 당선됨에 따라 가상자산 투자자의 기대감도 증폭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 국내 가상자산 시장의 글로벌 도약을 위한 공약을 전면에 내세운 영향이다.
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가상자산·연계상품을 제도화해 투자자의 안전한 투자기회를 보장하겠다고 공약했다. 아울러 디지털자산 허브로의 도약을 천명하면서 생태계 정비를 통한 가상자산 관련 산업육성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가상자산 투자자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공약들은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활성화’가 꼽힌다. 제도권에 편입된 안전한 새로운 투자처가 나타난다는 점에서 투자 저변의 확대로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다.
특히 해당 공약들은 제도 측면에서 글로벌 스탠다드에 동참함과 동시에, 전통 금융시장과 가상자산시장 및 글로벌 디지털자산시장의 연결성 강화와 원화 사용성 제고에 기여하는 효과가 있다.
이 대통령도 그동안 꾸준히 관련 내용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지난달 8일 경제 유튜버들과의 라이브 토크쇼에서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시장도 만들어야 한다. 빨리 시장에 진출해야 소외되지 않고, 국부 유출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같은달 6일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청년의 자산 형성’을 돕겠다는 취지로 가상자산 현물 ETF를 도입하겠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가상자산 투자 저변 확대”
비트코인 현물 ETF는 가상자산시장과 자본시장의 접점을 넓히는 출발점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은 ‘K-비트코인 현물 ETF 컨퍼런스’에서 “가상자산 현물 ETF가 국내에 도입되면 우리나라 블록체인 생태계가 확대되고, 금융 산업 전반의 혁신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짚었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가상자산 대장주인 비트코인을 기초자산으로 추종하는 상품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해 1월 비트코인 현물 ETF의 거래소 상장과 거래를 승인하면서 제도권에 처음 편입됐다.
이미 미국 금융기관들은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운용자산 1억 달러 이상인 금융기관이 미 SEC에 제출한 지난해 4분기 13F 공시에 따르면, 기관 보유 비트코인 현물 ETF는 274억달러로 직전 분기(124억달러) 대비 114% 증가했다. 해당 ETF를 2000만 달러 이상 보유한 기관도 79개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이 투자자들에게 혜택을 줄 것으로 본다.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 임원은 본지에 “비트코인 현물 ETF 출범은 가상자산을 투자하는 저변이 확대된 것을 의미한다. 제도권에 들어오게 되면 자본시장법 보호 안에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서 “특히 개인투자자들은 퇴직연금 등 연금계좌에 해당 ETF를 담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또 전통시장에 있는 자금이 가상자산 시장으로 옮겨갈 수 있는 일종의 캐피탈 마켓 통로도 생긴다. 자산운용사들 입장에서도 파이가 넓어지는 효과를 누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상자산업계 관계자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도입되면, 비트코인 투자에 관심 있는 기업과 금융기관 등이 가상자산 직접 관리나 현재 불가능한 거래소 가입 등 어려움 없이 직접 익스포저를 가져갈 수 있게 된다”면서 “국내 기업 및 금융사들도 비트코인 투자에 많은 관심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해당 수요를 충족시키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투자자의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위해선 선결 과제가 명확하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에 가상자산이 명시되지 않아 제한된 상태여서다.
자본시장법 개정 외에도 △ETF 순자산가치 산정을 위한 공정가치 평가 기준·투자자 보호 공시·자금 세탁 방지 체계 △특금법상 법인계좌 개설 허용 범위 확대 △안전한 비트코인 보관을 위한 커스터디 인프라 구축 △수탁업에 대한 명확한 인가 및 감독 체계 개선을 동반해야 투자자 보호를 골자로 한 안전성을 갖출 수 있다.
신용우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을 위해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 및 지수 요건에 대한 명확한 해석 또는 개정이 필요하다”라며 “수탁인프라 및 신탁 제도 개선도 동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ETF 구조상 자산신탁 과정 제도 개선은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실물 가상자산 보관을 위한 커스터디 과정이 필요하다. 가상자산 커스터디는 디지털 키(Private Key)를 수탁하는 것으로 분실이나 해킹으로부터 자산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김지원 KB증권 연구원은 “현재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에는 가상자산거래소가 고객 자산을 수탁하는 구조만 규정하고 있다”면서 “ETF와 같은 자산운용 구조에서 발생하는 수탁·신탁 업무는 법적 공백 상태”라고 짚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활성화, 우려의 목소리도 ‘공존’
스테이블코인은 일정한 가치에 연동되도록 설계된 자산을 말한다. 가상자산이 갖는 높은 가격 변동성을 보완하고자 개발됐다. 대표적으로 법정화폐인 달러, 유로 또는 금 등 실물자산에 연동한다.
가상자산거래소 고위 관계자는 “원화 스테이블코인 필요성은 블록체인 금융에 원화(KRW)가 존재해야 하는가와 같은 의미”라며 “달러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널리 통용되고 있고, 유로 스테이블코인도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일본은 대형은행들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엔화 스테이블코인을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고 귀띔했다.
이 대통령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활성화 공약은 △환율 안정성 확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한계 보완 △결제 효율성과 무역 인프라 혁신 △디지털금융 인프라 및 플랫폼 경쟁력 확보 등 긍정적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반면 투자자들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불안한 시선도 보낸다. 지난 2022년 5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가상자산시장을 뒤흔든 ‘테라(UST)-루나(LUNA)’ 사태 때문이다. 테라는 코인 루나를 매입하거나 판매하는 방식으로 가치를 고정하는 알고리즘 기반 스테이블코인이었다. 당시 대폭락은 가상자산사업자협의회(DAXA)의 탄생과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 제정 등 제도적 변화까지 야기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공약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테라-루나의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과 다른 법정화폐 담보형 코인이다. 한국 원화라는 안정적인 실질자산을 1대1로 페깅(Pegging)해야 하기 대문에 발행자는 이에 상응하는 원화 자산을 준비금으로 보유해야 한다. 이러한 형태는 중앙화 스테이블코인으로도 불린다.
다만 우려의 시선은 여전하다. 김지원 KB증권 연구원은 “테라-루나 사태의 경우 시스템 취약성으로 인해 페깅이 붕괴됐다. 해당 사건 이후 알고리즘형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글로벌 시장에서 사실상 중단됐다”면서 “실질자산을 담보로 발행되는 중앙화 스테이블코인은 1대1 가치 연동을 보장하는 게 아닌 유지하려는 시스템이다. 급격한 시스템 리스크 발생 시에는 1대1 페깅이 붕괴될 가능성도 있다. 이같은 구조적 리스크가 정책 설계 시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문가들도 통화 질서 혼란과 신뢰 저하를 막기 위한 제도적 설계 틀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9일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화폐의 대체재라 비은행 기관이 마음대로 발행하면 통화정책 유효성을 상당히 저해할 수 있다. 화폐 대체재가 부도가 나거나, 사고가 발생하면 지금 결제 시스템 신뢰가 한꺼번에 떨어질 수 있다”면서 “일단 감독이 가능한 은행권으로부터 (발행이) 시작해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