밈으로 소비된 혐오, 사회를 병들게 한다 [혐오의 시대③]

밈으로 소비된 혐오, 사회를 병들게 한다 [혐오의 시대③]

차별·폭력 담긴 혐오 표현, ‘밈’이라는 이름으로
전문가 “유머로 포장된 혐오, 실은 폭력” 경고

기사승인 2025-06-02 06:00:05
‘혐오’는 ‘몹시 싫어하고 미워함’을 뜻한다. 이제 이 감정은 단순한 정서를 넘어 일상의 언어이자 놀이처럼 소비되는 시대가 됐다. 조롱은 ‘밈’이 되고, 차별은 유머로 포장된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좀먹는 독성이 자리한다. [혐오의 시대] 시리즈는 혐오가 정치, 외교, 문화, 법 제도 등 사회 전반에 스며드는 현상을 경계하며 혐오 표현의 일상화와 놀이화를 짚고, 혐오를 넘어 공존의 사회를 위한 제도적·사회적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쿠키뉴스 자료사진. 윤기만 디자이너

온라인 공간에서 혐오 표현이 빠르게 일상 언어로 자리 잡고 있다. 과거에는 금기시되던 차별적 단어와 조롱의 문장들이 이제는 유머와 놀이의 형식을 띠며 각종 커뮤니티와 SNS에서 자연스럽게 소비되고 있다. 특히 10대와 20대를 중심으로 한 디지털 문화 속에서 특정 집단을 향한 혐오가 ‘밈’이라는 형태로 유통되면서, 차별 감각 자체가 흐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2021년 발표한 ‘온라인 혐오표현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오프라인 실생활에서의 혐오표현 문제에 대해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67.2%, 온라인 공간에서는 79.3%에 달했다. 최근 1년 동안 오프라인이나 온라인 중 한 곳 이상에서 혐오 표현을 보거나 들은 경험이 있다고 답한 비율도 70.3%로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혐오 표현은 단지 말의 문제가 아닌, 실질적으로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극우 커뮤니티서 정치 영역으로 번지다

최근 온라인상에서는 ‘드럼통에 집어넣자’는 표현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드럼통”이라는 문장처럼, 공동체 내부 규범을 따르지 않거나 눈 밖에 난 인물을 조롱할 때 사용된다. 이 밈은 2013년 개봉한 영화 ‘신세계’에서 조직폭력배들이 시신을 드럼통에 넣고 시멘트와 함께 유기하는 장면에서 유래했다.

이후 극우 성향의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 등지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조롱하는 데 사용되면서 정치권에서도 등장했다. 수사 과정에서 그의 측근들이 잇따라 사망한 사건과 연결지어 ‘사라져야 할 존재’라는 함의까지 담기게 됐다.

제21대 대선 경선 당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드럼통에 들어갈지언정 굴복하지 않겠다”는 발언으로 해당 밈을 차용했다. 이를 두고 더불어민주당은 ‘공포를 조장하는 정치적 프레임’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정치자금 논란 등을 언급하며 역공을 펼치기도 했다.

이후 ‘드럼통’ 밈은 정치인을 넘어 연예인, 인플루언서, 일반인에게까지 확산됐다. SNS, 온라인커뮤니티 등에서 10대, 20대 사용자들 사이에 “쟤 드럼통 감이야”, “굴려버리자” 같은 말이 자연스럽게 오간다.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을 암묵적으로 배제하거나 무력화하려는 감정을 담은 표현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밈이라는 형식 덕분에 가볍게 소비되지만, 그 안에 농축된 폭력성과 위협은 점점 더 흐려지고 있다.

여성 비하 내용 피켓. 경기도의회 진정 민원 게시 사진 파일

웃음 속 복종 강요…확산되는 성 역할 고정관념

짧고 자극적인 혐오 표현은 감정적 결속을 빠르게 끌어낸다. 함께 웃는 순간, 그 표현은 ‘놀이’가 되고, 웃음은 일종의 소속감으로 전환된다. 그렇게 형성된 관계 안에서 조롱의 대상은 점점 더 명확해진다. 외모, 성격, 성별, 정신 상태처럼 쉽게 낙인찍을 수 있는 특징들이 타깃이 되고, 이 구조 안에서 여성 혐오는 특히 일상적으로 자리 잡는다.

최근 중·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 ‘계집신조’ 밈은 그 단면을 잘 보여준다. 군대 복무신조 형식을 빌린 이 밈은 ‘여자는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않는다’, ‘남자가 부르면 3초 안에 대답한다’, ‘입을 수 있는 치마는 앞치마뿐이다’ 같은 문장으로 구성됐다. 여성을 하나의 규범 안에 가두고 순종과 복종을 강요하는 내용이지만, 공유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웃기다’, ‘장난일 뿐’이라는 말과 함께 퍼지고 있다. 하지만 반복되는 웃음 속에서 여성 혐오가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내면화된다.

이 밈은 특히 전통적인 성 역할을 거부하거나 가정 밖에서 독립적인 삶을 선택한 여성을 집중적으로 조롱한다. ‘제육볶아온나’ 같은 표현은 결혼하지 않거나 아이를 낳지 않은 여성을 향해 “밥이나 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커뮤니티 댓글창에는 미혼 여성을 향해 “이기적이다” 등의 말이 심심찮게 달린다. 여성의 선택을 웃음거리로 만들고, 그 웃음을 통해 타인의 삶을 통제하는 구조다.

이러한 흐름은 여성뿐 아니라 다른 소수자에게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정병’, ‘병X’ 같은 표현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이나 장애인을 조롱하는 방식으로 유튜브 영상과 커뮤니티 짤방 속에서 소비된다. 혐오의 타깃은 늘 사회적으로 취약한 존재들이다. 그들이 웃음의 소재가 되는 순간, 현실 속 존재감은 점점 더 흐려진다.

2024년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 방송통신위원회 제공

표현의 자유인가, 혐오의 방치인가

지난 3월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2024년도 사이버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의 18.6%, 성인 16.4%는 ‘디지털 혐오’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청소년 16.1%, 성인 17.4%는 ‘디지털 성범죄’를 목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사이버폭력을 가하는 이유로는 청소년·성인 모두 각각 38.5%, 40.3%의 비중으로 ‘보복’이라고 답했다. 사이버폭력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이유가 없거나, 재미·장난으로도 사이버폭력을 행하고 있다는 응답 비율이 높아 사이버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는 청소년과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혐오 표현이 ‘재미’와 ‘유행어’로 소비되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재밌는 표현’이라는 이유로 혐오 표현이 유통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며 “과거 ‘이혼하면 구로, 사업 망하면 인천’이라는 식의 지역 비하 발언이 정치권에서 나오기도 했다. 특정 지역이나 집단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명백한 혐오이며, 일상에서 ‘놀이’처럼 소비되더라도 그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혐오 표현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되는 것이며, 상황에 따라 혐오범죄(헤이트크라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과거 수많은 연예인이 ‘재미의 대상’이 되었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 혐오는 차별의 한 형태로, 어떤 방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중세 유럽의 마녀사냥처럼, 사회를 위협할 힘도 없는 사람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삼는 일은 결국 공동체 내부의 불안과 공포를 전가하는 행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혐오 표현에 대응하려면 ‘혐오는 범죄’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려야 한다고 봤다. 설 교수는 “표현의 자유로 포장되는 혐오에 관대해서는 안 된다. 혐오 표현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주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예솔 기자
ysolzz6@kukinews.com
이예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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